죽은 뒤 내 보험금 생판 모르는 남에게?... '톤틴연금' 재조명 받는 이유

입력
2022.02.24 04:3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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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개발원, 톤틴연금 도입 검토
일찍 사망하면 손해, 오래 살면 더 받고
고령화 심화·1인 가구 확대로 수요 커져

보험개발원은 지난 15일 일찍 숨진 보험 가입자에 지급할 보험금을 생존 가입자에게 나눠 주는 톤틴연금 도입 방안을 올해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게티이미지뱅크

보험개발원은 지난 15일 일찍 숨진 보험 가입자에 지급할 보험금을 생존 가입자에게 나눠 주는 톤틴연금 도입 방안을 올해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게티이미지뱅크

먼저 숨진 연금보험 가입자가 미처 받지 못한 연금(보험금)을 다른 가입자에게 몰아주는 보험상품이 있습니다. 일찍 사망했다고 내가 낸 보험료를 가족도 아닌 생판 모르는 사람이 받는다고 상상하니,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데요. 바로 '톤틴연금'입니다.

2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보험개발원은 지난 15일 올해 톤틴연금 등 새로운 유형의 연금상품 개발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금융감독원이 앞서 노후 안전판 중 하나인 연금보험 다변화를 추진하기로 한 데 이어 이를 실무적으로 뒷받침하는 보험개발원이 구체적인 사례까지 제시한 셈입니다.

톤틴연금은 보험 가입자가 젊을 때 보험료를 내고 노후에 보험금을 연금처럼 수령하는 연금보험의 한 종류인데 기존 상품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대표적 연금보험 유형인 확정형, 종신형은 가입자가 연금을 받기 전에 숨지면 최소 죽기 전까지 낸 보험료를 가입자 가족 등에 돌려 줍니다. 또 연금 수령을 시작한 가입자가 숨질 경우엔 사전 계약한 기간만큼은 연금을 보장합니다.

이와 달리 톤틴연금은 보험 가입자가 숨지면 그 가족에게 돌아갈 연금은 없습니다. 대신 이 돈은 다른 생존 가입자를 위한 연금 재원으로 쌓입니다. 기존 연금보험 상품과 비교해 일찍 사망하면 손해지만 오래 살면 연금을 더 많이 받는 구조입니다.

17세기 이탈리아 금융가 로렌초 톤티가 설계한 톤틴연금은 망자의 몫을 산 자가 차지한다는 불편한 시선에 널리 퍼지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2016년부터 일본생명, 간포생명 등 일본 주요 생명보험사 5곳이 상품을 내놓으면서 재조명받고 있습니다.

수명이 길수록 연금 수령액도 커진다는 면이 세계에서 고령화가 가장 심한 일본 노년층을 사로잡았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사망 후 재산을 남길 가족이 없는 노년층이 많은 일본의 가구 형태도 톤틴연금의 인기를 키웠습니다.

일본과 사회 구조가 매우 비슷한 우리나라에서 톤틴연금이 거론되기 시작한 건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보입니다. 고령화 심화, 1인 가구 확대 등에서 비롯된 톤틴연금을 향한 긍정적 분위기가 이 상품을 불편해하던 여론을 점점 앞지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다만 일본도 가입자가 숨질 경우 가족에게 한 푼도 안 주는 대신 해약환급금만 보장하는 다소 약한 톤틴연금을 도입한 점은 새겨들을 법합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고령화에 맞춰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연금상품도 다양해질 필요가 있다"며 "연금보험 시장이 점점 쪼그라들고 있는 가운데 톤틴연금 같은 상품을 출시하면 가입자 확보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박경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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