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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축제엔 '물음표' 남지만… 큰 울림 준 명장면엔 '느낌표'

입력
2022.02.20 17:46
수정
2022.02.20 18:15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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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중국 허베이성 장자커우의 겐팅 스노파크에서 열린 베이징 동계올림픽 프리스타일 스키 남자 에어리얼 결승 후 우크라이나의 올렉산드르 아브라멘코(오른쪽)와 러시아의 일리아 부로프가 하이파이브를 하며 서로 축하해주고 있다. 장자커우=로이터 연합뉴스

16일 중국 허베이성 장자커우의 겐팅 스노파크에서 열린 베이징 동계올림픽 프리스타일 스키 남자 에어리얼 결승 후 우크라이나의 올렉산드르 아브라멘코(오른쪽)와 러시아의 일리아 부로프가 하이파이브를 하며 서로 축하해주고 있다. 장자커우=로이터 연합뉴스

올림픽의 다른 이름은 '평화의 축제'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은 시작부터 '평화'와도 '축제'와도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온갖 잡음과 대립 속에서도 선수들의 스포츠 정신은 빛났고 그들의 도전과 우정은 감동을 만들었다.

하뉴 유즈루(일본)는 '도핑 파문'이 뒤덮은 피겨에서 낭만을 보여줬다. 일본을 비롯한 모든 외신들이 그의 올림픽 3연패 도전에 관심을 둘 때 그는 '쿼드러플 악셀'을 선택했다. 앞을 보고 점프해 공중에서 4바퀴 반을 도는 이 점프는 지금까지 누구도 실전에서 성공한 적 없는 기술이다. 그는 금메달보다는 불가능을 향한 도전을 택했다. 관중들은 하뉴가 넘어졌을 때는 모두 감동을 느꼈다.

에린 잭슨(미국)은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흑인 여성 최초로 금메달을 획득하며 새 역사를 썼다. 그 뒤에는 동료의 아름다운 양보가 있었다. 잭슨이 대표팀 선발전 레이스에서 넘어져 3위에 머물렀지만 1위 브리트니 보가 출전권을 양보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생긴 추가 쿼터로 이번 대회에 온 보는 "잭슨의 금메달을 예상했다. 무척 기쁘다"며 "우리는 자신과 다른 면이 있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때론 우러러 봐야 한다. 잭슨은 정말 훌륭한 선수다"라고 강조했다.

네덜란드 쇼트트랙 대표팀은 여자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뒤 세상을 먼저 떠난 동료 라라 판 라위번를 위한 세리머니를 했다. 평창 대회 스노보드 슬로프스타일 은메달을 목에 건 뒤 혈액암 투병 생활을 했던 맥스 패럿은 암을 이겨내고 베이징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감동을 전했다. 오심의 피해를 보며 패럿에게 금메달을 내줬던 쑤이밍(중국)은 판정에 승복하는 성숙한 태도를 보여 국경을 넘은 울림을 줬다. 그는 오심을 한 심판을 향해 중국 대중들이 비난하자, "심판도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를 한다. 더 발전하는 동기로 삼겠다"고 했고 열흘 뒤 스노보드 빅에어에서 압도적인 기량으로 금메달을 땄다. 어느 때보다 반중 감정이 심했던 상황에서도 김민석(23)은 함께 뛴 중국 선수를 위로하며 진정한 스포츠맨십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8일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500m 결승전에서 동메달을 딴 후 7위에 그쳐 상심한 닝중옌을 다독였다.

이번 올림픽에서 무엇보다도 큰 울림을 준 장면은 16일 밤 장자커우에서 나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위협이 극에 달한 날이었다. 중국 허베이성 장자커우 겐팅 스노파크에선 프리스타일 스키 남자 에어리얼 결승전에서 이 종목 디펜딩 챔피언인 올렉산드르 아브라멘코(우크라이나)는 은메달을 차지했고 일리아 부로프(러시아)는 평창 대회에 이어 동메달을 차지했다. 아브라멘코가 국기를 들고 기뻐하는 순간 부로프는 그에게 다가가 손을 잡더니 뒤에서 껴안으며 축하를 건넸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두 선수의 포옹을 "두 나라 사이에 고조된 긴장을 극복하는 제스처"라고 평가했다. 두 나라 선수들의 포옹은 스포츠에 정치가 개입할 수 없다는 올림픽 정신을 다시 일깨운 감동적인 장면으로 회자된다.

베이징 최동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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