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메타버스가 별로라고 했다

입력
2022.01.25 22:00
27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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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아이돌 '덕질' 7년 차로 접어든 중학생 딸. 코로나 시대로 접어들며 대면 콘서트도 못 가고, 힘들게 공연에 갔는데도 함성을 지를 수 없어 불만이 많다. 이런 딸이 얼마 전 엔터테인먼트 기획사들이 가상인물 연예인을 만들어내고, 메타버스나 NFT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기사를 보고 건넨 말이다.

"내 주위에 물어보면 메타버스에서 만나는 것보다 실물로 만나는 걸 훨씬 더 좋아해. 이번 기회에 메타버스로 대거 덕질 기반을 옮겨가려고 하는 것 같은데, 그냥 돈을 벌려고 하는 어른들의 기획인 것 같아."

"그럼 메타버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

"메타버스는 어른들이 1020이 좋아할 거라면서 만든 서비스라는 느낌이야. 굳이 따지자면 어른들이 '킹왕짱' 같은 유행어 쓰면서 10대를 잘 안다고 오인하는 느낌?"

아이는 말을 이어갔다.

"미래에는 메타버스에서 '부캐'를 만들어 돈을 벌라는 이야기를 봤는데, 모순적이라고 생각해. 어른들이야 본캐가 있으니 부캐를 만들어도 되겠지만, '나는 누구인지', 즉 자기 본캐가 뭔지도 모르는 애들에게 부캐부터 만들라고 하는 건 좀 아니지 않아?"

요즘 앞다퉈 메타버스를 도입한다고 한다. 진짜 비즈니스모델에 메타버스를 연결하기보다는 메타버스 형태의 온라인 공간에서 오프라인 행사를 대신하는 '메타버스 마케팅'이 대부분이긴 하다. 그 이유는 힙해 보여서, MZ세대에 어필할 수 있어서란다. (밀레니얼과 Z세대 사이에 엄청난 세대차가 있고 세대 내 차이도 많은데 MZ세대란 단어가 남발되는 것도 영 마뜩잖다) 그런데 아이가 이야기한 건 이런 메타버스 마케팅이 아니다. 아이에겐 메타버스 자체보다 메타버스를 받치고 있는 세계관이 더 불편했던 것 같다.

원래 메타버스라는 비주얼 사이버 세계는 크게 보자면 새로운 '탈중앙화' 인터넷인 웹3를 구성하는 요소다. 메타버스 안에서는 크리에이터(부캐)가 만들어가는 창작물, 또는 그 부캐 자체가 창작물이 된다. 창작물 가치를 매기고 거래하는 게 NFT. 가치 본질을 증명하는 기술이 블록체인. 보상 체계가 토큰(가상자산), 특히 이더리움 생태계 형식의 토큰이라고 한다. 이 모든 걸 아우르는 새로운 탈중앙화 인터넷 철학이 웹3다.

그런데 아이가 생각하기에 어른들이 지금 메타버스를 활용하는 방식은 이미 힘이 너무나 센 플랫폼이 '부캐'를 '수익화의 수단'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거다. 그 안에 들어간 개개인 또한 자아 형성 주체로서가 아니라 그 안에서 '이렇게 인기를 끌고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 영 찜찜했을 수도 있다.

이미 '본캐' 세계에서는 성적, 외모로 가치 평가가 이뤄진다. 새로운 세상에서는 자기의 디지털 자아조차 가치가 평가된단다. 요즘 아이들은 게임부터 커뮤니티까지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세상이 훨씬 더 익숙한 디지털 네이티브다. 자아, 즉 본캐가 채 형성되기도 전 어른들이 만든 세상에서 부캐부터 만들게 디지털 세상으로 밀어 넣어지는 아이들에게 자아 형성이란 앞으로 어떤 과정이 될까?

아이의 말이 두고두고 머릿속에서 맴돈다. "부캐란 건, 결국 본캐가 탄탄해야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해. 매드클라운이 마미손인 거 다 알지만 모르는 척하는 건 매드클라운이 이미 성공한 힙합 가수여서잖아? 메타버스 세계 안에 나를 만드는 건 그런 식의 부캐가 아니라 그냥 또 다른 나를 만들라고 하는 것 같아. 난 그게 좀 기괴하다고 생각해."


홍윤희 장애인이동권증진 콘텐츠제작 협동조합 '무의'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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