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당 이대로 끝날 수 없다

입력
2022.01.21 18:00
수정
2022.01.21 18:1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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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 정의당 후보 2~3% 지지율
진보정당, 대중에게 철저히 외면받아
진보 와해되면 보수도 균형 잃어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가 20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행정학회 주최 대통령 선거 후보자 초청 토론회에 참석해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가 20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행정학회 주최 대통령 선거 후보자 초청 토론회에 참석해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의 지지율은 2~3%다. 허경영보다 지지율이 낮은 데 충격을 받아 칩거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2017년 대선에서 6.17%의 최종 득표율을 기록했던 그는 선거 운동 과정에선 한때 두 자릿수대 지지율을 보였고 TV 토론도 가장 잘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선두 주자였던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측은 그의 상승세에 놀라 사표(死票)론을 들먹이며 “정의당 지지는 다음 선거에”라는 구호로 견제했다.

선거에서 양당의 진영 대결이 강해지면 진보정당 후보들을 늘상 곤혹스럽게 만드는 게 ‘사표론과 차기론’이다. 진보 후보들의 비상을 가로막는 족쇄와 같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것도 없다. 이를테면 민주당 지지자들조차 아직 이재명 후보에게 표심을 주지 못해 망설이는데, 진보 성향 유권자들이 사표 심리 때문에 심 후보를 안 찍는다는 것은 이상한 논리다. 과거와 달리 양강의 비호감 후보 대결로 인해 진영 결집력이 낮아 무수한 부동층 표심이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는 데도 이 정도라면 무언가 심각한 신호다.

한마디로 철저한 무관심과 외면 외에 설명할 길이 없다. 21일 공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심 후보는 6070세대 1%, 4050세대 2%, 30대 5%, 20대 8%다. 심 후보와 정의당 기반이 어느샌가 20대 여성층이 돼버렸지만 그조차도 미미한 수준이다. 마초적 풍모에 ‘반페미’까지 장착한 윤석열 후보나 형수 욕설의 주홍글씨가 새겨진 이재명 후보 간 경쟁으로 여성들에선 “찍을 후보가 없다”는 탄식이 나오지만 유일한 페미니스트 주자인 심 후보는 아예 관심권 밖이라는 것도 기이할 정도다.

냉정히 말해 이 같은 지지율이라면 대중 정당으로서의 존립 근거가 없다. 실제 총선에선 정당득표율이 3% 미만이면 비례의석을 한 석도 가지지 못한다. 예전에는 ‘후보는 민주당, 정당 투표는 진보정당’식으로 미래를 위해 진보정당을 키워야 한다는 담론도 많았지만 이제는 이런 미래론조차 들어보기 어렵다.

정의당이 이런 처지에 몰린 데는 조국 사태, 김종철 당 대표 성추행 사건 등 여러 계기와 요인들이 작용했을 터다. 대체로 정의당을 비난하는 이들이 제기하는 정당 이미지는 ‘민주당 2중대’ ‘페미당’ ‘민노총 정당’ 등이다. 유권자에 따라 전혀 상반된 비난도 나오지만, 어쩌면 이쪽저쪽에서 밉상으로 찍혔다는 얘기일 수 있다.

이런 왕따에 가까운 무관심은 비단 정의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의당에는 권영길 노회찬 등 20여 년에 걸쳐 진보정당을 개척한 거목들의 발자국이 담겨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진보 진영 인사들을 흡수했지만 진보정당이라 할 수 없다. 진보적 의제와 노선을 계승한 정의당의 추락은 한국의 진보 자체가 막다른 길에 처했다는 징후다. 2017년 대선이 보수 진영을 탄핵한 선거라면, 이번 선거는 어쩌면 진보 진영을 탄핵하는 선거가 될지도 모른다.

진보정당의 터전은 물론 서민과 젊은 층이다. 그들의 삶이 나아져 진보정당이 할 일이 없어졌기에 입지가 좁아진 것일까. 당연히 아니다. 소득 불평등은 더욱 확대되고 젊은 세대들은 집을 사거나 취업하거나 결혼할 기회가 없다며 아우성이다. 이런 밑바닥 목소리가 진보 정당을 통해 의제화되지 못하면 오히려 극심한 반동과 퇴행을 부른다는 것이 역사의 증언이다. 진보가 와해되면 보수 역시 균형을 잃을 수 있어서다. ‘조국 사태’ 때 정의당을 떠났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21일 정의당에 다시 돌아간다고 밝혔다. 진보 재구성을 위해 뒤에서 돕는 일을 찾아보겠다는 그의 역할을 주목하고 싶다.




송용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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