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아이돌'이 씁쓸했던 이유

입력
2022.01.20 22:00
27면
'엄마는 아이돌'. tvN 제공

'엄마는 아이돌'. tvN 제공

최근 '엄마는 아이돌'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고 있다. '출산과 육아로 잠시 우리 곁을 떠났던 스타들이 완성형 아이돌로 돌아오는 레전드 맘들의 컴백 프로젝트'라고 한다. 출연자들을 '경력단절 여성'이 아닌 '경력보유 여성'으로 인식하는 기획일까. 무대 위에서의 모습을 오랫동안 잊거나 추억만 하며 지낸 출연자들에게 이 프로그램은 분명 인생의 큰 전환점일 수 있다.

그러나 어딘지 모를 아쉬움을 떨칠 수 없다. '레전드 맘'이라는 호명에서 정작 엄마로서의 삶은 장애물로만 그려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출연자들의 퍼포먼스나 외모를 보고 '정말 엄마 맞아?' 하며 놀란다. 여기에는 '자기관리가 잘된', '여전히 날씬한' 여성은 사회가 상상하는 '엄마'의 모습이 아니라는, 일종의 '엄마다움'이 전제되어 있다.

'엄마는 아이돌'이라는 제목에 담긴 역설은 '엄마'와 '아이돌'이라는 두 명칭에 부과되는 사회적 기대의 충돌을 매우 효과적으로 드러내지만, 프로그램은 꽤 뚜렷한 한계에 갇혀 있는 듯하다. 처음 엄마들이 등장했을 때의 기대와 반가움은 곧 사라지고, 무대가 끝난 후에는 '당장 데뷔할 수 있는가?'라는 과도한 기준에 따른 평가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경력단절 기간을 제대로 고려하지도 않는 모습은 프로그램이 '엄마'를 대하는 태도를 정확히 보여준다. 출연자들이 '레전드'로 돌아오기 위해 '엄마'는 극복해야만 하는 삶이다. 육아가 실제로 경력에 걸림돌이 되곤 한다는 것은 나 또한 겪어 봤기에 잘 알고 있지만, 다급한 연습 일정 등은 출연자들이 마음 편히 무대 준비에 집중하기보다 '애들은 어쩌나' 걱정하게 하기 일쑤다. 제작진이 출연자의 육아 부담을 덜기 위해 노력했다는 언급도 보지 못했다. 일과 육아 사이에서 발 동동 구르는 건 결국 엄마들의 몫이었다.

프로그램에서 '엄마'는 출연자들이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극복해야 하는 대상이자, 방송이라는 일터에서 고려하지 않아도 될 사적인 영역에 존재하는 대상으로 머무른다. 적어도 은퇴한 엄마들을 무대에 다시 올리겠다는 기획으로 시작한 프로그램이라면 지금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엄마의 삶'을 애써 지우려고 하는 게 최선이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이런 태도에서 프로그램의 제목에 담겨 있던 어떤 급진적 문제 제기의 가능성은 차단된다.

아들에게 들은 일화가 떠오른다. 아들은 돌봄에 관한 어느 전시회의 대담 프로그램에서 엄마에 관한 고민을 이어온 한 여성이 패널로 있었다고 했다. 그가 남겼다는 말은 꽤 오래 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왜 엄마는 꼭 다른 존재로서만 멋져야 할까요? 엄마로서 멋질 수는 없는 걸까요?'

여성에게만 돌봄을 위해 자신의 경력을 포기하길 요구하는 성차별적 사회는 분명 문제다. 하지만, 비록 차별의 결과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누군가가 당장 벗어날 수 없는 상태이기도 하다면, 그 안에서 존엄을 발명하는 일 또한 중요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젊고 매력적인' 존재의 표상인 아이돌이 되어야만 '멋지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다.

한 명의 아이를 키우는 데에 온 마을이 필요하듯, 여성의 단절된 삶이 다시 통합되는 데에도 온 사회가 필요하다. '엄마의 삶'이 공적으로 고려되는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비로소 엄마가 엄마로서 멋질 수 있는 사회의 윤곽이 조금씩 드러나지 않을까.


이지영 세종대 교양학부 교수·'BTS예술혁명'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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