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육으로 복음을... 연남동에 '천국' 만든 남자

입력
2022.01.19 15:49
수정
2022.01.19 15:54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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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연남동 '삶천식당' 김성호 대표
개업 두 달여 만에 식사 쿠폰 지역 기부
"주민들이 무료 봉사"

김성호 '삶천식당' 대표가 19일 식당 모금함을 들고 웃고 있다. 마포구 제공

김성호 '삶천식당' 대표가 19일 식당 모금함을 들고 웃고 있다. 마포구 제공

서울 마포구 연남동 인근 작은 출판사에서 일하는 김소미씨는 19일 펑펑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이날 점심식사를 위해 '천국'으로 향했다. '삶의 한가운데 천국이 있다'는 뜻의 간판을 단 '삶천식당'이 그 행선지다.

주변에 제육볶음 맛집으로 입소문을 탄 이 가게는 나눔 식당이다. 손님들이 밥값으로 식사쿠폰(3,000원)을 사 모금함에 넣으면, 그 일부 쿠폰이 연남동 주민센터에 기부된다. 19일 마포구에 따르면 김성호(42) 삶천식당 대표는 식사쿠폰 383장(약 110만 원 상당)을 최근 기증했다. 김씨는 지난해 11월 이 식당 문을 열었다. 개업한 지 불과 두 달여, 식당이 채 자리 잡기도 전에 나눔부터 시작했다. 이 쿠폰은 식당 이용이 가능한 연남동 지역 내 경제 취약계층 청년을 우선순위로 제공된다.

김씨는 테이블 6개를 놓고 3,000원으로 뜻있는 삶을 실천하자는 취지에서 소박하게 시작했다. 손님에서 받은 밥값(쿠폰) 상당수를 기부하면, 임대료와 재료비, 인건비는 어떻게 감당할까. 김씨는 이날 본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교회에서 임대료 절반을 내주고 있고, 어떤 손님은 자기 밥값 외 추가로 쿠폰을 사 모금을 도와준다"며 "식당 운영 취지를 듣고 20여 주민들이 점심시간 등에 서빙을 하는 등 무료 봉사를 해주고 있다"며 웃었다. 김씨 부부를 비롯해 식당에서 일하는 모든 이들은 자원봉사다. 그는 "어려운 분들이 많으니 부담 없이 밥 한 끼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열고 싶었다"고 했다.

식당 메뉴판엔 제육볶음이 '제육복음'으로 적혀 있다. 김씨는 한국산 제육으로 주민과 함께 어려운 이웃에 복음을 전한다. 그런 김씨의 카카오톡 프로필엔 '사랑이 길을 낼 것'이란 뜻의 영문 '러브 윌 파인드 어 웨이'가 걸려 있다. 김씨는 "음식 재료비와 임대료를 제외하고 200장 이상 식사쿠폰이 모일 때마다 주민센터에 기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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