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시급도 못 받고 투표소 14시간 붙박이" 지방공무원들 뿔났다

입력
2022.01.17 04:30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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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 "정치적 중립 필요해 불가피한 측면도"
수당 현실화·대체휴무 보장 등 대안 마련 진행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일인 지난해 4월 7일 서울 합정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시민들이 투표를 하기 위해 기표소로 들어가고 있다. 서재훈 기자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일인 지난해 4월 7일 서울 합정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시민들이 투표를 하기 위해 기표소로 들어가고 있다. 서재훈 기자

서울의 한 구청 공무원인 신모(31)씨는 50여 일 남은 대선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골치가 아프다. 지난해 4·7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당시 투표 사무원으로 '차출'된 신씨는 오전 5시 30분부터 오후 8시까지 투표 관련 업무를 했다. 그나마 점심 시간이 휴식의 전부였는데, 식사 시간에도 교대로 근무해야 하는 탓에 실제 30분 정도밖에 짬을 내지 못했다.

수당을 받고 나선 당혹스러움이 밀려왔다. 투표소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온종일 일했는데 손에 쥔 돈은 수당 5만 원과 사례금 4만 원, 식대(3식) 2만1,000원을 포함해 11만1,000원이었다. 이를 시급으로 환산하면 7,400원 정도로, 지난해 최저시급(8,720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나마 올해는 수당이 1만 원 올랐다고 하지만 최저시급에는 여전히 부족한 액수다. 3월 대선과 6월 지방선거는 보궐선거와 달리 휴일 수당을 지급해야 하는 법정공휴일인 탓에 수당 문제는 더욱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신씨는 "공무원으로서 투·개표사무원으로 일하는 것에는 전면 반대하거나 거부하지는 않는다"면서도 "적어도 최저임금 수준으로 수당을 제공해야 하는 게 아닌가"라며 불만을 털어놓았다.

최저임금보다 낮은 수당에 지방공무원 불만

대선과 지방선거를 치르는 데 필수 인력인 투·개표사무원 위촉을 두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고민이 깊다. 기초지자체 공무원들이 이처럼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위촉 거부 운동에 나선 탓이다. 지난 8일 완료돼야 할 투표관리관 모집이 서울과 수도권 등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이에 선관위는 지방직 공무원에 편중돼 있는 선거사무원 구성을 개선하고 추가 수당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16일 선관위와 공무원노조 등에 따르면,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과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공노총)은 지난해 10월부터 한 달 동안 올 3월 대선과 6월 지방선거 투·개표사무원 위촉 부동의 서명운동을 전개했다. 당시 서명운동에 참여한 지자체 공무원은 10만 명을 넘었다. 이들은 "지방공무원 중심의 선거사무원 모집을 개선하고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수당을 현실화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공무원 차출.... '정치적 중립성'에 불가피한 측면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하루 앞둔 2020년 4월 14일 경기 수원시 팔달구 우만 2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선거 사무원들이 투표소 설치를 하고 있다. 수원=뉴스1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하루 앞둔 2020년 4월 14일 경기 수원시 팔달구 우만 2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선거 사무원들이 투표소 설치를 하고 있다. 수원=뉴스1

역대 전국단위 선거를 살펴보면, 선거사무원(투·개표사무원)의 절반 이상을 지방공무원이 채우고 있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2020년 총선 당시 투·개표사무원 32만7,449명 가운데 52.3%(17만1,255명)가 지방공무원이었다. 이 역시 2016년 총선 당시 지방공무원 비율(62.8%)과 비교하면 그나마 줄어든 것이다. 반면 국가공무원 비율은 2020년 총선 기준 1.03%(3,380명)에 불과했다.

최근 선거별 투·개표 사무원 위촉 현황. 그래픽=김대훈 기자

최근 선거별 투·개표 사무원 위촉 현황. 그래픽=김대훈 기자


지방공무원들은 편중된 인력 구성에 대해 사실상 "동원 아니냐"며 반발하고 있다. 공주석 전국시군구공무원노조연맹 위원장은 "과거에는 본인이 원치 않더라도 선관위가 인원을 배정하면 무조건 나가야 했다"며 "지방공무원뿐만 아니라 교직원, 금융기관 직원, 공공기관 직원 등도 선거사무원으로 위촉할 수 있는데, 선관위는 편의상 지방공무원만 편중해서 부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 등 유권자가 많은 지역은 공무원 전원이 차출되는 것이나 다름 없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선관위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해명한다. 선거사무 특성상 정치적 중립이 필요하고 전문성과 책임성도 요구되기 때문이다. 다만 지방공무원에 편중된 선거사무원 구성 방식은 개선하겠다는 입장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농·산·어촌 지역의 경우 지방공무원에 비해 국가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 수가 적어 현실적으로 인력 다양화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서도 "이번 대선에는 지방공무원 비율을 전국 평균 50% 이하로 축소하도록 노력하겠다"며 목표치를 제시했다.

선관위 "대휴 보장 등 대안 마련 최우선 검토"

선거사무원 처우 개선은 지방공무원들의 숙원이다. 임금뿐 아니라 선거일 근무에 대한 통일된 복무 규정이 없는 탓에 14시간 넘게 일해도 다음날 대체휴무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는 점도 불만이다. 일부 지자체 공무원은 선거일 다음날에도 정상 출근하거나 개인 연가를 소진해 휴식을 취한다. 선거 당일 여유 있는 식사가 어렵고 필요할 때 화장실에 가기 어려운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많다.

선관위는 우선 올해 선거사무원 수당을 1만 원 인상했다. 이에 따라 3월 대선에서는 투표사무원이 총 12만1,000원을 받게 된다. 선관위는 또 선거사무원 휴무시간 및 대체휴무 보장을 위해 관계 부처와의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선관위 관계자는 "선관위도 선거사무 인력에 대한 수당 인상에 크게 공감하고 있다"며 "향후에도 처우 개선을 위한 예산 편성 및 요구는 최우선 순위로 할 것"이라고 밝혔다.

선관위는 선거 시설 확보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다. 특히 투표소는 선거인들이 방문하기 용이하고 투표 관리에도 적합한 면적인 동시에, 승강로·경사로 등 장애인편의시설도 갖춰야 한다. 이런 탓에 선거 때마다 선관위는 투표소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선관위 관계자는 "올해 대선과 지방선거 관련 시설은 대부분 확보한 상태며, 선거가 끝날 때까지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강진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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