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해야 할 건 자식이 아니라 부모다

입력
2022.01.13 22:00
27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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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들은 자녀 문제로 상담실을 찾는 경우가 많다. 공부해야 하는 중요한 때에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거나, 방 안에 틀어박혀 밤새 컴퓨터나 스마트폰 게임에 빠지는 것이 주된 갈등의 시작이다. '하라는 공부는 않고 딴짓을 한다'로 시작한 소소한 갈등은 부모가 통제하려 할수록 통제되지 않는 악순환의 반복 끝에 점차 격해져 흡사 전쟁을 방불케 하는 지경에 이른다. 여기에 이성 교제 문제까지 겹치게 되면, 우리 한국의 부모가 느끼는 스트레스는 상상 이상이다. 이때 어머니가 갱년기에 접어들었거나 공교롭게도 아버지가 퇴직 또는 퇴사 위기에 있는 경우라면, 부모의 고통은 우울, 불안, 분노를 넘어 절망으로까지 이어져 실제 병이 나 몸져눕기도 한다.

문제 발생 초기에 상담실을 찾으면 참 좋으련만, 대체로 갈등이 격할 대로 격해진 다음에서야 도움을 청하는 부모에게 상담사가 처음 건네는 말은 "그동안 얼마나 힘이 드셨을지요"이다. '그 귀엽고 사랑스럽던 내 아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거지?' 도저히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기에, 자식의 내면에 자리한 어떤 생각, 감정, 의식을 깨부숴야 할 적으로 여기고 싸우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식이 원수'가 된다. 자식을 적으로 두고 싸우는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고통스럽고 아플지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지 않은가.

얼마 전 우연하게도 3년 전 아들과의 갈등으로 상담실을 찾았었던 내담자를 뜻밖의 장소에서 마주쳤다. 이런 경우 반갑고 궁금해도 모르는 사이처럼 지나가곤 하지만, 그녀가 먼저 반갑게 인사를 건네와 우리는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전보다 훨씬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활기차게 대화를 주도하던 그녀는 내게 "선생님 말씀처럼 아이가 문제가 아니었어요. 제가 마음을 바꾸니까 정말 모든 게 편해졌어요"라며, 당시 고2였던 아들은 대학생이 되었고, 곧 군대에 입대할 예정이라고 했다. 시련을 겪고 한층 여유롭고 성숙해진 그녀를 눈으로 확인하게 된 것은 상담자로서도 큰 의미였다. '증거기반 실제'(evidence-based practice)를 강조하는 현대 상담 동향을 고려할 때, 실제 경험으로 확인이 되는 긍정적 변화, 성장, 성숙은 그 어떤 이론보다 강한 믿음을 갖게 한다.

사랑하는 만큼 자녀에게 기대하게 되는 것이 부모이기에, 자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는 것은 부모에게 고통이 수반되는 일이다. 그 고통에 맞닥뜨렸을 때 '나를 바꿀 것인가?' 아니면 '아이를 바꿀 것인가?'의 선택이 심리적으로 유연하게 적응할 줄 아는 고무공 같은 탄력적인 가족으로 성숙해가느냐 아니면, 작은 충격에도 쉽사리 깨지고 마는 유리공 같은 경직된 가족으로 취약해지느냐를 결정한다. 서로 한 세대 차이가 나는 사람들은 비록 공유하는 물리적 공간은 같을지라도, 내면에 자리한 의식과 사고 체계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속해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자식을 나와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는 개별적 존재로 인정한다는 것은 친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고 새롭게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날마다 새잎을 틔우는 화초를 경이롭게 바라보듯 따뜻한 응원과 사랑의 마음으로 자녀를 대하는 연습, 그리고 귀한 손님처럼 거리를 두고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지혜가 우리 가족을 더 건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이정미 서울상담심리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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