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의 길

입력
2022.01.06 18:00
수정
2022.01.06 22:53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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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필승조합 깨진 윤석열 진영
막판 극적인 갈등 봉합 그나마 다행
희생 헌신으로 새 정치 싹 지켜내길


일단 외견상으로 윤석열 대선후보,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 이준석 당대표(이하 호칭 생략)는 그야말로 환상 조합이었다. 전통 보수층의 한을 풀어줄 정의와 결기의 윤석열에다, 진영에 상관없이 중도확장성을 여러 차례 입증해 보인 전략가 김종인, 거기에 낡은 보수 색깔을 탈색시킬 수 있는 청년 이준석의 결합은 더할 나위 없는 필승의 결합으로 보였다.

그 조합이 깨졌다. 건곤일척의 총력전에서 힘을 나눌 장수 없이 윤석열이 돌연 단기필마로 전장에 나서는 모양새가 됐다. 이건 객기에 가깝다. 반문(反文) 적개심 외에는 경험, 경륜, 자질, 비전 등 그 어떤 무기도 변변히 갖추지 못한 그가 뭘로 어떻게 싸울 수 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급한 일은 전력 망실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김종인이 사라진 마당에 그나마 가능한 건 당대표를 전선으로 복귀시키는 일이다. 책임의 경중은 차치하고 먼저 이준석의 행보에 주목하는 이유다. 어차피 대선전의 주장(主將)은 후보이므로.

이준석의 화를 납득 못 할 바는 아니다. 무엇보다 그가 제 정치를 위해 사사건건 윤석열에 맞선다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이준석은 지난 재보궐 선거를 승리로 이끈 김종인의 중도확장성이 대선에서도 필승요인이 될 것으로 보았다. 김종인이 민주당에서 이해찬 등 막강 중진원로들을 쳐냈듯 당시 국민의힘 영남권 중진들을 제어하면서 계파와 지역색을 벗겨 내려 한 시도도 마찬가지다. 보다 젊고 유연한 보수로의 변신 가능성을 본 것이다. 이런 당 체질 개선이 결과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넓히는 데 도움은 되겠지만 애초부터 거기까지 염두에 두었다고 의심할 건 아니다.

압도적 정권교체론에 낙관한 보스 기질의 윤석열은 후보인 자신이 강력한 그립을 쥐지 못하고 승전극의 조연으로 비껴날 것 같은 이런 상황들을 참아낼 수 없었을 것이다. 김종인과 이준석에 대한 거리두기, 주요 인선이나 결정과정에서의 배제, 자기 인맥의 확대 등이 다 이 맥락이다. 이준석은 아이 취급당한다는 자격지심도 털어내지 못했다. 둘은 정치관에서부터 전략, 조직관리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곳도 접점이 없었던 것이다.

억울해도 이제 이준석에게는 혼신을 던져 후보에게 힘을 모아주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다. 정말로 향후 자기정치를 도모하기 위해서라도. 대표로서 선거를 방치하고 졌을 경우 그는 패전의 원흉으로 지목돼 정치기반을 잃을 것이다. 이미 후보 본인이 태반의 원인인 지지율 추락조차 당대표의 몽니로 핑계 삼는 판국이다. 반대로 선거에서 이겼을 경우에도 처음부터 없는 게 나았을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해 재기불능의 치명상을 입을 것이다.

그러니 이준석은 큰 시각으로 처신을 숙고하기 바란다. 윤석열과 국민의힘에서 떠올려지는 강경 보수, 낡고 경직된 기득권 이미지 등을 그나마 희석시킬 수 있는 이는 현재로선 이준석밖에 없다. 떨어져나가는 중도층과 청년층의 발길을 다시 되돌려 후보와 당을 역동적이고 미래 지향적으로 보이게 하는 역할은 그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다.

스스로를 내려놓고, 인내하고 희생하고 헌신해야만 자신이 원하는 미래의 정치자산을 만들고 온존시킬 수 있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화내고 돌아앉고 서운함을 온 몸으로 드러내는 일은 그래서 그만 삼가야 한다.

보수진영을 위해서, 정권연장이 걱정돼서 하는 말이 아니다. 정권교체가 단순한 인물교체가 아닌, 세력과 문화의 교체일진대 양대 후보 누구에게든 기대는 이미 접었다. 다만 지난여름 이준석이 보였던 젊은 새 정치의 청량한 싹이 못내 아까워서다. 찰나의 착시였어도.

그의 시간도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이준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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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한국일보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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