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 반정부시위 격화에 준전시 상황으로...국가 비상사태, 평화유지군 투입

입력
2022.01.06 08:10
수정
2022.01.06 18:59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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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전역에 비상사태, 야간 통행금지
경찰 등 8명, 시위대 수십 명 사망…부상자 속출
아시아나항공 탑승객 공항에 발 묶였다 흩어져
대통령 "시위대는 테러 집단"...강경대응 나서기로
러시아 주도 군사동맹 CSTO 파병 결정

카자흐스탄 최대 도시인 알마티 거리에서 5일 진압경찰(아래쪽)이 에너지 가격 급등에 성난 시위대를 저지하고 있다. 알마티=AP 연합뉴스

카자흐스탄 최대 도시인 알마티 거리에서 5일 진압경찰(아래쪽)이 에너지 가격 급등에 성난 시위대를 저지하고 있다. 알마티=AP 연합뉴스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에서 연료가격 폭등에 항의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져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되는 등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시위가 더욱 격화되자 시위대를 ‘테러리스트 집단’으로 규정하는 한편, 러시아가 주도하는 평화유지군까지 투입을 요구하는 등 강경대응에 나서기로 하면서 전시에 준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5일(현지시간)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 APㆍAFP통신 등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이날 카자흐스탄 전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야간통행금지 조치를 발동했다.

최대 도시 알마티에선 이날 수천 명의 시위대가 시청과 검찰청사, 대통령 관저 등에 난입했다. 일부 시위대는 경찰로부터 빼앗은 곤봉과 방패로 무장했고, 청사 난입 후 화재가 발생하기도 했다. 대통령 관저를 지키던 경찰은 시위대에 총격을 가한 뒤 도주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알마티 외 전국 곳곳에서도 시위대가 관청을 공격하는 등 시위가 격화하고 있다. 카자흐 경찰은 시위대가 경찰 차량을 포함한 차량 120대 이상과 업소 400곳 이상을 파손했다고 밝혔다.

시위가 격화하면서 사망자와 부상자도 속출하고 있다. 카자흐스탄 내무부는 이날 "전국 여러 지역에서 국가근위대 대원과 경찰 등 317명이 부상하고 8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시위대 수십 명도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살타나트 아지르베크 카자흐스탄 경찰 대변인은 "극단주의 세력이 알마티의 정부청사, 경찰청, 경찰서에 침투하려 했다. 공격 가담자 수십 명을 제거해 신원을 파악하고 있다"고 타스통신에 밝혔다.

알마티 공항도 시위대가 장악했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이날 국영 하바르 TV로 중계된 대책 회의에서 시위대를 ‘테러 집단’으로 규정하면서 "테러 집단에 의해 알마티 공항과 외국 항공기를 포함한 5대의 항공기가 장악됐다"고 주장했다. 이날 인천에서 알마티 공항에 도착한 한국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탑승객 70여 명도 한때 공항 청사에 발이 묶였다. 대기하던 이들 가운데 현지에 거처가 있는 탑승객들은 6일 거처로 돌아갔고, 나머지 탑승자들은 인근 호텔로 이동했다고 아시아나항공은 밝혔다.

알마티 공항뿐 아니라 망기스타우 주 공항도 운영이 중단됐다고 리아노보스티 통신이 전했다. 알마티 도심에는 검게 탄 차들이 나뒹구는 가운데 장갑차와 진압 병력이 배치됐다. 대중교통 운행도 중단됐고 상점은 대부분 문을 닫았다.

시위대 일부는 옛 소련권 TV·라디오 방송 채널 '미르'(세계)의 알마티 지국에도 난입해 방송 장비 등을 파괴했으며, 국영 하바르 TV를 제외한 현지 방송들은 대부분 방송 송출을 중단했다. 알마티와 수도 누르술탄에선 이날 인터넷 통신이 두절되고,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와 메신저 서비스도 차단됐다. 알마티의 도시 내 전화통화도 두절됐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토카예프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담화를 통해 “이제부터 당국은 위법자들에게 최대한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강경대응 방침을 밝혔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동맹인 러시아가 주도하는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에까지 도움을 요청했고, CSTO는 평화유지군 파병을 결정했다. CSTO는 러시아·벨라루스·아르메니아·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으로 구성된 군사동맹이다. 주둔 규모와 기간 등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평화유지군 투입만으로도 카자흐스탄이 준전시 상황에 놓였다는 의미로 풀이되고 있다.

이번 대규모 시위는 정부가 새해 들어 차량용 액화석유가스(LPG)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고 가격상한제를 폐지한 조치를 계기로 촉발했다. 시장 자유화로 자국 내 LPG 공급이 원활해질 것이라는 정부 기대와 달리 LPG 가격이 하루아침에 2배 가까이 인상되면서 분노한 시민들이 지난 2일부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연료가격 인하를 약속하고 아스카르 마민 총리가 이끄는 내각 사퇴안을 수리하는 등 민심 수습에 나섰지만, 한번 분노한 민심을 달래기엔 역부족이었다.

김청환 기자
박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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