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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슨 헤어드라이어 사는 데 3개월 대기? '내돈내산'도 힘드네

입력
2021.12.25 13:00
수정
2022.01.14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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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슨 백화점 매장 3개월 만에 입고 예정 문자
매장 방문해 결제해도 물건은 한 주 뒤에 받아
50만 원대 유아의자...백화점몰 버젓이 예약 판매
고가 제품 소비 증가 '프리미엄 소비 시대' 열려

서울 서초구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모습. 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모습. 연합뉴스

주부 이모(45)씨는 지난주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의 한 매장으로부터 문자 하나를 받았다. 구매하려던 제품이 입고 예정이니 구매 의사가 있으면 방문해 결제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제품을 바로 주는 게 아니라 한 주를 더 기다려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이씨가 사려던 물건은 머리카락을 말리는 헤어드라이어('다이슨 슈퍼소닉 드라이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문자를 3개월 만에 받았다는 것이다. 이씨는 9월 다이슨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백화점 매장을 찾았다. 그런데 매장 직원이 내민 것은 다름 아닌 '대기자 명단'. 이 직원은 20여 명의 이름이 나열된 명단을 보여주며 "드라이어가 이달 말에는 입고될 예정이니 일단 이름을 적어두시라"고 했고, 이씨는 이름과 전화번호를 남겼다.

백화점의 인기 품목인 해당 제품은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물건 중 하나로 꼽힌다. 가격은 46만9,000원으로, 헤어드라이어 치고는 꽤 비싼 편이다. 그럼에도 대기자가 많아 쉽게 손에 넣을 수 없다고 한다.

연말연시를 맞아 이런 현상은 더 심해지고 있다. '내돈내산(내 돈으로 내가 사는 것)'하거나 가족이나 친구, 지인을 위한 선물을 사려는 이들이 많아서다. 하지만 갖고 싶은 물건은 비슷하고 수량은 한정돼 있으니 쉽게 가질 수가 없다. 마치 샤넬의 '클미(클래식 플랩백 미디움·1,124만 원)'처럼 아무리 많은 돈을 싸들고 가봤자 살 수 없다는 얘기다.


"언제 입고될지 모르니 대기 명단 작성하세요"

다이슨 슈퍼소닉 헤어드라이어. 홈페이지 캡처

다이슨 슈퍼소닉 헤어드라이어. 홈페이지 캡처

이씨는 이러한 상황이 당혹스럽기만 하다. 그는 "요새 인기있는 해외 브랜드 제품들은 쉽게 살 수 없다고 들었는데 실제로 경험하니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결국 이씨는 이 제품을 사지 않았다. 남편에게 생일 선물로 받으려고 했는데 날짜가 너무 지나버려 다른 것을 선택했다고. 이씨는 "수량이 많지 않아 조기품절 우려가 있다는 매장 직원의 말이 안 사면 또 몇 개월을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라 고민이 많이 됐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해당 백화점뿐만 아니라 다른 백화점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신세계백화점 명동 본점의 다이슨 매장에선 "현재 제품을 구입하실 수 없으며, 매달 입고 일정이 정확하지 않아 대기자 명단을 받고 있다"며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릴 것을 권했다.

롯데백화점 명동 본점도 다르지 않았다. 이곳 매장에서도 바로 제품을 살 수 없다면서 "입고 일정이 나오는 대로 연락을 드릴 테니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리시라"는 답이 돌아왔다.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과 롯데하이마트 잠실점에서도 "해당 제품은 미리 대기를 걸어야 주문하실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다이슨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슈퍼소닉 헤어드라이어가 모두 품절 상태다. 홈페이지 캡처

다이슨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슈퍼소닉 헤어드라이어가 모두 품절 상태다. 홈페이지 캡처

일부 인기 있는 해외 브랜드 제품들의 '품귀현상' 때문에 인터넷에선 구매를 위한 '꿀팁'이 검색되기도 한다. 다이슨 제품의 경우 '공홈(공식 홈페이지)'을 통해 사라는 조언이 많았다. 24일 현재 다이슨 공홈에는 여전히 헤어드라이어 제품은 전체 색상이 품절이다. 다만 '재고 입고 알림' 서비스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입고 일정을 알려주고 있다.

이 때문에 TV홈쇼핑을 이용해 구매하라는 이들도 있다. 고가의 제품이기 때문에 장기간 무이자 할부 및 입고 알림 서비스가 잘 갖춰져 있다는 것이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각 백화점에 입고되는 상품들은 해당 업체에서 백화점의 판매 현황에 맞춰서 수량을 결정해 채워진다"고 말했다. 즉 장사가 잘되는 백화점에는 더 많은 수량이 입고된다는 얘기다. 또 다른 백화점 관계자는 "대부분 고가인 해외 브랜드의 경우 강남권 백화점에 더 신경 쓰는 편"이라며 "소비력이 높은 백화점에 상품의 종류가 더 다양한 것도 그런 이유"라고 설명했다.



겨울옷을 겨울에 살 수 없는 이유

몽클레르 클로에 롱다운 재킷. 홈페이지 캡처

몽클레르 클로에 롱다운 재킷. 홈페이지 캡처

사실 백화점에는 몇 개월씩 대기해야 받을 수 있는 '백화점 대기 상품'들이 있다. 이를 테면 '몽클레르 클로에 롱다운 재킷(339만 원)', '막스마라 아이콘 코트(498만 원)', '스토케 트립트랩 아기 의자(53만 원)' 등이다.

특히 몽클레르, 막스마라 등 겨울 외투들은 이상하게 겨울철에 구입할 수 없다. 물량이 달려 누구든지 아무때나 쉽게 접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매장 직원들은 "여름에 예약하라"고 귀띔해준다. 예약을 하라는 건 여름에도 손에 넣을 수 없다는 뜻. 여름에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으면 순차적으로 겨울에 주문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

백화점에서 겨울에 겨울옷을 살 수 없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굳어진 건 이미 10년이 넘었다. 특히 여성들에게 겨울 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몽클레르 클로에 패딩과 막스마라 아이콘 코트는 현재 인터넷 공홈에서도 품절 상태다. 직장인 김모(33)씨는 "2월 초 백화점 몽클레르 매장에 갔더니 9월쯤 클로에 패딩이 입고된다고 해서 7개월을 대기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막스마라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아이콘 코트는 전 색상과 사이즈가 모두 품절이다. 홈페이지 캡처

막스마라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아이콘 코트는 전 색상과 사이즈가 모두 품절이다. 홈페이지 캡처


막스마라 코트는 백화점이나 매장이 아닌 해외직구나 구매대행으로 사면 100만 원 정도 이득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섣불리 구매하다간 낭패를 볼 수 있다. 바로 다양한 종류에 따른 코트의 길이와 사이즈 때문이다. 이른바 '마담 코트'로 불리는 아이콘 코트는 오버사이즈로 크게 출시돼 사이즈를 맞추기 쉽지 않고, '폴도 울코트'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길이로 난감할 수 있다. 입어 봐야만 사이즈에 맞춰 살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백화점 매장에서 원하는 사이즈의 코트를 만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주부 박모(41)씨는 "백화점에서 마담 코트 40사이즈를 사려고 했지만 해당 사이즈가 없어 입어 볼 수도 없었다"며 "매장 직원은 해당 사이즈를 받으려면 3개월 이상은 대기해야 한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53만 원 유아 의자...없어서 못 판다

생후 6개월 이후 아기들이 앉을 수 있는 의자인 '스토케 트립트랩'. 홈페이지 캡처

생후 6개월 이후 아기들이 앉을 수 있는 의자인 '스토케 트립트랩'. 홈페이지 캡처

유아용품도 대기해야 살 수 있는 시대가 된 지 오래다. 노르웨이 브랜드 스토케의 유아 의자인 '트립트랩'은 50만 원대(베이비세트 포함)의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몇 달씩 대기해야 살 수 있는 제품으로 통한다.

생후 6개월 이후 아기들의 자세를 바르게 교정해준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엄마들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엄마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 제품에 대한 정보가 넘친다. 대부분은 수개월씩 대기해 받았다는 내용이다. 한 네티즌은 이 제품을 지난해 11월에 예약 주문해 올 4월에 받아, 6개월을 대기했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대부분의 정보는 이렇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미리 예약 주문"하라는 것. 또한 온라인으로 구매대행 등을 통하면 사기가 많아 추천하지 않는다는 글도 많았다. 타사 제품과 비교해 장단점을 올려놓은 정보도 눈에 띄었다.

사정이 이러니 백화점 매장이나 온라인몰에서 구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세계와 롯데백화점, AK플라자백화점 등은 자사 온라인몰을 통해 예약 판매를 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온라인몰 SSG닷컴(위 사진)과 AK플라자백화점의 AK몰에서 각각 판매되고 있는 스토케 트립트랩 제품. 각 온라인몰 캡처

신세계백화점 온라인몰 SSG닷컴(위 사진)과 AK플라자백화점의 AK몰에서 각각 판매되고 있는 스토케 트립트랩 제품. 각 온라인몰 캡처

이들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내년 3월 말 입고 예정'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제품을 받을 수 있는 정확한 일정을 모른 채 소비자들은 일단 결제부터 하는 것이다. 또한 의자와 받침대(트레이) 등 구성품을 따로 구매할 수 없게 돼 있다. 한꺼번에 53만 원을 결제해야 한다.

스토케는 200만 원 상당의 유모차들로 유명한 브랜드다. 엄마들 사이에선 스토케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 편이다. 이 때문에 트립트랩을 선호하는 경향이 더 커졌고, '없어서 못 파는 제품'이 됐다.

하지만 스토케가 사실은 국내 기업이 인수한 브랜드라면 어떨까. 1932년 노르웨이 가구 브랜드로 탄생한 스토케는 2014년 국내 게임회사 넥슨의 벨기에법인 NXMH가 인수해 이제는 한국계 기업이다.

스토케는 노르웨이에 본사를 두고 이곳에서 제품 개발 및 생산하고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주부 정모(39)씨는 "스토케는 '유아용품계 에르메스'로 불릴 정도로 프리미엄 브랜드로 통하지만, 정작 한국계 기업이라는 정보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면서 "만약 이러한 사실이 널리 알려진다면 이렇게까지 구매욕을 보일까"라고 말했다.


"프리미엄 소비 시대 열렸다"

서울 압구정동에 소재한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 이스트 전경. 갤러리아명품관은 개장 31년 만에 연 매출 1조 원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갤러리아 제공

서울 압구정동에 소재한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 이스트 전경. 갤러리아명품관은 개장 31년 만에 연 매출 1조 원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갤러리아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보상 소비' 심리가 해외 명품 및 프리미엄 브랜드로 쏠리면서 고가 제품의 수요를 높이고 있다. 수혜를 입은 건 백화점들이다. 코로나19 확산에도 백화점 매출은 상승 곡선을 그리며 고공행진 중이다.

올해 백화점 매출 성적만 봐도 알 수 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올해 '매출 1조 클럽'에 가입한 백화점이 최소 10곳으로 1년 새 2배 늘었다. 특히 갤러리아 명품관과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은 이번에 처음으로 1조 원 매출을 돌파했다. 이들은 소규모 점포에서 최대한의 성과를 냈다는 데 주목받고 있다. 샤넬, 에르메스 등 명품 및 해외 패션 브랜드에 주력하면서 올린 결과다.


16일 오전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 명품관 앞에 많은 시민들이 매장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뉴시스

16일 오전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 명품관 앞에 많은 시민들이 매장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뉴시스


그러면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프리미엄 소비'의 시대가 열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삼성자산운용에 따르면 오미크론 등 변이 바이러스 영향으로 글로벌 증시가 전반적으로 침체된 가운데 프리미엄 브랜드 관련 기업들이 주목받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소비 욕구가 폭발하는 연말 소비 시즌이라는 점과 글로벌 공급대란에 더해 할인율이 높지 않아 비싸고 희귀할수록 잘 팔리는 사치재인 명품 소비가 다른 일반 소비재에 비해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고가 제품 소비의 증가는 결국 브랜드와 품질에 따른 '가심비(가격 대비 만족도)' 소비로 패턴이 바뀌었다는 걸 의미한다. 명품을 사기 위해 새벽부터 백화점을 찾아 '오픈런(Open Run·매장 문을 열자마자 달려가 구매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서 나온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백화점의 명품 브랜드나 프리미엄 가전제품, 스포츠 관련 제품 등의 매출이 크게 늘었는데 이러한 분위기는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어 "소비자들의 구매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백화점이나 면세점은 명품 및 프리미엄 브랜드를 앞세운 마케팅 전략에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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