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대 오른 윤석열의 정의와 공정

입력
2021.12.16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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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현실화한 윤석열의 부인 리스크
제대로 처신 못하면 출마 명분도 잃어
진솔한 반성 사과 미적거릴 일 아니다


다들 이런 대선은 정말 처음일 것이다. 역대 최악인 비호감 후보 간 경쟁에 급기야 부인 문제까지 얹혀졌다. 작은 구설에 오르내린 대통령 부인들은 혹 있었어도 선거 전부터 이토록 심각한 시비에 휘말린 경우는 없었다. 결론부터 말해 윤석열 후보(이하 호칭 생략)의 부인 문제는 대충 넘어갈 곁가지 해프닝이 아니다.

이번 대선은 역설적으로 인물선거다. 이재명의 정책에는 진정성이 없고 윤석열에겐 정책이랄 게 없으니 당초부터 정책대결이 성립할 여지가 적었다. 남는 건 인성 도덕성 정직성 같은 것일진대 여기서 그나마 좀 나아 보였던 윤석열이 부인 일로 급락의 벼랑 끝에 서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 문제와 관련한 처신은 그의 정체성을 재규정하고 선거의 향방을 가르는 주요 지표의 하나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더구나 그의 대선출마 명분이 ‘법치와 상식, 공정의 회복’이었다. 사실은 이게 촛불시위의 본질이었으되 이 정권 5년 동안 도리어 후퇴했거나 유예된 가치다. 이에 대한 실망이 워낙 깊어 많은 이들은 그의 무비(無備), 무지, 무감, 요령부득에도 눈을 질끈 감았다. 장모의 위법이나 부인의 괴소문에도 결혼 전 일로 애써 양해했다. 대단한 관용이었다.

이번 허위 이력 건은 다르다. 이 역시 윤석열과 무관한 혼전 일이거나 결혼 후에도 굳이 따져볼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뭘 잘못했다는 거냐”라는 식으로 대응한 순간, 부인이 아닌 그의 문제가 됐다. 행정경험이나 대중정치력에서 이재명에 비해 밑천이 없다시피 한 그의 거의 유일한 자산이 정의, 공정의 추상적 가치다. 그걸 스스로 허물면서도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다면 기본적인 판단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하물며 국가의 명운이 걸린 사안을 시시각각 판단해야 하는 국정 최고책임자로서야.

더욱이 예전 관행을 핑계 삼는 모습은 지금 그를 있게 한 조국 사태의 데자뷔다. 마지못한 사과의 변도 그렇다. “여권의 기획공세가 부당하지만 국민 눈높이에 미흡하다면” 따위의 조건을 주렁주렁 달면 사과가 아니다. 이런 톤의 사과 흉내는 사실 과거 조국 진영에서도 여러 번 나왔다. 결국 용서받지 못했고, 이후 문 정부가 정의, 공정을 떳떳하게 입에 올리지 못했음은 익히 아는 대로다.

마찬가지다. 윤석열이 이 건을 두루뭉술하게 넘어갈 경우 앞으로 그가 말하는 정의와 공정이 얼마나 희화적으로 받아들여질지는 뻔하다. 현 정권에 대한 복수심으로 가득한 일부 강경보수의 한풀이 도구로나 동원될 것이다. 강성 이미지를 순화하려 부쩍 강조하는 통합 메시지도 당연히 무의미해진다. 혹 정권교체를 이룬들 차기 정부는 자칫 공수만 바뀐 현 정부의 재판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윤석열로선 이것저것 따질 계제가 아니다. 잘못 인정에 따르는 비난은 마땅히 감수할 몫이다. (단, 조국을 열렬히 옹호했던 이들만큼은 같은 논리라면 윤석열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 기획공세나 관행 따위의 구차한 변명, 또는 수위 조절 따위의 얕은 계산은 싹 걷어치우고 사실 그대로 사과의 진정성을 보이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 (부인에게는 더한 주문을 하고 싶지만 일단 삼간다.) 대장동 의혹에 미적거렸던 이재명이 아들 도박 건엔 곧장 사과하고 법적 책임까지 떠안은 것도 이 사안의 파괴력을 읽었기 때문일 게다.

어차피 미운 상대를 떨구기 위한 반(反)선택에서는 이성보다 감성 요소가 더 크다. 논리적 회피보다 우직한 정직이 훨씬 낫다는 말이다. 무엇보다 “이래도 찍겠냐”라는 식으로 코너에 계속 몰려가는 보수 지지층이나 중도 부동층의 고민스러운 처지가 딱하지도 않나.

이준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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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한국일보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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