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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회 징계요? 가해자는 잠깐 쉬다 돌아오겠죠" [일그러진 스포츠]

입력
2021.12.20 13:00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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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스포츠 비리에 '아웃'은 없었다
자격정지·제명 등 '실질적 중징계' 40% 불과
징계논의 과정도 '깜깜이' "공정한 판단 난망"
솜방망이 징계 보복 공포만 "규정 정비해야"

지난달 27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대한체육회 앞에 걸린 오륜기 앞으로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 뉴스1

지난달 27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대한체육회 앞에 걸린 오륜기 앞으로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 뉴스1

"체육회 징계요? 거기 짬짜미라서 요청해도 소용없어요. 기대도 안 했어요."(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출신 정모씨)

"가해자는 잠깐 쉬다가 돌아올 거고 결국 나만 더 괴로워질 텐데요."(아이스하키 선수 출신 이모씨)

가혹 행위를 견디다 못 해 체육계를 떠난 선수들이 '체육회 징계'에 대해 남긴 날 선 반응들이다. 견책, 감봉, 출전정지, 자격정지, 해임, 제명. 대한체육회와 산하 단체들이 문제가 있는 지도자 등에게 내릴 수 있는 징계는 6가지나 된다. 그럼에도 선수들이 징계 시스템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체육회 징계가 ①솜방망이 처분과 다르지 않고 ②피해자에 대한 보복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절반은 '경징계'... 재심에서도 제명·해임된 경우는 7.6%뿐

장애인 수영선수들이 8일 인천 연수구 인천장애인국민체육센터 내 수영장에서 연습을 하고 있다. 인천=홍인기 기자

장애인 수영선수들이 8일 인천 연수구 인천장애인국민체육센터 내 수영장에서 연습을 하고 있다. 인천=홍인기 기자

19일 대한체육회에 따르면 체육인들에 대한 징계는 시도 위원회 및 종목위원회를 거쳐 대한체육회에서 결정된다. 1차 징계 권한이 시도 위원회·종목위원회에 있고, 당사자가 이의를 제기하거나 국가대표 지위 관련 비위 등 사안이 중대한 경우 상위기관인 대한체육회에서 재심이 열린다. 각 위원회는 스포츠공정위원회(상벌위원회)를 열어 징계 여부와 수위를 논의한다. 규정상 스포츠공정위원회는 과반 이상 외부인사로 구성돼야 한다. 체육회는 이 점을 근거로 투명성을 확보한 회의체에서 징계를 엄중히 논의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체육회가 그동안 내렸던 징계의 절반 이상이 '경징계'로 나타났다. 한국일보가 입수한 '시도위원회와 종목위원회의 2014~2020년 징계 현황'에 따르면 자격정지, 제명, 해임 등 '실질적인 중징계' 비율은 1,171건 중 479건(40.9%)에 불과했다. 10건 중 6건이 견책, 감봉, 일부 경기 출전정지 등 가벼운 처분에 그쳤다는 의미다.

재심을 통한 대한체육회 징계 결과도 마찬가지다. 2017년부터 5년간 대한체육회가 최종 승인한 징계 조치에 따르면, '1년 이상 자격정지'가 내려진 경우는 1,187건 중 394건(33.2%), 제명·해임은 90건(7.6%)에 불과했다. 체육회는 출전정지 역시 중징계로 분류하고 있으며, 징계 조항을 세분화하기 위해 규정을 정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외부 인사가 절반이라지만... '깜깜이 회의'인 스포츠공정위원회 회의

스포츠공정위원회 위반 행위별 징계 기준. 그래픽=송정근 기자

스포츠공정위원회 위반 행위별 징계 기준. 그래픽=송정근 기자

스포츠공정위원회의 징계 논의 과정은 '깜깜이'나 마찬가지다. 스포츠공정위 회의록과 징계 결과 등은 개인정보보호법을 이유로 공개되지 않고 있고, 위원회에서 징계를 내리는 기준 역시 모호하기 때문이다.

공정위 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는 한 체육계 인사는 "위원회에 외부인사가 참여한다고 하지만, 체육계 내부 인사들과 학연과 지연 등으로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어 공정한 판단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고의성과 피해 정도를 증명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감경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2차 피해 막기 위한 규정도 미비... 체육회 "징계 세분화할 것“

지난달 26일 경기 성남시 탄천종합운동장 빙상장에서 '제37회 회장배 전국 남녀 쇼트트랙 대회'가 치러지고 있다. 성남=이한호 기자

지난달 26일 경기 성남시 탄천종합운동장 빙상장에서 '제37회 회장배 전국 남녀 쇼트트랙 대회'가 치러지고 있다. 성남=이한호 기자

현행 징계 관련 규정은 피해 선수들이 느끼는 보복에 대한 두려움도 해소해주지 못한다. 스포츠계가 워낙 폐쇄적이고 '한 다리 건너면' 대부분 아는 사이라 피해를 호소하고 도움을 요청하려면 그만둘 각오까지 해야 한다. 특히 제대로 된 처벌은커녕 가해자들이 멀쩡히 팀으로 복귀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 피해자들의 신고 의지를 꺾고 있다.

대한체육회는 4대 스포츠 범죄(승부 조작, 편파 판정, 폭력·성폭력, 횡령·배임)로 자격정지 1년 이상의 중징계를 받으면 영구히 지도자·심판·선수관리 담당자가 될 수 없다고 못 박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자격정지 1년 이하' 징계를 받은 경우는 원래 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지도자 선발 시 징계정보시스템을 통해 이력을 조회할 수 있지만, 개인 강습을 하거나, 징계 이력이 있는데도 해당 팀에서 채용하기로 결정하면 마땅히 제재할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후배를 폭행해도 영구 제명되지 않는 한 선수 생활을 계속할 수 있는 이유도 이 같은 제도적 허점 때문이다. 실제로 2016년 전국고교대회에서 우수선수상을 받은 한 야구선수는 저학년 선수를 방망이와 공 등으로 때려 2017년 자격정지 3년 처분을 받았지만, 현재 국내 프로선수로 뛰고 있다.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규정도 전무하다. 피해자와 가해자 분리 조치를 명시한 조항이 없어 출전정지와 자격정지 등의 징계가 끝나면 가해자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피해자가 있는 곳으로 복귀할 수 있다.

대한체육회는 징계 규정을 정비 중이라는 입장이다. 체육회 관계자는 "빠른 시일 내에 피해자 보호 관련 조항을 신설하고, 현재 경미한 정도와 중대한 정도로만 구분돼 있는 징계 기준을 세분화해 이사회 의결을 거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사회는 이달 27일 열린다.


[인터랙티브] 전국 '징계 체육인' 1,187명 현황공개

페이지링크 : https://interactive.hankookilbo.com/v/athletics_discip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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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소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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