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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법' 통과 11개월… 빈틈 알면서도 정치권은 나 몰라라

입력
2021.12.09 09:30
수정
2021.12.09 09:33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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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 의원들 개정안 6개월째 논의 없이 계류
정의당 다시 나섰지만... 尹 '후퇴', 李 '소극'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가 2019년 2월 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고인의 영결식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씨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설비 점검 도중 사고로 숨졌다. 연합뉴스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가 2019년 2월 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고인의 영결식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씨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설비 점검 도중 사고로 숨졌다. 연합뉴스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 등 산업재해 사망자 유가족의 울부짖음으로 제정된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이 제정된 지 11개월이 지났다. 입법 과정에서 후퇴만 거듭한 탓에 국회도 지금 법으로는 모든 노동자를 보듬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안다. 산재의 온상인 5인 미만 사업장이 적용 대상에서 빠진 것만 봐도 그렇다.

법이 시행(내년 1월 27일)되기도 전에 몇몇 의원들이 개정안을 발의한 것 역시 이런 반성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거대 여당과 야당은 개정안에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다. 심지어 정치권의 관심이 죄다 대선에 쏠렸기 때문인지 중대재해법을 더 누더기로 만들려는 퇴행적 움직임마저 나오고 있다. “김용균을 보호하지 못하는 김용균법을 보완하라.” 10일은 김용균씨가 세상을 등진 지 3년이 되는 날이지만, 노동자들의 분노는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일단 법 만들었으니 끝?

7일 충남 태안군 원북면 태안화력발전소 앞에서 열린 김용균씨 3주기 추모제 시작 전 어머니 김미숙씨가 아들의 동상을 어루만지고 있다. 태안=연합뉴스

7일 충남 태안군 원북면 태안화력발전소 앞에서 열린 김용균씨 3주기 추모제 시작 전 어머니 김미숙씨가 아들의 동상을 어루만지고 있다. 태안=연합뉴스

8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이탄희ㆍ김영배 의원은 각각 5, 6월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법안을 논의할 때 부족했거나 미처 챙기지 못한 부분을 보완해 담았다. 이 의원 법안은 중대재해 발생 시 책임자에게 최소 1억 원의 벌금을 물게 했다. 하한선을 둬 솜방망이 처벌을 막겠다는 취지다. 현행법에는 상한선(10억 원 혹은 50억 원 이하)만 규정돼 있다. 김 의원 법안은 건축물 해체 공사 과정에서 입은 피해를 중대재해에 포함시켰다. 6월 광주 학동 재개발 공사현장에서 해체 건물 붕괴로 9명이 사망했으나 중대재해법으로는 처벌이 어려워 추가했다.

반년이 지난 현재 개정안은 어떤 운명을 맞았을까. 이 의원 법안은 7월, 김 의원 법안은 9월 법사위원회에 안건으로 상정됐다. 하지만 당시 회의록을 보면 관련 논의는 찾아볼 수 없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원내 1ㆍ2 정당이 전혀 처리 의지를 보이지 않아서다. 민주당 관계자는 “특별히 중점을 두고 있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중대재해법 통과를 주도한 정의당이 다시 팔을 걷어붙였다. 9일 개정안을 내놓는데, 법제화 단계에서 빠진 부분을 복원하는 것이 핵심이다. 책임 소재를 분명히 묻는 조항도 담길 예정이다. “이번 대선을 김용균이 살아 움직이는 대선으로 만들겠다”는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의 일성이 허언이 아님을 증명하겠다는 얘기다.

정의당 안간힘 쓰지만... 거대 양당은 침묵

이재명(오른쪽)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8일 국회 의원회관 3층 전시공간에서 열린 김용균씨 3주기 추모 사진전을 둘러본 뒤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과 대화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오른쪽)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8일 국회 의원회관 3층 전시공간에서 열린 김용균씨 3주기 추모 사진전을 둘러본 뒤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과 대화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전망은 낙관적이지 않다. 거대 양당의 협조 없이는 법의 빈틈을 메우기가 불가능하다. 특히 대선후보가 의지를 보여야 하는데,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일찌감치 선을 그었다. 외려 기업인 책임을 경감하는 쪽으로 중대재해법 손질 의지를 비치기까지 했다. 윤 후보는 1일 중대재해법을 “경영 의지를 위축시키는 법”이라고 했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보완 필요성을 언급하긴 했으나 딱히 적극적이진 않다. 8일 김용균씨 추모 전시회에서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을 만난 이 후보는 “제 몸에도 (산재가) 박혀 있다”며 공감했을 뿐, 희망을 품을 만한 약속은 하지 않았다. 그는 이후 페이스북에 “있는 법부터 잘 지켜질 수 있도록“이라는 말로 일단 개정을 유보했다. 다만 “작은 빈틈이라도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요인은 없는지 꼼꼼히 살피고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하겠다“고 여지를 남겼다.

‘기업의 조직문화 또는 안전관리 시스템 미비로 인해 일어나는 중대재해사고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함.’ 중대재해법 취지다. 그러나 현행법과 입법 목표의 괴리는 너무 크다. 이대로라면 정작 노동자는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무늬만 법안’이 될 가능성이 크다. 김미숙씨는 이 후보를 만난 자리에서 다시 절규했다. “더 이상 죽지 않게 만들어 주세요. 조금 실수한다고 해서 사람 죽으면 안 되잖아요.”

신은별 기자
홍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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