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이 사라진다면(#Save Our Cinema)

입력
2021.12.07 22:00
27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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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때마다 으레 거행하던 우리 집의 기념의식이 있다. 다른 집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아주 일상적인, 그것은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가는 일이었다. 명절 시즌에는 가장 대중적인 '텐트폴(tentpole) 영화'가 극장에 걸린다. 남녀노소, 누구나 이해할 수 있으면서 재미와 감동을 한 번에 느낄 수 있는 주력 영화들이 이 시기에 개봉한다.

내가 티켓을 발권하는 동안 부모님은 매점에서 팝콘과 콜라 세트를 사고, 전단지를 살펴보며, 화장실도 다녀온다. 극장 로비는 가족 단위로 온 관객들과 커플들로 왁자지껄하고 영화에 대한 기대감과 즐거움이 팝콘의 짭짤하고 달달한 냄새처럼 풍겨져 나온다.

어두컴컴한 상영관에 들어가면 스크린에는 다른 영화의 예고편이나 광고가 나오고 있다. 이윽고 조명이 어두워지고, 투자배급사와 제작사의 로고가 화면에 뜨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미묘한 긴장감이 감도며, 자세를 정돈하고 곧추앉는다.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간간이 웃음을 터뜨리는 부모님의 얼굴을 보는 것도 내겐 즐거움이었다.

낯선 이들과 함께 웃고 우는 시간들을 지나 극장을 빠져나오면 두 시간 정도 남짓한 사이에 바깥 풍경은 미묘하게 바뀌어 있다. 집으로 가는 길, 영화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나누다 보면 비로소 연휴가 끝났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지금은 종영했지만, 개그콘서트가 끝나면 일요일이 끝났다고 생각하던 그 일상적인 습관처럼 말이다. 극장을 가는 것은 지극히 일상적이면서도 특별한 우리의 기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마스크를 쓰지 않고 팝콘을 먹으며 영화를 보던 일상이 아득한 과거의 추억인 것만 같다. 몰입을 방해한다고 느꼈던 팝콘 씹는 소리마저 그립다. 코로나19가 약 2년의 시간 동안 일상의 지평을 바꿔 놓고 있을 때, 영화 산업도 존폐의 위기를 맞았다. 독립영화, 다양성 영화, 상업 영화,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영화를 망라한 모든 영화들이 앞으로 계속해서 영화가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한 위기의식을 공유하게 되었다.

그간 영화계는 수많은 개봉작들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 관객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까만 고민했을 뿐, 관객들이 극장을 찾지 않는 순간에 대해서는 고민해 본 적이 없다. 물론 이전에도 독립영화관들은 극장을 지켜내기 위해 분투해야 했지만, 지금처럼 위기감을 맞았던 적은 없었다.

계속해서 악순환의 고리다. 극장에 관객이 없으니 영화를 상영하지 않고, 영화가 없으니 극장에 관객이 오지 않는다. 이 사이 OTT플랫폼은 영화의 대체제로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OTT 플랫폼을 통해 집의 소파에서 영화나 시리즈물을 보는 것도 편안하고 즐거운 일이지만 그것은 체험이라기보다는 본다는 행위에 더 맞닿아 있다. 극장을 찾고, 불이 꺼지고, 극장을 나오는 동안의 행위는 분명 품이 드는 일이지만, 이 행위들은 마치 그리운 냄새처럼 많은 감정들을 복기할 수 있게 만든다. 그 것이 일상의 순간을 이벤트로 변모시키는 극장의 힘이다.

영화는 흑백에서 컬러로, 무성에서 유성으로, 3D로, 아이맥스로, 다양한 장르와 깊이 있는 고민들로 변화하며 우리 곁을 지켜왔다. 영화는 평등하고 값싼 친구다. 어떤 영화는 두 시간 남짓한 사이에 인생을 바꿔 놓기도 한다.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기쁨을 과거의 전유물로 두기엔 영화는 여전히 풀어놓지 못한 특별한 이야기를 많이 갖고 있다. 나는 이 평범하고 특별한 순간들을 당신과 함께 누리고 싶다. #Save Our Cinema



윤단비 영화감독·시나리오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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