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출범 11개월, 성적표는 초라한데 '센 놈 잡기'만

입력
2021.12.06 04:3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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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 사주 의혹 손준성 검사 영장 또 기각
공수처 역량 투입하고도...부실 수사 논란
조직 및 능력 다잡을 기회 놓쳤다는 평가
"단기간에 성과 내려다 무리하고 있어...
1, 2년 동안 수사 기초 쌓는 기간 가져야"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지난 3일 오전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뉴시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지난 3일 오전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뉴시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향한 우려와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출범 이후 지난 11개월간 보여준 각종 논란에 대한 실망감이 쌓여가는 데다 현재 평가할 수 있는 성적표마저 초라한 데 따른 일종의 '중간평가'다. 여기에 공수처 역량이 결집된 최근의 고발사주 의혹 수사에서도 핵심 피의자인 손준성 검사 구속에 연이어 실패하면서 '무능력'의 꼬리표까지 등장하고 있다.

법조계 일각에선 공수처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관련 수사 등에 무리하게 뛰어들고 있다며 "검찰의 안 좋은 면을 답습하고 있다"는 지적도 내놓는다. 지금은 사건 규모는 작아도 실체를 확실히 드러낼 수 있는 수사를 통해 경험을 차근히 쌓아 나가는 게 우선이라는 조언이 나온다.

"저희는 아마추어" 한탄에...고개드는 공수처 폐지론

5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를 향한 비판은 고발 사주 의혹 핵심 피의자인 손 검사에 대해 청구한 두 번째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본격화됐다. 피의자 조사가 생략된 첫 번째 구속영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과잉 수사'라는 지적을 받았던 공수처가 두 번째엔 '혐의와 구속 필요성 소명 부족'으로 손 검사 신병 확보에 실패한 것이다. 첫번째가 수사 초기였다는 점을 감안, '성명불상자'로 돼 있던 고발장 작성 및 전달 주체가 두 번째 영장에는 어느 정도 특정됐을 것으로 기대를 했지만 실상 큰 진전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공수처는 여운국 차장검사를 비롯해 총 5명의 검사가 참석한 영장 심사에서 "고발장 작성자는 누구냐"는 영장판사 질문에 확실한 답을 내놓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여 차장검사는 "저나 공수처장은 수사 경력이 없다. 이런 면에서 아마추어"라며 "수사 베테랑인 손 검사를 수사하는데 상당히 어렵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손 검사는 검찰 내에서 수사가 아닌 '기획통'으로 분류된다.

자충수 논란 마다 '우리는 다르다' 고집스러운 모습

문제는 이 같은 '아마추어'라는 인식과 실제 행보 사이에 상당한 간극이 있다는 점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출범 초기 일었던 논란을 조직을 다잡을 기회로 살렸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공수처는 지휘부, 수사검사 정원을 채우는데도 어려움을 겪기도 했고, 뽑힌 검사도 대부분 특별 수사 경험이 없다. 아직 농익은 '수사 테크닉'을 발휘할 수준이 아님에도 공수처의 차별성만을 부각하면서 수사의 기본 절차 등은 무시했다는 비판이다.

공수처는 지난 3월 이성윤 서울고검장 황제소환 논란을 겪기도 했다. 김학의 전 법무부차관 불법 출국금지 의혹 사건 수사에 대해 외압을 가했다는 혐의를 받는 이 고검장이 김진욱 공수처장의 고급 관용차를 제공받아 공수처 청사에 출석, 면담을 한 것이다. 공수처가 해당 면담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판의 여론은 들끓었다. 하지만 당시 공수처는 피의자 인권을 중시하고, 관용 차량이 부족했다는 이유를 들며 '기존 수사 기관과 다르다'는 점을 내세웠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입건 사건. 송정근 기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입건 사건. 송정근 기자

공수처는 이후 고발사주 의혹으로 김웅 국민의힘 의원실을 압수수색했다가 법원으로부터 "위법성이 중대하다"는 압수수색 효력 취소 결정을 받았다. 지방검찰청 한 차장검사는 "위법한 압수수색 같은 절차상 흠결이 있으면 수사는 정당성을 잃는 것"이라며 "자칭 인권 친화적이라는 공수처가 오히려 인권을 침해한 꼴"이라고 꼬집었다.

검찰 안 좋은 면 닮아가는 공수처

공수처가 주어진 힘에 취해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가 짧은 기간에 존재감 드러내기 위해 '센 놈 잡기'에 혈안이라는 비판이다. 감사원 조사가 있었던 조희연 교육감 특혜 채용 의혹 수사를 1호 사건으로 선택했을 당시에만 해도 "공수처가 쉬운 길로 가려 한다"는 지적을 받았지만, 이후 오로지 '윤석열 후보' 관련 사건에만 달려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기존의 검찰과 뭐가 다른 건지 모르겠다'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범죄 구성 요건도 제대로 채우지 않은 상황에서 손 검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잇달아 청구하는 등 피의자 구속에 목매는 모습이 과거 검찰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는 이유에서다. 특별 수사 경험이 많은 검찰 출신 변호사는 "소환이나 영장 청구 같은 수사 액션을 부각하는 검찰의 나쁜 모습이 공수처에서도 엿보인다"며 "당분간은 적절한 사건 수사를 통해 실력을 차근차근 쌓아가는 게 더 필요해 보인다"고 조언했다.

이상무 기자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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