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판 허가 전 약물 왜 썼나” 보호소-동물병원 ‘유기견 실험’ 의혹

입력
2021.12.06 10:30
수정
2021.12.07 11:23

유기견을 보호하는 동물보호소가 동물병원과 결탁해 유기견을 약물 임상실험에 동원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게티이미지뱅크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입니다.

유기견을 보호하는 동물보호소가 동물병원과 결탁해 유기견을 약물 임상실험에 동원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게티이미지뱅크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입니다.

유기견 200여 마리를 보호하는 사설 동물보호소와 동물병원이 결탁해 유기견을 불법 동물실험에 동원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동물권연구변호사단체 PNR은 보도자료를 통해 “경기 남양주시에 위치한 사설 동물보호소를 운영하는 비영리민간단체 대표 A씨와 서울의 동물병원 수의사 B씨를 불법 동물실험 혐의로 9월 경찰에 고발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사건을 PNR에 제보한 C씨에 따르면 2018년, 보호소 유기견 6마리가 B씨의 동물병원에서 신약 실험에 동원됐습니다. C씨는 동그람이와의 통화에서 “동물병원은 보호소 연계병원이었으며 해당 유기견들의 진료 차트에서 실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동물실험의 목적은 신약 임상이었습니다. 진료 차트에는 ‘관절액 투여 후 관찰’이라는 기록이 보입니다. 한 유기견의 경우 관절액 투여 이후 3개월 가량 지속 관찰했으며, ‘부작용 증상 없고 임상 증상에 개선이 보이고 있다’는 평가도 진료 차트에 남아 있습니다.

2018년 11월 동물병원 관절액 투여 실험에 동원된 한 유기견의 의료 차트 중 일부. 임상 증상의 개선이 기록된 것으로 보아 임상실험을 진행한 듯하다. 제보자 C씨 제공

2018년 11월 동물병원 관절액 투여 실험에 동원된 한 유기견의 의료 차트 중 일부. 임상 증상의 개선이 기록된 것으로 보아 임상실험을 진행한 듯하다. 제보자 C씨 제공

C씨가 A씨에게 진료 차트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자 A씨는 “정식으로 시판된 한 제약회사의 약물을 주사한 것이며 동물실험은 말도 안 된다”고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제보자 C씨가 해당 약물에 대해 농림축산식품부에 문의한 결과 A씨가 언급한 약물은 2020년에 허가받은 약물이었습니다. 즉, 유기견에게 사용된 약물은 진료 차트가 작성된 2018년에는 일반 동물병원에서 사용할 수 없었다는 뜻입니다. C씨는 이 점을 들어 “약물을 시판하기 전인 임상시험 단계에 보호소 동물들을 동원한 것 같다”고 추정했습니다. 실제로 동물병원 수의사 B씨는 동물실험 대행업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관절액 외에 비만 치료제 실험도 진행됐습니다. 진료 차트에 ‘비만 실험’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어서입니다. 그런데 이 중 유기견 ‘다미’의 경우, 2018년 8월 비만 실험을 진행할 당시 체중은 10.3kg이었습니다. 반면 2월 동물병원에 내원했을 때의 체중은 11.8kg이었습니다. 즉, 체중이 감소하는 개를 대상으로 비만 실험을 진행한 겁니다. C씨는 “다미는 보통의 중형견 정도 크기로 비만이라고 볼 수 없는 상태”라며 “애초에 실험 자체가 불법이지만, 다미는 실험 대상도 아니었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미는 실험 직후인 2018년 8월31일 급성 신부전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비만 실험과 다미 죽음의 인과관계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2018년 세상을 떠난 유기견 '다미'의 생전 모습.(왼쪽)다미는 8월 비만 실험을 진행했는데, 이 당시 다미의 체중은 2월 동물병원 방문 당시보다 1kg 이상 줄어든 상태였다. 제보자 C씨 제공

2018년 세상을 떠난 유기견 '다미'의 생전 모습.(왼쪽)다미는 8월 비만 실험을 진행했는데, 이 당시 다미의 체중은 2월 동물병원 방문 당시보다 1kg 이상 줄어든 상태였다. 제보자 C씨 제공

무려 3년 전에 발생한 사건이지만, 이를 확인한 건 올해 초입니다. 이제서야 이 문제가 불거진 이유는 소장 A씨의 독단적인 운영 때문이라고 합니다. C씨는 “과거 한 봉사자가 응급한 상황이 생겨 동물병원에 동물을 데려갔지만, A씨가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진료를 거절당한 사례도 있었다”면서 동물병원 이외에도 보호소 운영은 전혀 투명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PNR 소속 김명수 변호사는 “동물보호법에 따라 유기동물로 동물실험을 진행하면 형사처벌 대상이지만, 이곳 동물들은 영문도 모른 채 실험의 대상으로 전락했다”며 “이는 생명체를 심각하게 경시하는 행동으로 엄하게 죄책을 물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경찰은 고발장을 접수한지 2개월 만인 11월, 고발인을 소환해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정진욱 동그람이 에디터 8leonardo8@naver.com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