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폭력 현장을 본다면 당신은? 유튜브 '사회 실험 영상' 명암

입력
2021.12.03 04:20
10면
구독

주변 도움 필요한 상황 연출, 시민 반응 몰래 촬영
"코로나로 단절된 사회에 소속감 확인" 인기 요인
장애인·여성 곤경이 단골 소재 "차별·편견 조장" 지적

시민이 소수자 혐오 연기를 하는 배우를 피해 여장남자 역할을 맡은 배우를 데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온하트’ 영상 캡처

시민이 소수자 혐오 연기를 하는 배우를 피해 여장남자 역할을 맡은 배우를 데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온하트’ 영상 캡처

#한 남성이 주변 사람 들으라는 듯 가출 청소년에게 "월 200만 원씩 줄 테니 비밀친구를 하자"면서 자기 집에 가자고 큰 소리로 설득한다. 이 광경을 지켜본 여성 시민이, 남성이 잠시 자리를 비운 새 청소년에게 다가가 "도와줄 테니 남성을 피해 나가자"며 말을 건다. 공공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말도 덧붙인다. 다시 나타난 남성이 자리를 피하려는 청소년을 따라가려 하자, 이 여성은 "무슨 짓이냐. 이게 정상이냐"라고 소리치고 학생도 "가지 않겠다"고 거부한다. 갈등이 고조되는 차에, 남성과 학생이 여성에게 자신들이 배우라는 사실을 밝히면서 몰래 촬영하고 있던 카메라를 가리키고 영상은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주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극단적 상황을 연출한 뒤 이를 접한 시민들의 반응을 몰래 촬영하는 이른바 '사회 실험' 콘텐츠가 인기를 끌고 있다. '일상은 각박하기만 한데, 사라진 줄 알았던 따뜻한 인간미를 되살려주는 것 같다'는 시청자 반응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영상 상당수가 청소년 성매매, 아동 학대 등 사회적 약자를 상대로 한 불법 행위를 가정하고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사회 실험 콘텐츠 인기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2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프랭키 프렌즈' '키즐' 등 사회 실험 영상을 전문적으로 올리는 유튜브 채널의 게시물은 많게는 조회수 1,000만 회를 넘길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영상 소재는 '휴지를 매단 채 거리를 활보하는 여성을 본다면'처럼 사소한 것부터 '누군가 다리에서 자살 시도를 한다면'처럼 극단적인 것까지 다양하다.

대부분의 영상은 공개된 장소에서 배우가 도움이 필요한 상황을 연기하고, 지나가는 시민 반응을 숨어서 지켜보는 식이다. 제작자들은 현실에서 언제든 접할 법한 상황을 설정한다고 설명한다. 그래야 '실험 대상'인 시민들의 행동을 이끌어 낼 수 있고, 시청자도 쉽게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 실험 영상을 제작하는 유튜브 채널 '온하트'의 구본혁 PD는 "'내가 이 상황에 처한다면 도움을 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수 있게끔 일상적 상황을 연출해 감정 이입을 이끌어내려 한다"면서 "최근 나온 뉴스에서 소재를 얻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정형화된 형식이라 할 수 있는 '몰래카메라' 콘텐츠의 일종인데도, 사회 실험 영상이 인기를 끌고 있는 데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이 적지 않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화되면서 개개인이 느끼는 단절감이 커지다 보니, 자신이 사회에 소속돼 보호받고 있다는 대리만족을 주는 콘텐츠에 끌린다는 것이다. 신성만 한동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회 실험 콘텐츠들은 '내가 불운한 상황에 처해도 사람들이 도와주겠구나' '내가 이 공동체에 속해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면서 "코로나19로 단절감을 많이 느끼는 상황에서 한동안 인기를 누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불행 포르노"… 강자의 시선만 담길 우려도 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휴머니티를 강조하는 영상이라지만, 사회 실험 영상엔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처럼 자극적 소재가 빈번히 사용되는 터라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채널 간 경쟁이 심화하면서 수익 창출을 위해 데이트폭력, 아동학대 등을 내세워 관심을 끄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생 이수현(23)씨는 "데이트 폭력을 연출한 영상을 보고 거부감을 느꼈다"면서 "누군가의 불행한 모습만 들여다보는 '불행 포르노' 같다"고 비판했다. 20대 이모씨도 "(자극적 연출은) 시민들의 트라우마를 유발하거나 안 좋은 기억을 남길 수 있을 것 같다"고 지적했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대상이 장애인이나 여성 일색이라는 점을 문제 삼는 이들도 많다. 이들을 주체적 존재가 아니라 강자에게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로 여겨지게끔 한다는 것이다. 지체장애 유튜버 '굴러라 구르님'은 자신의 채널에 올린 영상에서 사회 실험 콘텐츠에 대해 "앞뒤 맥락은 없고 장애인이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만 제시된다"면서 "철저히 비장애인의 시선에서 제작된 장애 전시"라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영상 제작자의 자정 노력만으로는 이처럼 편견을 조장하는 콘텐츠 문제를 해소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원하는 시청자와 수익을 내려는 유튜버의 욕구가 맞물리면 콘텐츠 내용이 악화하기 쉽다"고 지적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유튜버 제작자는 별도의 윤리 교육이나 제재를 받지 않는다"며 "표현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이용한 모니터링 등 추가적 규제 장치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장수현 기자
오지혜 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