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한국일보문학상] "내가 쓴 소설 믿고 싶어졌다"

입력
2021.11.25 04:30
수상자 최은미 작가 인터뷰


제54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눈으로 만든 사람'을 쓴 최은미 작가가 22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류효진 기자

지난 6월 신작 소설집 ‘눈으로 만든 사람’을 출간한 직후 한국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최은미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소설을 쓰는 동안 내 목소리뿐만 아니라 동시대 다른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했어요. 제 고통이 공적인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고 그것만으로도 숨이 트였죠. 책에는 제가 그렇게 들은 다양한 여성 화자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어요.”

그러니 제54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으로 ‘눈으로 만든 사람’이 결정됐다는 것은, 소설 속 여성들의 목소리에 응답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22일 문학상 수상 기념 인터뷰를 위해 5개월 만에 다시 만난 최 작가는 “수상 소식이 소설 속 여성 인물들에게 보내주는 지지 같았다”고 말했다.

최종 수상은 처음이지만 최 작가는 한국일보문학상 단골 손님이다. 첫 소설집인 ‘너무 아름다운 꿈’(2013)을 제외하고는 ‘목련정전’(2015), ‘아홉 번째 파도’(2018), ‘어제는 봄’(2019) 그리고 이번 ‘눈으로 만든 사람’(2021)까지, 지금껏 낸 다섯 권의 책 중 총 네 권이 한국일보문학상 후보작에 선정됐다. 그만큼 근 몇 년간 꾸준히 높은 성취의 작품을 써내고 있었다는 의미다. 매년 후보에 선정될 때마다 큰 기대는 말자고 다짐해왔지만, 올해만큼은 조금 다른 마음이었다.

“책이 다시 한번 조명될 수 있는 기회니까 후보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왔어요. 그래도, 언젠가 만약 한국일보문학상을 타게 된다면 ‘눈으로 만든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바랐어요. 그만큼 많은 걸 쏟아 부은 작품이라서요.”

‘많은 걸 쏟아 부었다’는 작가의 말이 무슨 뜻인지는 책을 읽으면 곧 알게 된다. 400페이지에 육박하는 두툼한 책 안에는 독자를 사로잡는 이글이글한 정념이 가득하다. 그 정념은 때로는 해방의 파토스로, 때로는 서늘한 파괴력으로 표현된다. “소설을 통해서도 아플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단순한 독서를 넘어서 ‘체험’에 가까운 소설이다. 이 정념의 출처는 당연히 작가 자신일 수밖에 없다.

최 작가는 "소설이 쓰인 2016년부터 2020년까지가 이전 몇 십 년보다 훨씬 더 밀도 있게 시간을 겪은 것 같다"고 말했다. 류효진 기자


“저로 하여금 소설을 쓰도록 만드는 힘은 저를 추동한 정념에서부터 출발해요. 소설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기보다는 내 안에 들끓는 감정을 표출하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첫 번째였어요. 그건 분노일 수도, 슬픔일 수도, 두려움일 수도 있죠. 형식적인 완결성과 미학을 포기해야 할지라도, 가장 처음 이 소설을 쓰게 만들었던 핵심적인 마음을 끝까지 갖고 가야만 했어요.”

동시에 바로 그런 이유로, 소설을 완결한 뒤에도 온통 후련하지만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읽어줬으면 하는 마음과 아무도 읽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공존했다. 어떤 때는 세상에 나온 책을 전부 수거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과연 이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가 닿을 수 있을지, 공감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사라지지 않았다. 때문에 작가에게 이번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은 “내가 쓴 소설을 믿고 싶어지도록” 해주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소설의 후유증은 다른 소설을 쓰며 푼다”는 이 작가에게, 상은 그저 등을 조금 밀어주는 정도의 역할을 할 뿐이다. “오로지 소설을 쓸 때에만 나 자신을 좋아할 수 있었고, 현실의 어떤 곳에서보다 소설 안에서 가장 자유로웠”기에, 그것만으로도 소설을 계속 쓸 의미는 충분했다.

“때로 내가 소설에 너무 미쳐있는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어요. 소설을 쓰다 지치면 다른 일이 아니라 다른 소설을 쓰며 풀었어요. 소설로 이루고픈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소설 안에 늘 다음 소설을 향한 질문이 남겨져 있었기 때문에 13년간 써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눈으로 만든 사람’이 작가에게 남긴 질문은 '왜 여전히 여성 인물이 충분히 다 말해지지 않는가'이다. 더 많은, 더 다양한 여성의 목소리를 듣고 쓰기. 당분간은 그 답을 찾는 여정이 계속될 것이다.


한소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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