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한국일보문학상] 삶의 혼란과 동요에 각별히 충실했던 작품

입력
2021.11.25 04:30
20면

본심 심사경위

17일 한국일보사옥에서 열린 제54회 한국일보문학상 본심에서 심사위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이기호 소설가, 김나영 문학평론가, 권희철 문학평론가, 은희경 소설가, 한영인 문학평론가, 이근화 시인, 강영숙 소설가. 왕태석 선임기자

17일 한국일보사옥에서 열린 제54회 한국일보문학상 본심에서 심사위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이기호 소설가, 김나영 문학평론가, 권희철 문학평론가, 은희경 소설가, 한영인 문학평론가, 이근화 시인, 강영숙 소설가. 왕태석 선임기자


예심과 본심을 거치며 다양한 작품들이 거론됐지만 우리가 본심에서 주목한 것은 김솔의 '유럽식 독서법', 이장욱의 '캐럴', 정영수의 '내일의 연인들', 조해진의 '환한 숨', 최은미의 '눈으로 만든 사람'이었다.

김솔의 '유럽식 독서법'을 지지하는 심사위원들 가운데 누군가는 ‘발굴’이라는 말을 써야 했다. 일반적인 평가에서 자주 언급되는 소설집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익숙하지 않은 이 작가의 스타일이 우리의 독해가 타성에 젖어 있는 것이 아니었는지 심문해왔다. 단지 낯설고 특이한 것에 대한 취향으로써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역사의 역동성이 우리에게 매번 다시 다르게 이해하고 표현하라고 요구하는 바에 따른 흥미로운 응답으로서.

조해진의 '환한 숨'은 정반대의 관점에서 돋보였다. 지금 여기의 사회적 현실의 단면들을 날카롭게 포착해 그 안에서 움직이는 인물들이 현실과 어떻게 투쟁하거나 짓뭉개지는지 혹은 그 사이 어디쯤에서 흔들리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소설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이고 기대라는 점에서, 조해진의 소설을 두고 심사위원들 가운데 누군가는 ‘교과서’라고도 했다.

이장욱의 '캐럴'은 소설을 쓴다는 것이 전달하고자 하는 어떤 내용을 기술하는 것 이상으로 여러 이질적인 요소들을 결합하고 배치해가며 정교한 이미지의 기계장치 혹은 움직이는 의미의 구조물을 만드는 것이라는 관념을 구현해낸 드문 사례로 보였다. 이 기계장치 혹은 구조물이 생산하는 밤과 무한의 이미지와 시간에 관한 관념들에는 지적 흥미를 훌쩍 뛰어넘는 ‘으스스한’ 뭔가가 들어 있었다.

17일 한국일보에서 열린 제54회 한국일보문학상 본심에서 심사위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17일 한국일보에서 열린 제54회 한국일보문학상 본심에서 심사위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이 강렬한 긴장감에 비하면 정영수의 '내일의 연인들'은 보다 일상적인 장면들로 내려와 있고 상대적으로 이완된 리듬을 보여주기도 해서 또 다른 대립쌍을 이루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정영수의 소설이 일상의 표면만을 다루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겉보기와 달리 언제나 그 안에 삶에 대한 모종의 태도를 새로운 세대의 감각으로써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러 심사위원들의 지지를 얻었다.

그러니까 이들 가운데 어느 하나가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더라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최은미의 '눈으로 만든 사람'을 수상작으로 결정하는 것은 손쉬운 일이었다. 이 소설집은 예심을 준비하며 저마다 다섯 편의 추천작을 꼽았을 때 유일하게 심사위원 전원 추천을 받았고 이후 최종 결정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토론과 투표를 거치면서도 내내 적지 않은 득표차로 1위 자리를 유지했다.

본심에서 여러 심사위원들이 이 소설집을 설명하기 위해 ‘압도적’이라는 말을 써야 했는데 누군가는 이 소설집을 다시 읽으며 남성 이성애자로서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고 말했고, 다른 누군가는 여성으로 살고 있으면서도 충분히 겪어내지 못한 여성성을 이 소설을 통해 아프게 깨우칠 수 있었다고도 말했다. 그것은 아마도 이 소설집이 삶의 혼란과 동요에 각별히 충실했기 때문에, ‘충분한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원칙을 실천하며 우리에게로 흘러넘쳐 서로 다른 위치와 입장들을 혼란케 하고 뒤흔들어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심사위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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