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 활성화가 경제 위기 극복 열쇠… 창업 지원 토양 만들 것"

입력
2021.11.24 14:22
수정
2021.11.24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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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호 덕산그룹 회장 인터뷰]
울산 1호 향토벤처기업, UNIST에 발전기금 300억 쾌척스타트업 활성화… '기술력' 이공계 인재 육성 중요

이준호 덕산그룹 회장이 24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벤처기업 활성화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울산=박은경 기자

이준호 덕산그룹 회장이 24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벤처기업 활성화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울산=박은경 기자


"혁신 창업기업이야 말로 국가와 사회를 번영케 하는 근간입니다.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을 위한 토양을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이달 초 울산과학기술원(UNIST)에 발전기금 300억 원을 쾌척한 이준호(75) 덕산그룹 회장, 그는 24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도 혁신 벤처기업과 인재육성의 중요성을 수차례 강조했다.

부산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현대중공업,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을 거쳐 1982년 37세의 나이로 덕산그룹 모체인 덕산산업을 창업한 이 회장은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등 중화학공업이 주력산업인 울산에서 최초로 '반도체 소재'에 도전해 성공을 일궈낸 혁신가다. 반도체 패키징 핵심소재 '솔더볼(Solder Ball)'을 생산하는 덕산하이메탈은 국내 1위, 세계 2위의 시장점유율을 자랑한다. 현재 덕산그룹은 9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으며, 그룹사 전체 연간 매출이 3,000억 원에 이른다.

이 회장은 "전통산업 위주의 울산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들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전통산업과 융합하거나 새로운 산업군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벤처기업 활성화가 지금의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열쇠"라고 단언했다.


-가진 것이 많아도 나누기는 쉽지 않다. 거액의 기부를 결심한 배경은

"지금의 덕산을 있게 한 '덕산하이메탈'은 울산 1호 향토벤처기업이다. 9개 계열사를 거느린 덕산그룹으로 키우기까지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후배 창업가들에게 조금 더 안정적인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평소 지역의 스타트업 활성화를 위한 방안을 고민하던 차에 UNIST가 학생들의 창업을 지원하는 챌린지 융합관을 건립한다는 계획을 듣고 기부를 결심하게 됐다. 유망한 벤처기업을 발굴하고, 이들이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주면 더 많은 젊은이들이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게 될 것이다."


-모교인 부산대가 아닌 UNIST를 선택한 이유는

"경쟁력이다. UNIST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120개 이상의 스타트업을 배출했다. 학생들이 창업에 필요한 공부를 스스로 선택하도록 하고, 문제해결식 교육으로 학생창업 붐을 조성한 결과라고 본다. 또 중화학 위주의 울산산업을 인공지능, 반도체, 탄소중립 등 미래형으로 전환하기 위해 국내 최초로 반도체소재부품대학원을 개원하는 등 인재 양성과 연구·개발에도 앞장서고 있다. 그동안 구호에 그치다시피 했던 울산 산업지형의 변화를 이번에야 말로 UNIST가 실현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평소에도 인재육성, 특히 이공계 분야에 관심이 많은데

"우리 그룹 인력의 3분의 1은 연구개발에 종사하고 있다. 인재육성에 꾸준히 투자하면 자연스레 혁신이 뒤따르고 실패가 없다. 사업을 하면서 부딪치는 문제 대부분은 결국 사람이 해결하기 때문이다. 기업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고 이를 성장시켜나갈 때 가치가 있다. 특히 스타트업에서는 차별화된 기술이 생명이다. 벤처강국 이스라엘만 봐도 그렇다. 우수한 이공계 인력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따라 결국 나라도 기업도 성패가 좌우된다고 본다."


-10년 대기업 생활을 접고 창업에 뛰어 든 계기는

"현대중공업 공채 1기로 입사해 5년, 현대정공(현대모비스)에서 5년을 일했다. 안정적이었지만 마음 한구석에 늘 '과연 여기가 내가 설 자리인가'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결국 1982년, 당시 나이로 서른 일곱 살에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총무 1명, 영업사원 1명, 기술직 4명을 채용해 용융 알루미늄 및 아연도금업체인 덕산산업을 창업했다. 열악한 규모였지만 잃어버린 영혼을 되찾은 느낌이었다. 하고 싶은 일을 찾은 것만으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과감한 도전에 위기도 많았을 것 같은데

"한창 기술개발 중일 때 핵심 인력들을 다른 회사에서 빼가는 일이 잦았다. 올레드(OLED) 소재를 생산하는 덕산네오룩스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해외업체들이 독과점하던 기술의 국산화를 목전에 두고 개발 인력 일부가 중국으로 넘어가려했다. 보통 이직하려는 곳에서는 우리가 주는 연봉의 5~6배를 제시한다. 동종업종 재취업 금지를 피하기 위해 투자회사나 자회사에 취업시키는 형식이라 법적 대응에 나서기도 어렵다. 90년대 초반에 도금기술로 2년 동안 일본과 특허분쟁을 치른 적이 있는데, 승소해도 기업 차원에서는 손해가 큰 싸움이었다. 모든 상황을 문제없이 잘 극복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경험을 통해 위기대처능력이 높아진 건 확실하다."


-창업을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수년째 공무원이나 공기업 채용 경쟁률이 수백 대 일을 기록하는 걸 보면서 과연 저들이 정말 원하는 일이 무엇일까 싶을 때가 많다. 인생에서 성공하는 길은 다양하다. 창업도 그 길 가운데 하나다. 예술, 스포츠, 비즈니스, 연구개발 등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본인이 잘하는 분야를 정확히 파악해서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길 바란다. 시련을 겪지 않은 사람은 축복받을 일도 없다.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작은 결심과 이를 실천하는 용기가 일생을 바꿀 수 있다."

울산=글·사진 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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