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자유로운 상상으로 자신만의 이야기 만들어낼 수 있길"

입력
2021.11.23 15:48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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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전 딸 위해 쓴 동화책 바탕
어린이 전시 펼친 이수경 작가

깨진 도자기 파편을 이어붙여 새로운 형상을 만드는 '번역된 도자기', 왕관을 모티브로 작업한 '달빛왕관' 등으로 잘 알려진 이수경 작가가 지난 19일 오후 서울 노원구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어린이갤러리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 '다정한 자매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지은 인턴기자

깨진 도자기 파편을 이어붙여 새로운 형상을 만드는 '번역된 도자기', 왕관을 모티브로 작업한 '달빛왕관' 등으로 잘 알려진 이수경 작가가 지난 19일 오후 서울 노원구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어린이갤러리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 '다정한 자매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지은 인턴기자


“태어난 아이들 안에는 큰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해요. 타고난 영혼의 색들이 각기 다른데, 커 가면서 그것들을 소중히 잘 지켜나갔으면 좋겠어요.”

지난 19일 서울 노원구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어린이갤러리에서 만난 현대미술가 이수경(58) 작가의 말이다. 이곳에서는 1997년 그가 딸을 위해 직접 지은 동화를 바탕으로 한 어린이 전시 ‘먼길 이야기’가 열리고 있었다. 활발히 활동 중인 현대미술가의 작품으로 꾸며진 어린이 전시는 어떤 모습일까.

어린이 전시라고 해서 알록달록하고 유치한 전시장을 떠올렸다면 오산이다. ‘먼길 이야기’전은 여느 어른들을 위한 전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장미로 뒤덮인 꽃밭 그림부터, 쌍둥이와 같은 형태로 붙어 있는 두 소녀의 조각 등 다양한 상상이 가능한 현대 미술 작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전시를 기획한 정재임 학예연구사는 “아이들이 주어진 것 중에 하나를 선택하거나, 정답을 찾는 것에 익숙해진 세상”이라며 “아무도 새로운 것을 만들지 못하면 발전할 수 없는데, 나 자신을 발견하고,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전시를 구상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전시장은 주입식 설명을 하기보다, 아이들이 작품을 보며 각기 다른 해석을 내리도록 유도한다. 특히 작가가 일기를 쓰듯 그려온 ‘매일 드로잉’은 아이들이 그림 속 캐릭터들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는 좋은 소재다.

전시 제목이기도 한 동화 먼길 이야기는 작가의 딸이 만 4세 때 끝말 잇기처럼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만들어 간 놀이의 결과물. ‘왕자와 함께 행복하게 잘 살았다’로 끝이 나거나, 권선징악에 대한 내용을 다룬 동화들이 대부분이었던 시절, 작가는 기존 동화를 지루해하던 딸아이를 위해 이야기를 직접 만들기로 결심한다. 내용은 다른 동화에서 본 내용을 짜깁기하거나 패러디하는 등 즉흥적으로 자유롭게 만들어냈다. 그래서인지 동화는 소녀가 용맹한 사자의 모습으로 변하거나, 왕자에게 아이가 생겨 배가 불러오는 등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전개된다. 이수경 작가는 “아이들은 어른들과 달리 선입견이 없다. 아이들만이 발견하는 아름다운 세계가 있다”며 아이들이 각자 가진 생각을 존중하고 지켜줘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작가 역시 전시 기획자의 의도처럼 아이들이 큰 이야기꾼으로 성장해가길 바란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허물어진 시대입니다. 다음 세대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스토리텔러가 돼야 한다고 봐요. 자유롭게 상상하고 끊임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이야기꾼이 될 수 있다면, 도래하는 엄청난 세상에서 주인공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겠어요?”

채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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