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왜 비핵화에 실패하고 있나

입력
2021.11.19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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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6월 30일 오후 판문점 군사분계선 남측 자유의 집 인근에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만나 대화하고 있다. 판문점=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6월 30일 오후 판문점 군사분계선 남측 자유의 집 인근에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만나 대화하고 있다. 판문점=연합뉴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문재인 정부는 임기 초반부터 전임 박근혜 정부에서 꽁꽁 얼었던 남북관계를 반전시키는 데 사활을 걸었다. 호응이라도 하듯 북한은 대결이 아닌 대화를 택했고,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 번갈아 열리는 말 그대로 한반도 드라마를 그려냈다.

이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는 스스로를 '중재자'라고 소개했다. 북미가 한국의 중재를 깔고 대화를 진행했던 점도 분명하다. 따라서 현 정부의 비핵화 사업이 좌초한 근본적 원인을 따지자면 중재 과정에 빈틈은 없었는지, 애당초 중재자라는 역할은 합당한 것이었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하노이 회담 이후 "볼턴만 아니었으면"이라고 탄식하는 현 정부 인사들을 많이 봤다. 한국이 다 차려놓은 밥상에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존 볼턴이 나타나 "영변으론 어림도 없다"며 재 뿌리지만 않았어도 적절한 비핵화 합의가 도출됐을 것이란 아쉬움에서다.

하지만 이는 무책임한 분석이다. 비핵화라는 거대하고도 복잡한 과제를 단지 미국 관료 한 사람의 물밑 플레이에 좌우됐다고 단정 지을 수 없는 노릇이다. 볼턴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백악관의 국가안보보좌관조차 설득하지 못했을 정도로 당시 한국의 중재가 헐렁했다는 게 더 적절해 보인다. 하노이에서 판이 깨진 것은 북한이 내놓겠다는 비핵화 조치를 미국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평양을 떠나 하노이로 향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손에 '영변 핵시설 폐기'라는 카드가 들려 있었음을 한국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미국은 이를 거부했다. 영변만으로는 비핵화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것이란 중재자로서의 예측은 그곳에 없었다.

돌이켜 보면, "대북 제재 해제를 위해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담보돼야 한다"는 미국의 대원칙은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영변으로는 부족하다"는 볼턴의 트집은 사실 미국 본연의 입장이었다. 하물며 중재 역할을 자임했다면, 미국의 주요 대북 강경파들부터 설득했어야 했다. 이제 와 볼턴 탓할 게 아니란 얘기다.

더 근본적 원인은 현 정부가 중재역에 몰입하는 동안 비핵화라는 본질에서는 오히려 멀어지고 있었던 점이다. 침이 마르고 닳도록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를 입에 올렸지만, 정작 현 정부는 우리가 원하는 비핵화란 이런 것이라고 명확한 입장을 제시한 적도 없다. 북미 간 화해 무드가 한창일 땐 빅 딜(big deal), 여의치 않아 보이자 스몰 딜(small deal), 노딜(no deal)로 끝나자 '굿 이너프 딜(good enough deal)'이면 된다고 태도를 바꿔 왔다. 내용이야 뭐가 돼든 합의 자체만 도출되면 오케이라는 식이다. 애당초 비핵화라는 본질은 제쳐두고 평화 무드에만 취해 있었던 것은 아닌가.

현 정부가 다시금 기대를 걸고 있는 교황 방북과 종전선언도 다르지 않다. 교황 방북이 한반도 평화 무드로의 반전 계기를 가져다 줄지는 모르지만, 그 자체가 비핵화를 가져다 주진 않는다. 종전선언을 '비핵화의 입구'로 삼겠다지만, 종전선언에 따른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어떻게 끌어낼지에 대한 토론은 보이지 않는다. 입구만 들이댔지 출구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뒷전이다. 현 정부가 비핵화에 거듭 실패하고 있는 이유는 비핵화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조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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