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한쪽 줄서기는 절대 금물...중견국 연대·小다자외교 강화를"

입력
2021.11.18 04:30
<대한민국 지속가능솔루션 : 외교분과>
② 미중 경쟁 속 한국 외교의 선택

편집자주

'대한민국 지속 가능 솔루션'은 내년 대선을 맞아 한국일보가 전문가들과 함께 우리나라 당면 현안에 대한 미래 지향적 정책 대안을 모색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정치 외교 경제 노동 기후위기 5개 분과별로 토론이 진행되며, 회의 결과는 매주 목요일 연재됩니다.'

<미중경쟁 속 한국 외교의 방향 제안>


1. 헤징(위험분산) 외교
-미중 한쪽 줄서기는 금물
-한국이 미중경쟁의 장이 되는 것은 반드시 피해야
-이익 극대화보다는 위험분산(헷지) 차원에서 미중에 접근해야

2. 小다자주의 및 중견국 외교
-한중일, 한미일, 한미중 등 동아시아 지역 기반 小다자외교 적극 추진
-평화지향 이미지의 중견국가(스위스 오스트리아 캐나다 등)들과 중견국 외교협력 강화
-믹타(멕시코 인도네시아 한국 터키 호주)식 모델 참조
-미중 기술경쟁에서 기술적 표준 주도

3. 글로벌 공급망 외교
-요소수 같은 병목품목 확인 및 대응체제 구축
-미국 요구에 발 맞추되 미국의 첨단기술 생태계 적극 참여

미국과 중국 간 전략경쟁이 가속화하면서 한국 외교의 어려움도 가중되고 있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에 의존도가 큰 상황이지만 미중이 기술 패권 경쟁을 벌이면서 안보와 경제 문제가 연계되는 바람에 사실상 '택일'을 강요받고 있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외교환경에 처하게 된 것이다.

한국일보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기획한 '대한민국 지속가능 솔루션' 프로젝트 외교분과 두 번째 회의에서, 전문가들은 미중 어느 편에 줄서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으며 △위험을 분산하는 '헤징'전략과 △소다자주의와 중견국 외교 등을 통한 연대전략을 동시에 펼 것을 주문했다. 현재의 미중 경쟁은 자국 내 정치와 연동돼 불확실성이 큰 만큼 우리로선 유연하면서도 냉정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최근 반도체 공급망 공세와 관련해서는 미국의 요구에 맞추되, 이를 계기로 미국의 첨단기술 혁신 생태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성과를 얻는 윈윈 협력을 추구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9일 본사 대회의실에서 열린 대한민국 지속가능솔루션 외교분과 2차 회의에서 외교안보 분야 전문가들이 미중대결과 한국의 외교를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지난 9일 한국일보 본사 대회의실에서 '미중 경쟁 속 한국 외교'를 주제로 열린 외교분과 2차회의에는 전재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분과위원장), 이동률 동덕여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성기영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외교전략실장, 이승주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이정환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송용창 한국일보 논설위원이 참석했다.

“미중 모두 국내적으로 취약, 장기적 예측 어려워”

전재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서울대 외교학과·미국 노스웨스턴대 정치학 박사. 현 국제정치학회장.

전재성 교수=최근 미중 경쟁은 국제정치적으론 패권 다툼처럼 보이지만 두 나라 모두 내부적으로 취약성이 커, 초강대국의 충돌이라기보다 내부적으로 불안한 두 강대국의 충돌로 보는 해석이 있다. 올 하반기 미국은 경제와 코로나 문제 등으로 국내 정치가 어려웠고 특히 내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소수당이 될 것 같다. 중국도 경제, 자원 등 여러 면에서 부정적인 전망이 나온다. 마이클 베클리 터프츠대 교수는 ‘정점 이론’(peak theory)에서 중국이 국력에서 정점을 찍고 후퇴하고 있기 때문에 초조해서 더 도발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조지프 나이 교수는 무분별한 내셔널리즘과 감정적인 부분이 1차 대전 전과 닮은 부분이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충돌사안이 굉장히 많고, 장기적으로는 예측이 어렵다. 미중 경쟁의 성격이 무엇인지부터 짚어봤으면 한다.

이동률 교수=중국이 가까운 미래에 먼저 패권 경쟁을 야기할 가능성은 낮다. 중국은 국내 문제가 우선이다. 경제력에서 빠르게 미국을 추격하는 건 맞지만 종합적인 면에서 취약한 부분이 많다. ‘중국이 패권에 도전한다’는 얘기는 항상 미국이 먼저 제기했다. 물론 그렇게 의심할 조건은 많다. 특히 시진핑 시대 외교담론이 신형대국관계, 신형국제관계 등을 거론한 까닭에,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 한다는 의구심을 낳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는 여전히 미국이 쥐고 있다. 트럼프 등장과 코로나19와 같은 예외적인 상황으로 미중 관계가 갑자기 악화된 측면이 있는데 바이든 시대에도 트럼피즘이 지속될지가 관건이다.

"미국, '스몰 야드 하이 펜스' 전략...공격 범위는 줄이되 정교하게 압박"

이승주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연세대 정치학과·미국 캘리포니아대 정치학 박사

이승주 교수=미중 전략경쟁의 복잡성을 만드는 원인 중 하나가 미국 국내 정치다. 바이든 행정부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서 국내정치 논리가 대외 정치에 투영되는 현상이 강화되고 있다. 바이든 정부의 ‘양질의 일자리 창출’은 경제적 양극화를 해소하고 정치적 분열을 완화하는 비전을 제시한 것인데, 이것이 대외 정책의 공급망 전략 등에 투영됐다.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가 추진했던 중국에 대한 전방위적인 공격과 견제보다는 공격의 범위를 줄이는 대신 정교하게 압박하는, '작은 정원, 높은 울타리(small yard, high fence) 전략'으로 선회한 듯하다. 대중 공세에 따르는 비용과 부담을 줄이는 전략이다. 현재 미국은 중국을 압박할 수 있는 몇몇 핵심 아이템에서 공급망 장악과 기술 우위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반도체 공급망과 관련한 대중 압박이다. 이것은 ‘높은 울타리(high fence)’기 때문에 동맹국에 대한 협조 요구도 강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대중 관계를 어떻게 재설정하는지를 보면 최근 미 무역대표부(USTR) 발표에서 ‘건설적인 리커플링(재동조화)’이란 용어가 나왔다. 디커플링은 바람직하지도 가능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지금 같은 높은 수준의 상호의존도 바람직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결국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을 압박할 수 있는 분야에서 우위를 확보하는 수준의 리커플링을 추구하는 것이다.

성기영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외교전략연구실장. 고려대 사회학과·영국 워릭대 국제정치학 박사.

성기영 실장=중국은 그동안 국제질서를 따라가던 룰 테이커(rule taker) 입장에서 중국 버전의 룰을 세팅하는 룰 메이커(rule maker) 구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제기구에서 리더십을 증가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해왔고, 미국 주도의 다자주의를 ‘선별적 다자주의’라고 명명하며 10년간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같은 경제 분야 구조를 만들어왔다. 룰 메이커냐 테이커냐는 기술경쟁과 연관돼 있어 민감하다. 미국은 그간 지적재산권 침해나 불공정경쟁을 주로 지적해왔는데, 최근에는 중국의 기술 진전 자체를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다. 4차 산업 기술은 민군겸용으로 사용되는데, 기술경쟁이 군사패권 경쟁의 원천을 제공해 위험한 국면으로 갈 가능성도 있다. 화웨이 사태 때도 경험했지만 과거에는 보지 못했던 압력이 기업이나 민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일본도 헤징 전략… 헤징과 연대 필요"

이정환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서울대 외교학과·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정치학 박사

전재성=중국과 미국 간 상호 인식이 중요한데 양국 간의 인식 충돌이 크다. 미국은 중국이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100년의 마라톤을 한다고 보는 반면 중국은 미국을 오만한 패권이라고 여긴다. 이를 완충하는 방식이 없을까. 겉으로는 합리적으로 보이는 바이든의 외교정책에도 트럼프주의나 미국우선주의가 깔려 있어 국내정치 환경을 같이 봐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미중 경쟁이 각 국가에 미치는 영향이 조금씩 다른데 다른 국가들의 대응 전략을 어떤가.

이정환 교수=일본의 경우 기시다 정권은 아베 정권의 정책 지향을 이어간다고 볼 수 있다. 아베 정권이 보여준 건 헤징 전략이다. 미국과 같이 가되 중국에 대한 관여를 버리지 않겠다는 투 트랙 전략을 선명히 했다. 2018년 아베의 방중이 중요하다. 일본은 미중경쟁을 분야별로 분리하면서 협력할 부분도 명확히 했다. 한국에서 ‘일본은 미중경쟁에서 미국에 올라탔는데 우리는 뭐하냐’고 말하는 건 과도하다. 다만 아베 정권이 보여준 전략적 자율성 내지 유연성이 국내 정치의 혼동 속에서 민족주의적으로 경도될 여지가 있다. 궁금한 건 아베의 유연성이 아베 성향 후계자들에 의해서 유지될 것이냐다. 보수 쪽에서는 ‘중국에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서 공세적인 입장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이승주=미중 경쟁에 대해 한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들의 대응을 보면 미중경쟁이 상당 기간 상수가 된다고 여기면서도 자국이 미중 경쟁의 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일본도 일정 수준의 헤징을 하는 듯하다. 헤징은 기본적으로 위험 분산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이익 극대화와는 차별화된 전략이다. 자국 이익을 적극 실현하기보다 위험을 관리하고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 수세적 대응이다. 이런 헤징으론 부족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헤징과 연대를 결합한 대응 방식이 여러 나라에서 공통으로 발견된다.

전략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각국이 경제와 안보가 분리된 게 아니라는 인식을 갖게 돼 긴밀히 연계하는 방향으로 대외전략을 펴고 있다. 한국은 좀 늦게 정책 전환이 이뤄진 측면이 있다. 최근까지 안보와 경제를 분리하는 스탠스를 유지하다가 공급망 상황이 급박하게 전개돼 연계하는 대응을 하게 된 것이다. 지난 5월 한미정상회담이 큰 변화의 계기 같다. 반도체, 배터리를 포함한 공급망 형성과 유지 관리 협력을 약속했다. 이런 공급망 협력은 아이템 협력을 넘어서는 의미를 갖고 있다. 기업 수준에서도 배터리는 최소 5년의 협력을 요구한다.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관점에서 한미 협력의 토대를 마련한 게 아닌가 한다. 그 위에서 한국이 사안별로 대응할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나 싶다. 예컨대 쿼드(Quad)를 가입하냐 아니냐로 접근하기보다는 한국이 기여가 가능한 분야에서 협력하는 방식이다.

"친미 반중 구도 부각되면 난처, 정치적으로 양극화해선 안 돼"

이동률 동덕여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한국외대 중국학과·북경대 정치학 박사

이동률=많은 나라가 미중 사이에 끼어 있는 느낌을 갖고 있는데 냉전시대와 다르게 미중이 진영을 만들 명분, 수단이 많지 않아서 일방적인 줄서기를 원치 않는 각자도생의 성격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흥미로운 건 베트남인데 미중경쟁을 오히려 기회로 보고 있다. 서로 베트남을 끌어가려 하기 때문이다. 우리와 지정학적으로는 비슷한데 다른 점은 분단과 북핵 문제다. 우리가 미중 경쟁에서 딜레마에 빠지는 요인이다. 또 하나는 정치 양극화다. 미중 경쟁을 양극화해서 친미 반중 구도를 명확히 하면 우리 위상을 더 난처하게 할 수 있다.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미중경쟁을 과도하게 부각시키지 않나 한다. 대응 시나리오를 만들어 전략적인 고민을 해야 하는데 내부 정쟁과 맞물려 정치적으로 확대·재생산되는 측면이 있다.

특이하게도 중국은 자국 내에서 반미 정서를 부추기지 않는다. 애국주의가 높긴 하지만 미국을 직접 겨냥하는 것은 아니다. 장기적으로 중국이 관리하는 듯하다. 우리나라도 정치권이나 언론에서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또 우리가 통일, 북핵 문제에 몰두하게 되면 미중 경쟁을 한반도에 끌고 들어올 수 있다. 미중 경쟁이 첨예한 상황에서는 미중 경쟁을 불러들일 수 있는 이슈에 대해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성기영=미중경쟁이라는 지정학적 포획 구도 속에 우리의 외교적 상상력을 국한시키는 건 효율적이지 않다. 동아시아에서 3, 4개 국가가 참여하는 소다자주의로 한중일, 한미중 협력이 있었고, 가장 강력한 플랫폼으로 한미일 협력이 작동하고 있다. 한중일처럼 지역주의를 지향함으로서 우리 외교의 영향력을 좀 더 확보할 수 있는 것도 있는데, 동력을 많이 상실한 게 사실이다. 소다자주의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또 하나는 중견국 외교다. 우리가 아시아와 글로벌 무대에서 리딩 국가를 목표로 하진 않기에, 규범적인 목소리를 내고 다자주의를 옹호하고 제도적이고 평화적인 문제 해결방식을 옹호하는 국가 이미지를 만들어 가야 하는데 이에 동의할 중견국가들이 꽤 있다. 스위스 오스트리아 캐나다 덴마크 등이다. 믹타(MIKTA, 멕시코·인도네시아·한국·터키·호주) 참여 경험도 있는데 이를 통해 중견국 외교의 메이저 플레이어가 되는 상상력도 필요하다.

이승주=미중 경쟁 대응과 관련해 지역차원의 전략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큰 틀에서 헤징과 연대다. 어디도 미중 선택의 문제를 독자적으로 대응하려는 국가는 없다. 위험성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지역에 기반한 연대 외교의 중요성이 커지는 것이다. 미중 경쟁의 특징이 기술경쟁 차원인데 그 이면은 결국 표준경쟁이다. 표준경쟁은 중견국 외교의 공간이기도 하다. 표준은 기술의 상대적 우위를 가진 국가가 선도하는 경향이 있지만 결국 얼마나 많은 국가나 기업이 채택하느냐의 문제다. 공통의 이해관계와 기준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한국처럼 일정한 기술력을 갖춘 중견국이 기술 표준을 만들어 가는 게 미중 사이의 긴장을 완화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디지털경제동반자협정(DEPA)을 호주, 싱가포르와 매우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데 디지털 무역과 관련된 기술표준을 세우는 데 중요 레퍼런스가 될 것이다.

전재성=이번 요소수 사태만 봐도 미중 경쟁 하에서 한국이 얼마나 취약한지 알 수 있다. 우리가 중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물품은 30여 개로, 일본의 소재·부품·장비와 비교가 안 될 정도다. 탈냉전 30년간 형성된 상호의존구조가 미치는 영향이 커서 막연하게 패권 경쟁으로만 볼 수 없는 복잡한 상황이다.

이승주=공급망 전략과 관련해 미국 전략의 실체를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리쇼어링(reshoring·해외 생산 기지의 본국 회귀)이 미국 공급망 전략의 주요 축인데 결국 미국 공급망의 복원력 강화다. 두 번째는 스몰야드 하이펜스 전략으로 중국을 조일 수 있는 최적 지점을 찾으려고 한다. 반도체 분야는 목표가 명확하다. 2세대 이상의 격차를 유지하려는 것이다. 미국은 국내적으로 기술 생태계를 재구성하는 작업에 돌입했고 대외적으로는 이에 도움이 되는 국제협력을 추구한다. 이에 대해 다른 국가들은 협력의 성과를 어떻게 공유하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한국 입장에선 공유법을 적극 찾아야 한다. 그중 하나로 한미정상회담에서 이룬 생산동맹 수준의 협력을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 재구성하는 기술혁신 생태계에 들어가 기술혁신 역량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윈윈 협력을 추구할 수 있다. 어느 나라나 공급망에서 불확실성의 문제를 안고 있다. 요소수 사태는 언제든지 재연될 수 있다. 정부가 공급망 내 병목지점을 분석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체계적인 파악과 공급망 다변화, 이를 통한 복원력 강화 전략을 펴야 한다.


송용창 논설위원
정리= 송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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