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루가 '벨라'에겐 시간이 많지 않다

입력
2021.11.13 14:0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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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에서 살고 있는 벨라가 유리창에 가까이 다가와 관람객을 쳐다보고 있다. 고은경 기자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에서 살고 있는 벨라가 유리창에 가까이 다가와 관람객을 쳐다보고 있다. 고은경 기자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이 이달 5일 홀로 남은 벨루가 '벨라'(12세∙암컷)를 방류하겠다고 발표한 지 2년 만에 처음으로 방류 진행 상황을 공개했다. 2년이 지나도록 벨라의 수족관 전시가 계속되고 방류를 위한 움직임이 없다는 비판이 나오자 언론을 대상으로 기자간담회를 연 것이다. 발표의 요지는 벨라의 야생 방류를 최종 목표로 하고 있으며 내년 말까지 벨라를 '야생 적응장'으로 보낸다는 내용이다. 이번 발표는 벨라를 수족관에서 내보내는 시점을 2022년으로 못 박은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 야생 방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도 반갑다. 하지만 발표 내용 가운데 석연치 않은 부분도 적지 않았다.

5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에서 한 아이 관람객이 2년 넘게 홀로 살고 있는 벨루가 벨라를 쳐다보고 있다. 고은경 기자

5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에서 한 아이 관람객이 2년 넘게 홀로 살고 있는 벨루가 벨라를 쳐다보고 있다. 고은경 기자

롯데가 말하는 야생 적응장은 실제론 생크추어리(보호시설)다. 롯데는 생크추어리가 야생 적응장을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현재 운영되는 세계 유일한 벨루가 생크추어리는 아이슬란드 단 1곳뿐이다. 세계적 동물전문가 50여 명이 모인 고래생크추어리프로젝트가 캐나다에 짓고 있는 생크추어리는 2032년 개관이 목표다. 롯데가 고려한다는 이 두 곳은 방류하기 어려운 고래류가 서식지와 유사한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만든 공간이다. 남방큰돌고래 '제돌이'를 바다로 돌려보낼 때처럼 가두리를 치고 야생 방류 전 훈련을 하는 곳이 아니다. 롯데가 벨라를 야생 방류를 목표로 생크추어리로 보내기를 원한다면 그곳을 야생 적응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롯데가 최종 야생 방류지를 결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2년 가까이 공들인 곳은 아이슬란드 생크추어리다. 벨라를 아이슬란드에서 적응시킨 다음 다시 러시아나 캐나다에 방류한다는 것은 너무나 복잡한 과정이다. 그리고 롯데가 최종 방류지를 결정했다고 해도 각국 정부가 방류를 승인해야 가능한 일이다.

아이슬란드에 있는 세계 첫 벨루가 생크추어리에 살고 있는 리틀 그레이와 리틀 화이트. 시라이프트러스트벨루가생크추어리 홈페이지 캡처

아이슬란드에 있는 세계 첫 벨루가 생크추어리에 살고 있는 리틀 그레이와 리틀 화이트. 시라이프트러스트벨루가생크추어리 홈페이지 캡처


캐나다 노바스코샤주 포트 힐포드만에 지어질 고래생크추어리. 규모만 약 40만5,000m²에 달한다. 웨일프로젝트생크추어리 홈페이지 캡처

캐나다 노바스코샤주 포트 힐포드만에 지어질 고래생크추어리. 규모만 약 40만5,000m²에 달한다. 웨일프로젝트생크추어리 홈페이지 캡처

벨라 방류를 위해 롯데월드가 2019년 구성한 '방류기술위원회' 한 위원은 야생 방류의 원칙으로 가능한 △원 서식지 방류 △잡힌 지 얼마 안 된, 젊고 건강한 개체 △가능한 한 짝을 지어서 보내는 것이라고 밝혔다. 롯데는 러시아, 캐나다, 아이슬란드 등을 방류 후보지로 꼽고 있지만 원 서식지인 러시아 내에서도 벨라가 어떤 무리에 속해 있는지 알 수 없다는데 아예 다른 지역에 방류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더욱이 벨라는 젖을 떼기 전 또는 떼자마자 붙잡혀 2013년 한국으로 와 1년 7개월은 강릉 송어양식장, 이후에는 수조 속에서 살았다. 2016년 '벨로', 2019년 '벨리'가 세상을 떠나면서 벨라는 혼자 살고 있기 때문에 당장 같이 보낼 무리도 없다. 이 때문에 위원회 내에서도 원 서식지인 러시아 야생 방류는 위험하다는 의견이 나왔고 해외 전문가들도 야생방류는 어렵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에 살던 국내 마지막 북극곰 통키는 영국 요크셔 야생공원으로의 이주를 한 달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에 살던 국내 마지막 북극곰 통키는 영국 요크셔 야생공원으로의 이주를 한 달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벨라를 보니 영국 요크셔 야생공원으로의 이주 한 달을 앞두고 세상을 떠난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의 국내 마지막 북극곰 '통키'가 떠오른다. 통키는 친구들이 세상을 떠나며 2015년부터 혼자 살았고 열악한 환경의 좁은 사육장에서 갇혀 지내며 정형행동을 보였다. 3년 만에 북극곰 전용 공간이 있는 야생공원으로 이주할 계획이었지만 결국 세상을 떠났다. 벨라에게도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롯데는 야생 방류를 목적으로 한다며 긴 시간이 소요되는 프로젝트라고 강조할 게 아니라 벨라가 통키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즉각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벨라의 행복이 우선"이라는 게 빈말이 아님을 보여주길 바란다.

고은경 애니로그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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