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기밀, 어디까지 美에 줘야하나" 삼성·SK, 데드라인 앞두고 고심

입력
2021.11.03 04:30
글로벌 반도체 기업에 주요정보 요구
제출 마감은 8일... 공개범위 못 정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월 24일 백악관에서 반도체 공급망 구축에 관한 행정명령 서명에 앞서 반도체 칩을 들고 명령의 취지를 언급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국 정부가 글로벌 반도체 기업을 대상으로 요구한 주요 정보 제출시한 마감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한국 반도체 업계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전례 없던 상황인데, 민감한 영업비밀까지 포함된 사안이어서 핵심인 정보 공개 범위에 대해서도 아직까지 최종 결정을 못 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업계 안팎에선 어느 때보다 정부의 대미 외교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20여 질문에 답하라"… 점점 다가오는 데드라인

2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가 반도체 공급망에 걸쳐 있는 전 세계 기업들에 주요 정보를 제출하라고 제시한 마감시한은 이달 8일이다. 주요 기업들의 반도체 생산 시스템, 재고 등을 파악해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이 주요 대상으로, 국내에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포함된다.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반도체 생산 공장. 삼성전자 제공

미국은 지난 9월 24일 이런 내용의 요구사항을 관보에 게재한 가운데 요구한 정보 수위가 상당하다. 대략 20여 가지 질문에 답하도록 했는데 △각 제품에 대해 톱3 고객사와 각 고객사에 대한 판매 비중 △특정 제품에 대한 수요가 넘칠 경우, 추가 공급대책 △반도체 부족난을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투자 진행 여부 등이다.

이는 투자자들에게조차 미공개된 사안들로, 각 기업엔 1급 기밀에 해당되는 사항이다. 해당 기업의 입장에선 민감할 수밖에 없다. 자칫 고객 정보 등이 외부에 흘러 나갈 경우엔 고객과의 관계 훼손은 물론 막대한 배상금까지 부담해야 되기 때문이다.

"국내기업도 미 정부 요구 큰 틀 수용"

문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점이다. 질문에 대한 답 작성 여부에 대해선 기업의 자율이란 게 미 정부의 표면적인 입장이지만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의 위상을 감안하면 사실상 강제에 가깝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미 정부는 지난달 "인텔, SK하이닉스를 포함한 기업들이 조만간 정보를 공개할 계획"이라며 "강제 조치를 해야 하는지 여부는 얼마나 많은 기업이 동참하느냐와 제공된 정보의 질에 달려 있다"고 압박했다.

경우에 따라선 미 정부가 대통령 직권으로 특정 물품의 재고 등을 확인할 수 있는 국방물자생산법(DPA)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국은 연초 '반도체 굴기'를 선언한 뒤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책과 중국을 견제하는 조치를 동시에 쏟아내고 있다. 미국이 반도체를 산업을 넘어 '안보' 차원으로 접근하는 상황이라, 개별기업이 미 정부의 요구를 거스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경기 화성시에 있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내부 모습. 삼성전자 제공

우리 기업들도 미국 정부의 요구를 큰 틀에서 수용할 것으로 전해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미 정부 요구를 수용하되 어느 범위까지 공개할지를 두고 내부에서 계속 검토 중인 걸로 안다"고 귀띔했다.

"정부 대응 미흡… 대미 외교력 발휘해야"

현재 국내 기업들은 고객사 정보처럼 민감한 정보는 최대한 선별해 제출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다만 이는 개별기업 혼자 감당할 수 없는 만큼, 정부가 대미 외교력을 동원해 우리 기업들의 요구를 최대한 반영시켜야 된다는 게 업계 안팎의 공통된 진단이다.

일단 정부는 우리 기업의 우려사항을 미 정부에 전달하고 추가 논의를 위한 '국장급 대화 창구'를 열어놓은 상태다. 그럼에도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 미국에 대한 정부의 저자세 외교 지적도 쏟아지는 등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미 상무부가 관보에 올린 공고문. 11월 8일이 마감일이다. 홈페이지 캡처

한 업계 관계자는 "미 정부의 이번 조치는 반도체 패권을 잡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라 어떻게든 계획대로 밀어붙일 것"이라며 "정부 역시 업계 자율에만 맡길 게 아니라 국내 기업 정보가 최대한 넘어가지 않도록 대미 외교력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욱 기자
김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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