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명 대표 "'태일이'는 수십 년 마음에 뒀던 기획"

입력
2021.10.26 04:30
수정
2021.10.26 09:45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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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나온 암탉' 이후 10년 만에 애니로 흥행 도전

심재명 명필름 대표는 "극장용 장편애니메이션이 잘 안 만들어지니 재능 있는 인력이 게임 등 다른 분야로 옮겨 가고 있다"며 "'태일이'로 새 발판을 마련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지은 인턴기자

심재명 명필름 대표는 "극장용 장편애니메이션이 잘 안 만들어지니 재능 있는 인력이 게임 등 다른 분야로 옮겨 가고 있다"며 "'태일이'로 새 발판을 마련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지은 인턴기자

‘미다스의 손’으로 불렸다. 그럴 만도 했다. 영화 ‘접속’(1997)과 ‘공동경비구역 JSA’(2000),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7), ‘건축학개론’(2012) 등 히트작이 열 손가락을 넘어간다. 의미와 재미를 놓치지 않는 영화들로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마당을 나온 암탉’(2011)의 성과도 빼놓을 수 없다. 애니메이션 황무지나 다름없는 한국 영화계에서 관객 220만 명을 모았다. 대표작을 쉽게 내세우기 힘들 정도로 화제작을 여럿 만들어온 심재명 명필름 대표가 새 도전에 나섰다. 12월 1일 개봉하는 애니메이션 ‘태일이’(감독 홍준표)이다. 22일 오전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 본사에서 심 대표와 만났다.

‘태일이’는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죽어간 청계천 피복 노동자 전태일(1948~1970)의 짧은 삶을 그린다. 심 대표가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지 수십 년 된” 프로젝트다. “20대 초반 ‘전태일 평전’으로 알게 된 청년의 삶은 그저 놀랍기”만 했다.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이 독학으로 근로기준법을 파악하고 열악한 노동 환경을 바꾸기 위해 구체적으로 행동한 점은 경이”였다.

심 대표뿐만 아니다. 남편 이은 명필름 공동 대표에게도 ‘태일이’는 필생의 기획이다. “영화 운동 단체 장산곶매에서 활동하던 당시 ‘파업전야’ 다음으로 생각해뒀던 영화”다. 부부가 오래도록 벼른 영화지만 난관이 있었다. 박광수 감독, 홍경인 주연으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이 먼저 만들어지며 꿈은 꿈으로 남았다. 멀어졌던 꿈은 최호철 만화가의 만화 ‘태일이’를 만나며 되살아났다. “5권짜리 만화책을 보며 이걸 애니메이션으로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 대표는 ‘마당을 나온 암탉’을 제작한 후 “애니메이션은 다시는 안 하겠다”고 한동안 말하고는 했다. 척박한 환경에서 제작하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태일이’로 애니메이션에 다시 도전했다. 심 대표는 “약간 오기 같은 게 작용한 듯하다”고 했다. “애니메이션이 나라별로 더빙만 잘하면 어느 나라에서나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글로벌한 매체인데 유독 한국 영화 산업에서는 약한 분야”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코로나19 이전 극장 관객이 2억 명이 넘고, 1년에 1,000편 가까운 장편영화가 나오는 세계적 강국에서 극장용 장편애니메이션 시장이 사실상 없다는 점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요.”

애니메이션 '태일이'는 한국 노동의 역사를 바꾼 전태일의 삶을 스크린에 복원한다. 명필름 제공

애니메이션 '태일이'는 한국 노동의 역사를 바꾼 전태일의 삶을 스크린에 복원한다. 명필름 제공

전태일의 삶을 그리기에 애니메이션이 알맞기도 했다. 1960~70년대를 배경으로 사회성 짙은 영화를 실사로 만들기엔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당시 평화시장을 구현하기 위해선 세트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어요. 군중이 등장하는 장면이 있기도 하니 제작비가 100억 원 넘게 들어갔을 겁니다.”

애니메이션 역시 제작비를 구하기는 어려웠다. “영화진흥위원회 장편 애니메이션 공모에 선정돼 지원받은 7억 원이 마중물 역할”을 했다. 서울산업진흥원과 경기콘텐츠진흥원 등의 지원을 받고도 제작비가 빠듯했다. 명필름 역시 돈을 댔다. 심 대표는 ‘대기업 계열 투자배급사들은 장편 애니메이션 투자는 생각지도 않는 게 현실”이라며 “굉장히 어렵고 힘들게 작업했다”고 말했다.

제작비는 31억여 원. 적지 않은 돈이다. 하지만 개봉에 필요한 비용은 여전히 부족하다. 심 대표는 “전태일이 세상을 떠난 1970년을 감안해 1,970명으로 제작위원을 구성해 11월 20일까지 1인당 10만 원 이상 소액 출자를 받고 있다”고 했다. 제작위원과 별도로 후원자를 모집하고 있기도 하다. 1만 원 이상을 전태일재단 계좌(국민은행 807501-04-236126)에 송금하면 된다. 제작위원과 후원자들은 ‘태일이’ 엔딩 크레디트에 올라간다.

심 대표는 ‘태일이’를 만들며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았는데, 특히 배우들에게 고맙다며 한 명 한 명 이름을 열거했다. “장동윤(전태일), 염혜란(전태일 어머니 이소선 여사), 진선규(전태일 아버지), 권해효(재단사 신씨), 박철민(한미사 사장) 등 목소리 연기를 한 배우 분들 출연료가 말도 안 되게 적었어요. 추가 녹음을 해도 기꺼이 참여해 주셨어요. 이분들 목소리 연기로 그림에서 활력이 더 느껴집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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