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방지 그물망이 설치된 공장… 아이폰의 그림자

입력
2021.10.22 04:3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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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생산 공장 '폭스콘' 노동 실태 담은?
'아이폰을 위해 죽다'

지난달 28일 중국 베이징의 애플 스토어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애플의 신제품 아이폰 13을 구경하고 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지난달 28일 중국 베이징의 애플 스토어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애플의 신제품 아이폰 13을 구경하고 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2010년, 세계 최대 전자기업 애플의 제품을 생산하는 중국의 폭스콘 공장에서 18명의 노동자가 자살을 시도한다. 그중 14명이 사망했고, 4명은 심각한 상해를 입고 살아남는다. 이들의 나이는 17세부터 25세로 모두 농촌 출신 농민공이었다.

시가총액 2조5,000억 달러의 기업, 브랜드 가치와 마케팅 등 모든 측면에서 세계 최고의 지위를 누리며 첨단을 상징하는 기업. 애플의 제품은 혁신의 도시 실리콘밸리가 아닌 중국의 공장에서 만들어진다. 중국 안에서만 40곳 이상의 제조단지를 운영하고 100만 명 이상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폭스콘을 통해서다.

제니 챈, 마크 셀던, 푼 응아이가 함께 쓴 ‘아이폰을 위해 죽다’는 세계에서 가장 큰 전자 제국 애플의 제품을 생산하는 폭스콘 공장의 노동 실태를 담은 르포다. 2010년 폭스콘에서 벌어진 노동자 연쇄 자살 사건을 계기로 세 명의 연구자가 중국 12개 도시의 폭스콘 제조 현장에 잠입해 수년간 노동자들을 인터뷰한 결과다.

2011년 5월 7일 대학생들이 홍콩에 있는 애플 대리점에서 폭스콘 노동자들의 가혹한 근로 환경을 개선하지 않는 애플사와 폭스콘을 비난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1년 5월 7일 대학생들이 홍콩에 있는 애플 대리점에서 폭스콘 노동자들의 가혹한 근로 환경을 개선하지 않는 애플사와 폭스콘을 비난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연구자들이 마주한 폭스콘의 실상은 실로 처참했다. 저임금과 장시간 초과노동, 폭력적인 규율과 억압의 환경이 자연스러웠다. 생산 일정이 촉박할 때 24시간 돌아가는 공장에서 휴일은 한 달 중 하루나 이틀뿐이었고, 그럼에도 시간 외 수당을 다 더한 월급은 1,400위안(약 26만 원)이었다.

생전 스티브 잡스는 폭스콘의 자살 사건에 대해 묻는 질문에 “폭스콘에는 식당, 극장, 병원, 수영장까지 있다"며 “그곳은 노동착취 공장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지만, 정작 노동자들에게는 이 같은 시설을 이용할 여유나 자유가 허락되지 않았다. 휴대폰을 제출하고 종일 CCTV로 감시당했고, 대화나 웃음도 금지당한 채로 하루 12시간, 주당 100시간이 넘는 중노동에 시달렸다. 그곳에서 노동자들은 “생산라인 옆에 쇠처럼 붙어서서, 두 손을 날 듯이 움직이다가, 땅에 떨어진 나사처럼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하고 떨어져” 죽어갔다.

가혹한 노동 환경을 견디지 못해 노동자들이 자살 충동에 시달릴 때도, 폭스콘은 임금 인상이나 권리 보호 방안을 찾는 대신 기숙사 창문에 쇠창살을 달고 건물 사이에는 자살 방지 그물을 설치한다. 악령을 물리친다며 공장에 승려들을 데려왔고 취업 응시자들에게는 심리테스트를 이수하게 한다. 회사의 면책 조항이 포함된 ‘자살 금지 서약서’에 서명도 시킨다. 이 같은 폭스콘의 먹잇감이 되는 것은 특히 100만 명에 달하는 농촌 출신 청년 노동자들이다. ‘농민공’이었던 부모 세대를 이어 도시로 향한 이 청년들은 꿈과 희망 모두를 빼앗긴 채 폭스콘에서 말라갔다.

자살 방지 그물이 설치된 폭스콘의 노동자 숙소(왼쪽 사진)와 창살을 설치하고 창문을 잠가놓은 노동자 숙소. 만약 화재가 발생해도 노동자들은 꼼짝없이 안에 갇히게 된다. 나름북스 제공

자살 방지 그물이 설치된 폭스콘의 노동자 숙소(왼쪽 사진)와 창살을 설치하고 창문을 잠가놓은 노동자 숙소. 만약 화재가 발생해도 노동자들은 꼼짝없이 안에 갇히게 된다. 나름북스 제공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노동자가 죽어갈 때, 폭스콘이 폐수를 방류해 지역 사회에 오염을 초래했을 때, 유독 물질 사용으로 노동자 집단 중독 사태가 발생했을 때, 애플은 어디에 있었는가? 구글, 아마존, 닌텐도, LG 등 세계적인 전자기업들이 폭스콘의 고객이지만, 그중에서도 아이폰 제조 독점 계약을 한 애플은 폭스콘의 가장 큰 고객이다. 그러나 완벽주의자 스티브 잡스조차도 생전 폭스콘 공장을 방문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은, 애플이 결국 책임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어 한다는 것을 상징한다.

책이 비관적 전망만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노동 실태를 담은 보고서가 발표된 이후 정작 애플과 폭스콘이 ‘자기 합리화’와 ‘진부한 변명’만을 늘어놓을 때,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존엄성과 공정한 노동에 대한 권리를 되찾기 위해” 단결했다. 값싼 노동력이 필요한 글로벌 기업과 경제 성장이 필요한 시 정부가 질 낮은 일자리를 만들어낼 때, 노동자들은 해고와 블랙리스트 등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쟁의와 시위, 파업을 통해 노동 현장의 개선을 요구하며 피해자의 자리에 남기를 거부했다.

아이폰을 위해 죽다. 제니 챈, 마크 셀던, 푼 응아이 지음. 정규식, 윤종석, 하남석, 홍명교 옮김. 나름북스 발행. 410쪽. 1만8,000원

아이폰을 위해 죽다. 제니 챈, 마크 셀던, 푼 응아이 지음. 정규식, 윤종석, 하남석, 홍명교 옮김. 나름북스 발행. 410쪽. 1만8,000원


지난 8일 전 세계에 아이폰 13이 출시됐다. 가로 71.5㎜ 세로146.7㎜의 이 작은 전자기기가 보여주는 세계는 놀라울 정도로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이 경이로운 세계가 “전자제품 생산과 배송의 촉박한 일정, 글로벌 소비 수요의 급격한 상승과 하강으로 인해 전 세계 공급업체 노동자가 빠른 작업 속도와 초과 근무 강요라는 가혹한 형태의 압박”을 겪으며 만들어진다는 것을 모른다면, 그건 그저 반쪽의 세계에 불과하다. 기술을 지탱하는 노동자의 손을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반쪽이 아닌 완전한 세계를 만나는 길일 것이다.


애플의 완벽함을 부각시키는 거품들
하지만 우리의 내일은 아니야
(…)
고통스럽고 무감각한 어깨의 한계를 시험하고
모든 나사는 부지런히 돌아가네
하지만 그들이 우리 미래를 되돌릴 순 없어

폭스콘의 한 아이폰 조립 노동자


한소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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