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 후드 전설의 후예들

입력
2021.10.22 04:30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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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2 "프리티보이 플로이드"

미국 대공황시대 서민들의 '로빈 후드'로 불리던, 존 딜린저 이후 미국 FBI의 공공의 적 1호 '프리티보이 플로이드'. 위키피디아

미국 대공황시대 서민들의 '로빈 후드'로 불리던, 존 딜린저 이후 미국 FBI의 공공의 적 1호 '프리티보이 플로이드'. 위키피디아

미국 포크 싱어송라이터 우디 거스리(1912~1967)는 1939년 'Pretty Boy Floyd'란 노래를 발표했다. "얘들아, 다들 모여 볼래? 오클라호마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범죄자 프리티보이 플로이드 얘기를 들려주마~."



아내와 함께 읍내에 나간 소작농 플로이드는 보안관에게 난데없는 봉변을 당한다. 아내 앞에서 퍼붓는 모욕과 욕설에 참다못한 그는 보안관을 때려눕히고, 팔려던 땔감을 다시 마차에 싣고 마을을 떠난다. 그리곤 미국 남부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든 은행강도가 되고, 훔친 돈으로 가난한 사람을 돕고, 은행이 돈을 빌려주며 받은 집과 토지 담보대출증을 태운다. 그렇게 그는 가난한 이들이 따듯한 크리스마스의 밤을 보낼 수 있게 하고, 은행들로부터 보금자리를 지켜주었다. 가사 내용이다.

프리티보이 플로이드의 본명은 찰스 아서 플로이드(1904.2.3~1934.10.22). 조지아주에서 태어나 오클라호마에서 성장한 그는 18세에 마을 우체국에서 3.5달러를 훔쳐 처음 체포된 이래 경찰서와 감옥을 들락거렸고, 20대 무렵에는 은행강도 등 수많은 사건으로 수배된 상태로 전설적 범행을 이어갔다. 그는 연방수사국(FBI)이 2만3,000달러의 현상금을 걸고 수배한 '공공의 적 1호'였고, 오클라호마 주지사도 별도로 현상금 6,000달러를 건 범죄자였다. 진위는 확실치 않지만 노랫말의 '로빈 후드' 같은 소문 덕에, 그는 대공황의 가난과 가뭄으로 굶주리던 남부 서민들의 작은 영웅이었다. 그는 오하이오의 외진 옥수수밭에서 FBI에 의해 사살됐다. 오클라호마에서 열린 그의 장례식에는 약 2만여 명이 모여 추모했다는 기록이 있다.

우디 거스리가 이 노래를 발표하던 해, 존 스타인벡은 '분노의 포도'를 출간했다. 경관을 죽이고 도피 생활을 하던 톰 조드가 "사람들한테 코요테처럼 쫓기는" 플로이드의 이야기를 하며 "이렇게 쫓겨 다니다 보니 기분이 아주 이상하네요. 내가 점점 못된 사람으로 변해 가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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