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보이면 10억 훌쩍"… 동해안으로 옮겨간 아파트 폭등세

입력
2021.10.21 14:15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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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고층아파트 분양권 16억에 거래
'세컨드 하우스' 등 외지수요 몰려 급등
투자 수요 남하해 동해시 집값까지 꿈틀
"실수요자 내집 마련 더 어려워져" 한탄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오션뷰' 단지를 중심으로 강원 속초지역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해수욕장 인근에 자리한 고층아파트의 모습. 연합뉴스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오션뷰' 단지를 중심으로 강원 속초지역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해수욕장 인근에 자리한 고층아파트의 모습. 연합뉴스

"바다가 보이는 이른바 '오션뷰'라면 최근 1년간 최소 2, 3억 원씩 올랐다고 보면 됩니다."

푸른 바다가 보이는 동해안 속초 지역 아파트 가격이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정부 규제와 금리 인상으로 일부 지역에선 아파트 청약 당첨자들이 계약을 포기하는 등 부동산시장에서 감지되는 기류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동해안 집값은 외지인 매수에 따른 가격 상승이 두드러지면서, 지역 실수요자 주거 안정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21일 강원 속초시의 한 공인중개사는 "수도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은 저평가됐으나 동서고속도로 개통 이후 기반시설이 눈에 띄게 좋아진 속초에 외지 투자자가 몰리고 있다"며 "그야말로 집값이 '쑥쑥'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에 따르면 지난 5월 속초시 동명동의 한 아파트 펜트하우스(전용면적 131㎡) 분양권이 16억9,000만 원에 팔렸다. 1년 전 분양가에 5억 원 이상 웃돈이 붙었다. 최근엔 분양권 시세가 20억 원까지 올랐다는 얘기도 들린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못지 않은 상승세다. 속초에선 이달 초 실수요층이 가장 많이 찾는 전용면적 84㎡의 분양권도 분양가 수준의 프리미엄이 붙어 8억2,000만 원에 거래됐다.

속초해수욕장 인근에 자리한 아파트 단지도 마찬가지다. 바다가 보이는 고층 매물의 경우 매매가격이 8억 원을 넘어선 지 꽤 됐다. 전망이 좋기로 소문난 중앙동 주상복합도 시장에선 인기 매물이다. 시장에 나오는 즉시 웃돈이 붙어 거래된다는 얘기다.

집값 상승 '불'이 붙은 건 바다 전망을 가진 해안가 아파트뿐만 아니다. 또 다른 공인중개사는 "속초 시내 아파트 물건은 없어서 못파는 상황"이라며 "수도권에서 1시간대 이동 가능한 동서고속철도 착공 등 호재가 남아 있어 당분간 오름세가 지속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속초지역 부동산 업계에선 올 들어 이뤄진 아파트 거래 2,600여 건 가운데 60% 정도를 외지인이 사들인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에서 강원 영동북부지역을 잇는 동서고속도로 개통의 최대 수혜지로 속초가 주목 받은 뒤부터 지금까지 투자 열풍이 이어지는 모양새"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분석이다.

최근엔 속초와 강릉 밑에 자리잡은 동해시 아파트 시장도 심상치 않다. 속초와 강릉, 춘천에 몰렸던 수요가 남하해 동해에도 불이 붙으며 외지인이 매물을 싹쓸이할 조짐이다.

한국부동산원 분석 결과, 올해 8월까지 동해시에서 거래된 아파트 3채 가운데 1채가 외지인이 사들인 것으로 파악됐다. 강릉역이 종착역이던 KTX영동선이 지난해 동해까지 연장됐고, 취득세가 낮은 공시가격 1억 원 미만인 아파트를 사들이면 더 많은 차익을 거둘 수 있다는 기대감이 더해진 결과다.

그러나 단기간에 집값이 폭등하면서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은 더 멀어졌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코로나19 여파로 정체되거나 줄어든 소득으론 집값을 마련하는 게 더욱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지은 지 오래된 아파트나 주택으로 눈을 돌리면 되지 않느냐'는 조언도 나오지만, 함께 급등한 주택가격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게 문제다. 최근엔 대출마저 까다로워져 서민들의 속을 더욱 태우고 있다. "전셋값도 높게는 매매가의 90%까지 덩달아 오른 상황이어서 급한 대로 반전세를 구할 수밖에 없다"는 주택 수요자들의 하소연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이유다.

시민단체는 상대적으로 규제가 느슨한 지방에 투기 세력이 파고든 결과라며 정부 책임론을 제기했다. 권용범(40) 춘천경실련 사무처장은 "정부가 아파트 분양권 전매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자, 늘어난 세금만큼 웃돈이 더 붙어 거래되는 등 정책 약발이 먹히지 않고 있다"며 "어설픈 정책이 부른 부작용"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 "실수요층의 주거복지를 위해선 신규 분양 시 지역 내 무주택자에게 우선권을 주고 지자체가 구성한 분양가 심의위원회가 제역할을 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손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속초= 박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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