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는 없고 궤변의 귀재만 넘치는 정치

입력
2021.10.18 00:00
26면

편집자주

21세기 당파싸움에 휘말린 작금의 대한민국을 200년 전의 큰 어른, 다산의 눈으로 새로이 조명하여 해법을 제시한다.

상대방 의견 무시하는 난폭 정치 난무
파벌 나눌수록 국민 역량은 줄어들어
글로벌 시대 걸맞은 리더십 발휘해야



<정약용의 술지(;述志)에서>

남의 것 모방하기에 급급하니
정교하고 숙달함을 가릴 겨를 없구나
뭇 바보들 천치같이 한 사람만 받들고
왁자지껄 모두 함께 받들라 하네

국민 모두가 땀 흘리며 힘겹게 세계 10위권의 경제를 이끌어 가는데 정치라는 양 수레바퀴는 거친 마찰력으로만 작동하고 있다. 좌우 바퀴가 제멋대로이니 제자리만 맴돌 뿐이다. 국민이라는 환자는 5년마다 새로 부임하는 의사의 고집스러운 진단으로 매번 다른 처방의 약물에 내성만 깊어가고 있다.

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필연적으로 대두되는 양극화의 틈새를 파고들어 간극을 최대한 넓힌 후 자기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한국의 정치공학이다. 누구든 이념적 갈등을 넓히는 달콤한 방정식을 만들어 내는 자가 훌륭한 정치인으로 간주되어왔다. 리더의 풀은 지극히 제한적이고 배타적이다. 논리는 뒷전이고 상대방의 주장을 무조건 반대해야만 하는 궤변의 귀재들은 매일 임기응변의 정치방정식 풀이에 골몰한다. 따라서 미래의 이야기는 실종이고 어제의 이야기에 트집을 잡아 아침부터 대 국민 상소문을 올리는 일이 하루의 시작이다. 경제대국이라 자랑하지만 정치라는 운전자의 난폭운전으로 국제무대에서의 자존감은 아직 요원하다.

빛의 속도로 변하는 환경에서 중소기업 하나를 운영하더라도 연구소가 뒷받침되지 못하면 미래 예측이 어렵다. 하물며 한 나라의 경영에서야 두말할 필요도 없다. 각 정당마다 정책연구소가 있다지만 선거철만 되면 급조하다시피 보강하여 이념적 잣대로 여론조사나 하며 그것을 공천기준으로 활용하는 수준이다.

전 국민의 역량을 100으로 본다면 노론-소론, 남인-북인, 시파-벽파로 나눌 때마다 매번 절반씩 줄어들게 마련이다. 경제의 세계로 와보라. 인간의 창의력이 무기인 치열한 전장이다. 애플 구글 아마존 알리바바가 거대한 과학기술의 힘으로 세계를 지배한 것이 아니다. 간단한 상상력을 씨앗 삼아 과학기술의 힘을 빌려 거대한 혁신으로 바꾼 것일 뿐이다. 기억이 과거로의 여행이라면 상상은 아직 누구도 안 가 본 미래로의 여행이다. 세상에 없는 것을 창업하라고 앵무새처럼 외치는 정치는 정작 상상을 통한 미래로의 여행에는 관심 밖이다. 이념의 틀 안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이념적 편 가르기에 기인한 인재 등용의 실패는 국민의 이름으로 용서하지 않아야 한다. 정치적인 이유로 보호하고 편들 때는 이미 혹독한 사회적 비용이 지불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비용은 국민이 지불했기 때문이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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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국경의 역할이 중요했고 그 자체가 국가의 3대 요소인 국민 주권 영토의 경계선이었다. 그러나 과학기술 기반의 새로운 ‘디지털 대항해 시대’에서의 지식자원은 일거에 200개 나라의 국경을 관통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좋은 특허 기술 사업모델이 그렇다. 세계 면적의 0.07%, 인구의 0.7%에 불과한 대한민국의 지난 성공담은 산업경제에 바탕을 둔 하드파워의존형 경제였다. 세계경제는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지만 더 중요한 상상력 하나로 글로벌 무대를 휩쓰는 소프트파워 세상으로 바뀌고 있다. 우리 글로벌 기업의 리더들은 이미 한반도가 우리의 주 무대가 아니다. 이제 국가의 리더를 꿈꾸는 자의 눈도 여러 나라의 국경을 동시에 내려다볼 수 있을 만큼의 높이에 올라서야 한다.

200년 전, 이미 세계의 변화에 눈을 뜨고 실학이라는 길을 제시했지만 노론벽파의 파당정치로 좌절된 다산의 실학을 21세기의 것으로 재해석하는 지혜가 필요한 순간이다. 역동적인 다음 5년을 이끌 차기 대통령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지도자상을 우리의 유일한 유네스코 지정인물, 다산 어른의 눈높이에 맞추어 보자.

윤종록 한양대 특훈교수
대체텍스트
윤종록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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