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름은 죄도 아니고 훈장도 아니다

입력
2021.10.16 00:00
0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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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라는 정보의 하수종말처리장을 둥둥 떠다니는 도중, 두 장의 캡처가 눈에 띄었다. 각기 다른 대형 커뮤니티 사이트의 게시글과 댓글을 모아놓은 것이었다. 영국이 섬나라인 것을 모르는 것이 상식이 없는 것인가 아닌가라는 주제로 싸우는 사람들, ’표출’이란 단어를 쓰는 사람에게 자기가 모르는 한자어를 썼다는 이유로 원색적인 비난을 하는 사람들을 목격했다. 그 캡처에는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그 무식을 비난하고 있었다.

딱히 놀랍지는 않았다. 누군가의 상식이나 어휘력을 놀리는 캡처는 항상 새로이 발굴되어 인터넷의 하수를 고고히 떠다니니까. 이 글에서 사람들의 상식이나 어휘력에 대해서 딱히 개탄할 생각은 없다. 요즘은 상식이란 단어를 쓰기가 좀 무섭다. 개인이 생각하는 상식의 영역이 다들 다르기 때문이다. 영국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사람도 당연히 내가 모르는 것을 알고 있을 테고, 그걸 상식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 나도 그에게는 상식이 부족한 사람이 된다. 어휘력과 문해력에 대해서는, 텍스트에서 이미지 위주로 주류 매체가 전이하면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유튜브 영상의 문법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내가 우스꽝스러울지도 모른다.

현세대의 사람들이 무식해진다는 말도 있다. 글쎄, 예전에는 몰라도 혼자서 조용히 모른 채로 살 수 있었다. 소위 정보화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은 자신의 무지를 너무나도 손쉽게 노출할 수 있다. 나는 그저 무지가 예전보다 더 잘 보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모르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우리 모두는 한계가 많은 사람이니까. 내게 자꾸 눈에 밟혔던 것은 그런 캡처에서 일관되게 보이는 공격성이었다. 그러니까 자기가 모르는 단어를 썼다고 다짜고짜 욕부터 하는 식으로, 자신의 무지를 보호하기 위해 극단적인 공격성을 띠는 사람들의 모습이 신경 쓰였다. 모르는 건 나쁘지 않다. 배우면 된다. 하지만 자신의 모름을 정당화하려고 남을 욕하는 태도는 확실히 나쁘다.

하긴, 모른다는 사실을 순순히 인정하는 건 정말 어렵다. 나의 얄팍하기 그지없는 밑천이 드러났을 때, 숨은 가빠지고 귀끝은 달아오른다. 내 자아가 취약해지고 공격받기 쉬워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사람들이 무지를 조롱하고 놀린다는 것을 잘 알기도 하고. 하지만 자기의 취약한 자아와 무지를 보호하려고 공격성을 띠는 건 그저 반지성주의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무지를 지능 운운하며 철저히 조롱하는 그 ‘놀이’도 딱히 긍정적인 모습으로 뵈지는 않았다. 모름이 그 자체로 비난받고 놀림받는다면, 모르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철수하고 더 공격적으로 구는 것도 당연하다. 그 조롱도 반지성주의의 확장에 기여한다. 우리도 한때 몰랐고, 누군가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알게 된 것인데.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나 자신이 부끄럽기 때문이다. 나도 그런 식으로 사람을 정말 많이 놀려 왔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여러 삶의 장면에서, 내가 우연히 무언가를 좀 더 안다는 이유로 타인을 놀려 왔다. 우리 인터넷 커뮤니티들의 하부 문화에는 그런 식의 조롱 문화가 상당히 널리 퍼져 있는 듯하고, 나도 그 놀이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있는 듯도 하다. 앞으로는 최대한 자제해 보려고 한다.


심너울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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