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요자 보호' 당청 압박에...금융위 "전세대출 중단 없다" 후퇴

입력
2021.10.14 17:00
수정
2021.10.14 20:53
1면
구독

문 대통령 "서민 전세대출 관리" 재차 주문
전세대출, 가계부채 총량 규제서 제외
대출 여력 20조 원, 내주 대책 강도에 주목

14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시중 은행 앞에 전세자금대출 상담 전용 창구 안내문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14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시중 은행 앞에 전세자금대출 상담 전용 창구 안내문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와 여당이 최근의 '대출 절벽' 사태에 우려를 표하며 서민·실수요자에 대한 보호 대책을 마련하라고 정부를 압박하자, 금융당국이 "전세대출은 연말까지 안정적으로 공급하겠다"며 규제 일변도 정책에서 한 발 물러서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정부가 '상환 능력 안에서 대출이 이뤄져야 한다'는 원칙은 유지하기로 해, 다음 주 발표될 예정인 새 가계부채 대책 강도에 관심이 쏠린다. 정부가 당청 눈치를 보느라 가계대출 증가세를 견인해온 전세대출 등을 규제안에서 빼는 등 맹탕 보완책이 나올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전세대출 제외, 총량 규제 마지노선 후퇴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14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교육플랫폼 오픈 기념 세미나'에 참석한 후 기자들과 만나 "전세대출 중단이 없도록 4분기 가계부채 총량 관리를 하는 데 유연하게 대응하겠다"며 "전세대출로 인해 가계부채가 (관리 목표인) 6%대 이상 증가해도 용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는 "실수요자가 주로 찾는 전세대출을 4분기 가계부채 총량 관리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연간 가계부채 증가율 관리 수준을 당초 목표치인 5~6%대에서 7%대 이상으로 완화하겠다는 뜻을 사실상 공식적으로 밝힌 셈이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투자자 교육 플랫폼 '알투플러스' 오픈 기념회에 참석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투자자 교육 플랫폼 '알투플러스' 오픈 기념회에 참석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 위원장 이날 발언은 '가계부채 저승사자'를 자처하면서 지난달 말부터 전세대출 규제 가능성을 높였던 점과 비교하면 크게 달라졌다. 문재인 대통령 의중이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이날 "서민 실수요자에 대한 전세대출과 잔금대출이 일선 은행지점 등에서 차질없이 공급되도록 금융당국은 세심하게 관리하라"고 정부에 지시했다.

정부 관계자는 "가계 대출 증가세를 억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민 피해가 있어선 안 된다는 것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이 같은 방침을 밝히자, 시중은행들은 잇따라 중단했던 전세대출 취급을 재개 하거나 대출 한도 증액에 나서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우선 NH농협은행이 중단했던 전세자금 대출을 오는 18일부터 재개한다. 신한은행은 이달부터 모집인을 통한 전세대출에 적용해온 5,000억 원 한도 제한을 풀기로 했다. 우리은행은 실수요자에 한해 전세대출 한도를 추가로 배정할 계획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영업점별 한도는 유지하되 실수요자가 불편을 겪지 않도록 유연하게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DSR에 전세대출 포함, 막판까지 고민"

금융당국이 전세대출을 총량규제에서 제외하기로 하면서, 대출 한도 부족으로 금융권에서 돈을 빌리지 못했던 금융 소비자들의 숨통은 일단 트이게 됐다.

전세대출을 뺀 가계부채 증가율 마지노선을 현재 기준인 6.99%로 가정하면 5대 시중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약 13조5,000억 원으로 약 6조 원(증가율 6.0%와 비교 시)가량 늘어난다. 특히 전세대출은 총량규제에서 제외되는 만큼 늘어나는 6조 원 한도 외에 은행권은 추가 전세대출을 취급할 수 있다. 최근 은행권 전세대출 월별 증가 폭이 2조5,000억~2조8,000억 원인 점을 감안하면 연말까지 약 8조 원의 전세대출이 추가로 나갈 수 있다는 뜻이다.

고 위원장이 전세대출을 느슨하게 관리하겠다는 뜻을 내비치면서 이르면 다음 주 나올 '가계부채 추가대책'의 강도도 주목받는다. 금융위는 현재 연소득만큼 대출을 제한하는 차주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 규제 대상에 전세대출을 넣을지 검토 중이다. 전세대출도 엄연한 '빚'인 만큼 DSR를 적용해야 차주의 갚을 능력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세대출을 DSR 규제에 포함할 경우 실수요자 대출 한도가 줄 수 있어 금융위는 고심 중이다. 다른 빚이 많은 차주가 전세대출을 아예 받지 못할 가능성 역시 있는데, 이는 "전세대출은 중단 없다"고 공언한 고 위원장 입장과 배치되는 상황이기도 하다.

금융위 관계자는 "전세대출의 DSR 포함 여부는 제도적인 부분이라 가계부채 총량 관리와는 다른 사안"이라며 "전세대출 관련 규제는 파급력이 커 막판까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경담 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