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은 영국식 영어를 해야 제맛이라고? [몰아보기 연구소]

입력
2021.10.15 09:0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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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클리셰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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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고 넘치는 OTT 콘텐츠 무엇을 봐야 할까요. 무얼 볼까 고르다가 시간만 허비한다는 '넷플릭스 증후군'이라는 말까지 생긴 시대입니다. 라제기 한국일보 영화전문기자가 당신이 주말에 함께 보낼 수 있는 OTT 콘텐츠를 2편씩 매주 금요일 오전 소개합니다.

영화 '스파이더맨'(2002)에서 스파이더맨이 연인 메리와 키스하려 하고 있다. 할리우드 영화에선 연인끼리 격정적으로 사랑을 확인할 때 악천후인 경우가 많다. 소니픽처스 제공

영화 '스파이더맨'(2002)에서 스파이더맨이 연인 메리와 키스하려 하고 있다. 할리우드 영화에선 연인끼리 격정적으로 사랑을 확인할 때 악천후인 경우가 많다. 소니픽처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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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이 시한폭탄을 설치한다. 도시 전체가 아비규환이 되면 그나마 다행. 인류를 절멸에 몰 수 있을 정도로 치명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인공은 폭탄을 해제하려 사력을 다한다. 시한폭탄엔 초시계가 설치돼 남은 시간을 알 수 있다. 주인공은 보통 폭발 몇 초 전 폭탄을 해체할까. 대부분 답을 알겠지만 1초 전이다. 폭발 직전 시한폭탄 해체는 상투적인 표현이다. 하지만 관객 대부분은 초침이 최후의 순간까지 흐를 때 심장을 죄는 서스펜스를 맛보곤 한다.

자연스럽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끌리는 조미료 같은 맛. 클리셰는 영화사나 감독이 비판받으면서도 버릴 수 없는 무기다. 장르의 공식에 충실하기 마련인 할리우드에는 여러 클리셰가 있다. ‘할리우드 클리셰의 모든 것’은 이를 속속들이 캐본다.


①영화 속 조미료

영화 '트와일라잇'에서 뱀파이어인 에드워드(오른쪽)는 벨라 몰래 침실을 40일 동안 찾아간다. 에드워드의 낭만성을 부각하는 대목이다. 판씨네마 제공

영화 '트와일라잇'에서 뱀파이어인 에드워드(오른쪽)는 벨라 몰래 침실을 40일 동안 찾아간다. 에드워드의 낭만성을 부각하는 대목이다. 판씨네마 제공

할리우드 영화 속엔 다양한 클리셰가 있다. 공포영화는 고양이와 화장실 거울을 즐겨 활용한다. 관객과 등장인물을 깜짝 놀라게 할 때, 그러나 딱히 위험이 존재하지 않을 때 고양이가 즐겨 쓰인다. 고양이를 기르는 이들이 적지 않고, 도시엔 거리를 떠도는 고양이들이 많아서다. 등장인물이 화장실 거울 앞에 서면 관객 대부분은 긴장한다. 카메라 각도가 살짝 바뀌거나 거울을 여닫을 때 위협적인 존재가 비칠 가능성이 커서다. 워낙 자주 사용되다 보니 학습된 관객은 뭔가 나타날 것이라고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된다.

②남자는 로맨티시스트, 여자는 스토커

'할리우드 클리셰의 모든 것'에는 플로렌스 퓨 등 여러 유명 배우가 나와 클리셰에 대한 견해와 경험담을 밝힌다. 넷플릭스 제공

'할리우드 클리셰의 모든 것'에는 플로렌스 퓨 등 여러 유명 배우가 나와 클리셰에 대한 견해와 경험담을 밝힌다. 넷플릭스 제공

상투적 표현엔 편견이 담긴 것도 있다. 로맨틱 영화에서 남자가 여자를 쫓아다니면 낭만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여자가 남자를 쫓아다닐 경우 장르는 공포나 스릴러로 변하기 일쑤다. 스토킹을 했을 때 남자는 로맨티시스트, 여자는 스토커가 되는 셈이다.

악당이 영국식 영어를 쓰는 것도 편견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영국식 영어는 악당이 지능형 범죄자이고 대형 범죄를 기획할 수 있다고 암시하곤 한다.


③클리셰를 뒤집는 재미

'어벤져스' 시리즈 속 블랙 위도우처럼 할리우드 영화에서 여성은 구색 맞추기식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어벤져스' 시리즈 속 블랙 위도우처럼 할리우드 영화에서 여성은 구색 맞추기식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스머페트 법칙’이라 불리는 클리셰가 있기도 하다. ‘어벤져스’ 시리즈의 블랙 위도우(스칼릿 조핸슨)처럼 여자 주인공이 구색 맞추기식으로 등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TV애니메이션 ‘개구장이 스머프’에서 스머페트가 유일한 여성으로 나오는 걸 빗댔다.

클리셰라고 매번 비판받아 마땅할까. 어떤 감독은 상투적인 표현을 뒤집으며 관객에게 별미를 제공한다. 공포영화 ‘스크림’(1996)이 대표적이다. 드루 배리모어가 연기한 역할이 도입부에 살해당해 영화 속 가장 유명한 배우는 끝까지 살아남는다는 법칙에 도전한다. 클리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몰아보기 지수: ★★★(★ 5개 만점, ☆은 반개)

영화는 매년 수천 편씩 만들어지나 기본 줄거리는 딱 7개라는 말이 있다. 제 아무리 이야기꾼이라도 이야기의 원형질에서 벗어나긴 어렵다. 감독들은 기존 법칙을 변주하고, 새로운 경향을 반영해 신선한 영화처럼 내놓는다. 클리셰는 관객을 자극하며 익숙함을 제공하기에 좋은 재료다. 옛 청춘 스타 로브 로우의 진행으로 황당무계하면서도 유쾌한 여러 클리셰를 소개한다. 배우 플로렌스 퓨와 앤드류 가필드, 마크 스트롱이 클리셰에 대한 의견을 밝히며 소소한 재미를 전한다. 58분이라는 짧은 시간 할리우드 역사를 일별할 수 있어 제법 유익하기도 하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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