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복의 추억

입력
2021.10.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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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선거 캠프 사무실에서 캠프 관계자들이 근무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선거 캠프 사무실에서 캠프 관계자들이 근무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정치인생이 불사조와 같다 해서 ‘피닉제’라는 별명을 얻은 이인제는 ‘불복의 아이콘’으로 기억되고 있다.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두 번씩이나 불복한 전력 때문이다. 1997년 대선에선 이회창 후보에게 고배를 마신 뒤 한나라당을 박차고 나가 독자 출마하는 바람에 김대중 정부 탄생에 기여했고, 2002년에는 노무현 돌풍을 넘지 못하고 다시 탈당을 감행했다. 당내 경선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선거판을 흔드는 행위는 2005년 공직선거법에 경선 불복 금지조항이 생기면서 불가능해졌다. 이른바 ‘이인제 방지법’이다.

□ 경선 불복 금지법에도 불구하고 대선 때마다 시비는 반복됐다. 2012년 민주당 대선 레이스의 경선 보이콧 논란이 대표적이다. 지지 후보에게 투표한 뒤 중간에 전화를 끊으면 무효표로 처리하는 룰이 발단이었다. 경선 룰에 반발한 손학규 등 3명의 후보는 울산 지역 경선을 보이콧했다. 중도 사퇴한 후보의 득표를 무효화하는 룰을 두고도 몇몇 캠프에서 이의를 제기했다. 하루 만에 소동은 봉합됐지만 허술한 경선 관리는 민주당의 대선 패배로 이어졌다.

□ 민주당이 10년 전 문제가 됐던 무효표 처리를 두고 불복 논란을 재현한 건 아이러니다. 중도 사퇴한 후보를 지지한 당원들의 투표권을 존중하는 차원에서라도 룰 개정이 필요해 보인다. 그렇다고 경선 버스 운행이 끝난 뒤 이의를 제기하는 이낙연 캠프를 두둔할 수는 없다. “이재명은 구속될 가능성이 높다”며 불복의 하이킥을 날린 설훈 의원의 거친 언동은 구태다. 상대 당 후보를 흠집 내기 위해 비리 의혹을 폭로했다가 유죄 판결을 받았던 장본인이 할 소리는 아니다.

□ 이낙연 전 대표의 캐릭터 자체가 불복과는 거리가 멀다. 캠프 핵심 관계자가 최종 경선 직전 “결과에 승복하고 지지 선언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전했던 점에 비춰보면, 예상치 못한 경선 결과가 불만을 증폭시킨 듯하다. 결선투표 불가라는 당무위 결정과 함께 승복을 선언하긴 했지만 불복의 그림자마저 지우진 못했다. 이재명 지사가 대선 후보가 되면 이낙연 지지자 32%가 이탈한다는 여론조사가 민주당의 새로운 걱정거리다.

김정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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