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외교 가로막는 부처 장벽

입력
2021.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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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 과학기술과 외교는 각각 독자적인 영역으로 발전하면서 간헐적으로 만나 왔다. 예컨대 19세기 유럽 국가들의 제국주의적 팽창과 아프리카 식민지 건설은 내륙 깊숙이 들어갈 수 있는 증기선과 장총, 말라리아 치료제 퀴닌의 발명으로 가능했다. 1957년 아인슈타인과 러셀의 영향을 받은 10여 개국 22명의 과학자들이 퍼그워시 회의를 조직하여 핵무기 철폐를 주장하면서 세계정치문제에 대한 입장을 표명해왔다.

21세기에 접어들어 과학기술과 외교가 만나는 접점이 급속도로 확장되며 과학기술외교가 부상하고 있다. 현재 4차 산업혁명의 진행과 함께 첨단기술부문에서 미중 경쟁의 과학기술외교가 주목받고 있다. 다른 한편 Covid19 확산, 기후변화 등 인류 공동의 도전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백신, 치료제, 친환경에너지, 기후기술 등 과학기술이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협력의 과학기술외교에 대한 요청이 높다.

과학기술이 외교무대의 중심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누가 어떻게 과학기술외교를 펼쳐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진행 중이다. 과학자들은 외교의 경험이 없고 외교관은 과학기술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백신, 친환경 기후기술 개발은 과학기술자들이 담당한다. 그러나 과학기술은 진공이 아니라 정치적 공간속에서 발전한다. 특히 이를 개발하고 활용하고 확산하는 데 필요한 국가 간 협상은 국익을 둘러싼 팽팽한 줄다리기라는 현실과 보편적 가치 실현을 위한 협력이 교차하는 스펙트럼을 왕복하며 진행된다. 이 과정에는 과학기술지식 이외 외교협상의 훈련과 경험은 물론 전략적 사고에 따른 선택이 요구된다. 문제는 어느 국가에서든 현재 과학자나 외교관 양성 시스템이 과학기술지식과 외교적 감각 및 경험을 겸비한 과학자나 외교관을 배출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2010년 미국 과학진흥협회와 영국의 로열 소사이어티가 공동으로 과학기술외교의 부흥에 관한 보고서를 출간한 이후 양국 정부는 과학기술외교 체제를 정비하고 과학기술외교관 양성을 적극 지원해왔다. 미국의 경우 과학·엔지니어링·의학한림원과 과학진흥협회의 지원 및 협력 속에서 국무부와 백악관 과학기술정책국이 과학기술외교 주요 어젠다를 설정하여 추진하고 있다. 국무부는 과학기술자문관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부처 내 과학기술자 채용을 증대하여 훈련하고 있고, 과학진흥협회는 과학외교센터를 설립하였으며 펠로우제도를 통하여 과학기술외교관 양성을 지원하고 있다. 미국은 과학기술을 총괄하는 독립부처가 없는 상황에서 국무부가 과학기술관련 단체들의 지원을 받으며 과학기술외교를 수행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외교부 이외 독립적인 과학기술 부처가 존재하여 과학기술외교를 위해 양 부처가 협력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외 산업, 환경, 보건복지 등 다양한 부처들도 과학기술외교 어젠다들을 관장하고 있다. 한국 외교에서 과학기술은 여전히 중요한 자원으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으며 과학기술외교는 주요 부처의 중심 어젠다에서 벗어나 있다. 과학기술외교가 점점 더 중요해지는 상황에서 기존의 일상적인 과학기술 국제협력과 경쟁을 넘어 한국 외교의 목적과 방향에 맞추어 보다 더 전략적으로 과학기술외교에 접근해야 한다. 특히 국가적으로 중요한 과학기술외교 이슈를 위해 부처 간 역량을 모으고 과학기술외교 전반을 조율하며 시너지효과를 증대시킬 수 있는 과학기술외교 거버넌스 모색이 필요하다.



배영자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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