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미투' 다룬 '라스트 듀얼'... 벤 애플렉 "개인보다 제도가 더 나쁘다"

입력
2021.10.1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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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속 자크(왼쪽)와 장은 친구였으나 서로 반목하고, 한 사건을 계기로 목숨을 건 결투를 하게 된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속 자크(왼쪽)와 장은 친구였으나 서로 반목하고, 한 사건을 계기로 목숨을 건 결투를 하게 된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친구였던 두 남자가 결투를 한다. 우정을 교류하다 반목이 쌓였고,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목숨 건 둘의 대결 결과에 따라 한 여성은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게 된다. 피해자인데 가해자에게 누명을 씌웠다는 비난을 받고 있고,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지킬 권리조차 없는 여성이다. 두 남자는 명예를 위해 목을 걸었다지만 여성은 억울함을 하소연할 방법조차 마땅치 않다. 1386년 프랑스에서 있었던 일. 600여 년이 지난 지금은 과연 달라졌다고 할 수 있을까.

대가 리들리 스콧의 새 영화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20일 개봉ㆍ청소년관람불가)는 중세를 배경으로 현재를 돌아본다. 여성 시점으로 바라본 역사를 빼어난 세공술로 스크린에 복원시킨다. ‘미투 시대’의 시대극이라고 할까. 10일 새벽 온라인 기자회견으로 만난 출연 배우 맷 데이먼과 조디 코머, 벤 애플렉에게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25년 만에 공동 작업물 내놓은 40년지기

맷 데이먼은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에서 시기심 많고 경솔하며 자아도취가 강한 인물 장을 연기했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맷 데이먼은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에서 시기심 많고 경솔하며 자아도취가 강한 인물 장을 연기했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는 데이먼에게서 시작됐다. 그는 미국 작가 에릭 제이거의 책 ‘최후의 결투: 중세 프랑스의 범죄, 스캔들, 결투 재판에 관한 실화’를 스크린으로 옮기고 싶었다. 프랑스 왕이 마지막으로 허락한 공식 결투를 다룬 책이었다. 데이먼은 40년지기 애플렉과 저녁식사를 하다 책 이야기를 꺼냈고, 애플렉이 작업에 동참하겠다고 나서면서 영화화가 급류를 탔다. 두 사람은 시나리오 작업에 착수했다. ‘굿 윌 헌팅’(1997) 이후 20여 년 만의 의기투합이었다. 데이먼은 “‘굿 윌 헌팅’ 때 너무 비효율적으로 일해 시나리오 쓰기가 겁이 나서 이제야 다시 공동 작업을 하게 됐다”며 “25년 동안 영화 일을 하며 자연스레 터득한 건지 이번엔 아주 효율적으로 시나리오 작업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주요 등장인물은 장 드 카르주(맷 데이먼)와 자크 르 그리(애덤 드라이버), 마르그리트 카르주(조디 코머)다. 친구 사이인 장과 자크는 영주 피에르 달랑송(벤 애플렉)에게 충성하는 기사인데 자크는 영주의 총애를 받지만 장은 찬밥 신세가 되면서 우정에 균열이 일어난다. 이후 장의 아내 마르그리트는 자크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마르그리트는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데 침묵 대신 고발을 택한다. 장과 자크는 창과 칼을 들고 맞서게 된다.

영화는 장과 자크, 마르그리트의 시선으로 동일 사건을 되짚는다. 장은 자신을 용감하면서도 현명하고 아내를 지극히 사랑한다고 여긴다. 자크는 스스로를 의리가 있으면서 낭만적이라 생각하고 마르그리트와는 사랑을 나눈 사이라고 본다. 영화는 마르그리트의 입장을 마지막에 배치해 두 남자와 전혀 다른 그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준다. 데이먼과 애플렉은 여성의 시각을 제대로 반영하기 위해 여성 작가 니콜 홀로프세너에게 “간청을 해서” 마르그리트의 입장 부분에 대한 시나리오 작업을 맡겼다.

중세를 통해 현대를 고발하다

조디 코머는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에서 남편 친구에게 성폭행당하는 여성 마르그리트를 연기했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조디 코머는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에서 남편 친구에게 성폭행당하는 여성 마르그리트를 연기했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는 마르그리트가 제도와 인습에 억눌려 고통받는 모습에 주목한다. 마르그리트는 성폭행을 고발하나 주변 시선은 싸늘하다. 권력자 피에르는 심복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주재하는 법정에서 자크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인습과 권력에 복종하는 사람들은 마르그리트를 음해하기 바쁘다. 애플렉은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여성 차별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부패하고 도덕적으로 무너졌으며 여성혐오적인 제도들, 사람들에게 그런 인식(부패와 혐오)을 심어주는 것들을 지적하고 싶었다”며 “어떤 나쁜 사람, 대신 교회, 과학, 법원 같은 (제도화된)것들의 폐단을 비판하려 했다”고 말했다. 코머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기 괴로워할 수 있다”면서도 “그런 이유 때문에 영화를 회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세 사람 시선을 통해 찾는 진실

벤 애플렉은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에서 중세 봉건주의를 상징하는 권력자 피에르 역할을 맡았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벤 애플렉은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에서 중세 봉건주의를 상징하는 권력자 피에르 역할을 맡았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구로사와 아키라(1910~1998) 감독의 고전영화 ‘라쇼몽’(1950)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서술 방식 때문에 배우들은 똑같은 상황을 세 번씩 연기해야 했다. 코머는 “어떤 인물을 연기할 때는 다른 인물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데, 이번엔 한 사건을 세 가지 시선으로 묘사하니 다른 배우들이 나에게 어떤 것을 요구하는지 고려해야만 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연기라 가장 흥분이 된 부분이면서도 가장 힘들었던 점”이라고도 했다.

스콧 감독의 합류는 데이먼의 아이디어였다. 데이먼은 “‘마션’(2015)을 함께 작업하며 그가 영상을 어떻게 잘 다루는지 알고 있었다”며 “연출을 의뢰하니 흔쾌히 응했다”고 말했다. 오스카 작품상 수상작 ‘아르고’(2012) 등을 연출한 애플렉은 “대가의 연출 방식을 모방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며 환히 웃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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