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공공기관 개혁’을 공약할 건가

입력
2021.10.11 18:00
수정
2021.10.11 18:06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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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정부, 진작 곪은 공공기관 개혁 외면
투기, 연봉잔치, 학자금 비리 해이 만연
대선주자들 기강 회복 ‘수술’ 약속해야

김현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이 지난 7일 국회 국토교통부위원회의 LH에 대한 국정감사에 앞서 선서하고 있다. 뉴스1

김현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이 지난 7일 국회 국토교통부위원회의 LH에 대한 국정감사에 앞서 선서하고 있다. 뉴스1

‘정풍(整風)’은 ‘흐트러진 사회 기풍을 바로잡음’이라는 뜻의 명사다. 올해 정기국회 국정감사를 보면서 이 단어가 자주 머리에 맴돌았다. 여기저기서 쏟아진 공공기관 실태 고발은 이제 가까스로 선진국 문턱에 이른 이 나라의 어느 한 부분이 벌써 심각하게 곪아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위기감을 느끼게 했다. 정풍이란 단어가 맴돈 건 그래서다.

LH 임직원 투기 사건이 불거지면서 공공기관 문제는 이미 국감 이전에 국가 차원의 시스템 고장으로 부각됐다. LH는 국민 주거 환경 개선이라는 설립 목적에 따라 공공방식으로 택지를 개발해 양질의 주택을 값싸게 공급하는 게 주업무 중의 하나다. 전국 각지의 택지개발 대외비 정보가 취급되는 만큼, 직원들에겐 철저한 보안과 내부정보의 사적(私的) 이용 금지가 당연한 제1 업무강령이다.

하지만 LH 임직원들은 보안은커녕 마치 동호회활동이라도 하듯 끼리끼리 개발정보를 공유하며 아예 투자펀드와 부동산개발회사까지 만들어 불법 투기를 일삼았다. 공직자가 부동산시장을 망가뜨린 주범으로 타락한 것이다.

가관인 건 국감에서 드러난 공공기관 해이가 결코 LH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공공기관은 수익보다 공익 추구가 우선이지만, 손실이 누적되면 결국 혈세가 투입되므로 최소한의 수지 개념은 지켜져야 한다. 하지만 한국석유공사는 완전자본잠식 상태에서도 적자가 급증해 8,300억 원에 산 페루 석유회사를 28억 원에 적자매각 할 지경에 이르렀지만, 임직원들의 고액 ‘연봉잔치’는 계속돼 왔다. 5년간 사장과 임원 등 억대 연봉자가 지속 증가하고, 직원 평균연봉이 9,000만 원을 넘어섰을 정도다.

물론 공공기관도 유능한 인재가 필요하므로 높은 연봉을 줄 수 있다. 다만 급여를 올리려면, 조직을 효율화하고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하지만 현 정부는 공기업 직원 평균연봉이 8,000만 원을 넘어섰는데도 생산성 향상은 아예 외면한 채 무턱대고 공공기관 고용만 늘렸다. 그 결과 2016년 67조8,000억 원이던 공공기관 지원금이 99조4,000억 원으로 무려 32조 원이나 늘리는 ‘재정 해이’가 자행됐다.

경영의 기본이 흔들리는 건 이미 기강 해이가 시스템 전반에 번졌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런 방증은 이번 국감에서도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 임직원들의 성비위, 수의계약, 자녀학자금 부정 수령 등 전방위로 되풀이 지적됐다.

문제는 공공기관 해이가 입만 열면 공정과 정의를 앞세웠던 현 정부에서 수그러들기는커녕 되레 더 만연하게 된 원인이다.

이준석 국민의 힘 대표는 얼마 전 박근혜 전 대통령을 “인기 없는 정책들을 약속을 지키기 위해 미련스럽게 했던 대통령”이라고 촌평했는데, 실제로 박근혜 정부는 그런 우직함이 있었다. 공무원연금개혁을 비롯한 우직한 개혁조치 중 하나가 공공기관 개혁이었다. 고질적 방만경영을 없애는데 초점을 두고 경영평가시스템을 일신하는 등의 강력한 조치는 공공기관 노조의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집권 즉시 공공기관 개혁조치를 단숨에 폐기했다. 효율과 생산성보다 ‘사회적 가치 실현’을 내세웠고, 일자리 늘려 고용실적 올리면 경영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줬다.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연금개혁이나 노동개혁 등 ‘다수로부터 욕먹을 개혁’은 거의 뒤로 미뤘다. 그 결과 공공기관은 이제 누구도 시비를 걸기 어려운 신흥기득권의 성역이 된 것이다.

이번 정부가 못 한다면 다음 정부는 나서야 한다. 양극화 해법을 못 내는 대선후보는 ‘사회의 적’이다. 마찬가지로 공공기관과 공공개혁을 외면하는 대선주자는 ‘국가의 적’이다. 누가 외면하고, 누가 공약할지 지켜볼 것이다.

장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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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철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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