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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위선양이 왜 감형 사유인지' 실형 피해가는 체육인들 [일그러진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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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성폭력∙금품수수∙승부조작 등 대한체육회가 정한 4대 범죄로 재판에 넘겨진 체육인들이 그동안의 '공로'를 인정받아 1심부터 벌금이나 집행유예처럼 가벼운 처벌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국일보가 각종 비리 혐의로 기소된 체육계 인사들의 판결문에 기재된 양형 사유들을 분석한 결과다.
한국일보가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폭력∙성폭력∙금품수수∙승부조작 혐의로 기소된 체육인들의 1심 판결문 85건을 분석한 결과, 양형 사유에 '지도자∙선수∙심판으로서의 공로나 업적’ 등의 내용이 포함된 사건이 14건에 달했다. 이 가운데 10건은 실형이 아닌 벌금과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체육인으로서 공로나 업적이 있으면 죄를 저질러도 감형 사유가 된다는 뜻이다.
장기간 반복적으로 자행되는 체육인 범죄의 고질적인 특징은 판결문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장애인 특수경기 지도자 A씨는 2010년 5월부터 2년 3개월 동안 경기력∙정신력 강화를 명분으로 중증장애인 남녀 선수 3명을 10차례에 걸쳐 폭행했다. A씨는 ‘국제대회 방문을 위해 비행기 값이 필요하다’며 금품을 뜯어내기도 했다.
인천지법은 그러나 A씨에게 실형이 아니라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가 오랜시간 선수들을 성실히 지도하여 국제대회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는 등 체육계에 기여한 점을 양형 사유로 들었다.
미성년 제자를 성추행한 지도자도 그간의 기여와 성실성을 인정받아 실형을 피했다. 경남 진주의 초등학교 체육교사 B씨는 부임한 지 한 달이 지난 2016년 4월부터 2017년 9월까지 10회에 걸쳐 12세 학생 5명을 성추행했다. B씨는 그러나 1심에서 징역형이 아니라 벌금 3,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나이 어린 피해자들의 건전한 성 관념을 왜곡해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죄책이 가볍지 않다”면서도 “피고인이 이 사건 외에는 상당 기간 성실하게 교직생활을 해온 것으로 보인다”며 벌금형을 선고한 이유로 밝혔다.
승부조작 범죄의 양형 사유에도 피고인의 ‘공로’가 포함됐다. 특정팀에 유리한 편파 판정 대가로 2008년부터 4년 동안 농구팀 지도자들에게 16차례에 걸쳐 2,650만 원을 받은 경남지역 농구 심판 C씨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농구 발전을 위해 노력해 온 공로가 있고 앞으로도 기여할 바가 있어 보인다”는 점을 집행유예 선고 이유로 들었다.
선수에게 사기를 친 지도자도 체육계에 끼친 공로가 있다는 이유로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 경북지역 복싱 감독 D씨는 2013년 실업팀 입단 계약이 성사된 제자 4명을 상대로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신경써 준 체육회 간부에게 인사해야 한다”며 2년간 5차례에 걸쳐 1,500만 원을 사례비 명목으로 뜯어냈다. 그러나 D 감독의 형량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었다.
재판부는 “체육교사로 오랜 기간 재직하며 지역 복싱 발전을 위해 상당한 기여를 했다”며 이를 양형 이유의 하나로 들었다. 판결문에 따르면 D 감독은 2015년부터 약 9개월간 지역 체육회 산하 복싱협회 부회장으로 활동한 전력이 있었다.
공로와 기여, 국위선양 등은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정한 살인, 뇌물, 성범죄, 횡령·배임, 절도, 사기, 선거 등 41개 범죄군의 형량 감경 요소에 포함돼 있지 않다. 본보의 판례 분석을 자문한 법률서비스 스타트업 '리걸엔진'의 박성남 변호사는 “피고인들이 세운 공(功)은 범죄 피해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데도 이런 부분이 양형 요소에 들어간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사안별로 신중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스포츠분야 성폭력·폭력 사건 판례분석 및 구제방안 연구'를 수행했던 정지원 변호사도 "1심 형량이 상급심에서 바뀌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에 재판 초기에 ‘공로 인정’을 쉽게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 밝혔다.
[인터랙티브] 전국 '징계 체육인' 1,187명 현황공개
페이지링크 : https://interactive.hankookilbo.com/v/athletics_discip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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