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나의 탐욕... 빈국엔 코로나 백신 '찔끔 공급', 가격도 2배 더 받았다

입력
2021.10.10 19:3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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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소득국 수출 물량, 화이자의 8분의 1에 그쳐
미국에는 15달러, 중간 소득국엔 30달러 받아
"美정부서 13억 달러 지원금 받고도 책임 회피"

모더나 로고.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모더나 로고.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미국 제약사 모더나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생산 물량을 대부분 ‘부자 나라’에만 수출하고 빈국(貧國)들은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특히 상대적으로 가난한 나라들에는 얼마 안 되는 백신 물량마저 부국들보다 두 배 가까이 비싼 값에 판매했다. ‘백신 개발’이라는 공익을 이유로 천문학적 단위의 공적 자금을 받은 제약사가 사회적 책임보다 이익 창출에만 몰두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9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데이터업체 에어피니티 자료를 분석한 결과, 모더나가 코로나19 백신을 판매한 유럽연합(EU)과 다른 22개 국가 가운데 ‘저소득 국가’(세계은행 기준, 1인당 국민소득 1,035달러 이하)로 분류된 곳에 수출한 물량은 약 100만 회분에 그쳤다. 화이자 백신(840만 회분)이나 얀센 백신(2,500만 회분)에 비해 턱없이 적은 양이다. 모더나의 경우, 부국들에 집중적으로 백신을 공급했다는 얘기다.

그나마 백신 물량을 확보한 나라도 ‘성공적 거래’였다고 보기 힘들다. 선진국에 비해 중·저소득 국가에는 훨씬 더 비싸게 백신 가격을 매긴 탓이다. 모더나는 태국, 보츠와나, 콜롬비아 등 ‘중간 소득 국가’에 백신 1회분당 27~30달러(약 3만2,000~3만5,000원)를 받았다. 미국 공급 가격(15~16.5달러)의 두 배에 가깝다. 선진국 중 가장 비싼 값을 치른 EU(22.6~25.5달러)보다도 비싸다. 모더나와 ‘회당 30달러’에 계약한 콜롬비아의 페르난도 루이스 보건장관은 “우리 정부가 주문한 백신 중 가장 비싸다”고 말했다.

이는 중·저소득 국가엔 보다 낮은 가격으로 백신을 공급하는 다른 제약사의 정책과는 대조적이다. 예컨대 화이자는 미국에 19.5달러(약 2만3,000원)에 자사 코로나19 백신을 제공한 반면, 튀니지에는 7달러(약 8,000원)에 팔았다. 케이트 엘더 국경없는의사회 백신정책자문관은 “모더나가 각국 정부와 어둠 속에서 협상을 진행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다른 나라의 백신 계약을 알기 힘든 탓에 당장 백신이 절실한 중·저소득 국가는 가격협상 테이블에서 ‘약자’였다는 의미다.

지난달 29일 하버드 메디컬 센터와 보스턴 메디컬 센터 등 미국 의대 교수들이 보스턴에 위치한 스테판 방셀 모더나 최고경영자 집 앞에 뼈 모형을 쌓아 두고 시위를 하고 있다. 이들은 전 세계에 코로나19 백신을 공정하게 공급할 것을 요구했다. 보스턴=AP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하버드 메디컬 센터와 보스턴 메디컬 센터 등 미국 의대 교수들이 보스턴에 위치한 스테판 방셀 모더나 최고경영자 집 앞에 뼈 모형을 쌓아 두고 시위를 하고 있다. 이들은 전 세계에 코로나19 백신을 공정하게 공급할 것을 요구했다. 보스턴=AP 연합뉴스

비싼 값으로 백신을 사려 해도 실제 물량을 손에 넣기까진 갈 길이 멀다. 모더나 백신 100만 회분을 계약한 태국에 대한 물량 인도는 내년에나 시작될 예정이다. 8월 시작한다던 보츠와나 수출분은 아직 하나도 전달되지 않았다. 콜롬비아도 6월 초로 예정된 모더나 백신 도착이 8월로 지연됐다. 심지어 모더나는 5월 세계보건기구(WHO)의 백신 공동구매 프로젝트 ‘코백스’에 “연내 최대 3,400만 회분의 백신을 공급하겠다”고 했으나, 현재까지 단 1회분도 보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신문은 탐욕으로 비칠 법한 모더나의 이 같은 행태 원인을 ‘회사 생존’에서 찾았다. 다양한 의약품을 파는 화이자나 얀센, 아스트라제네카와 달리, 모더나는 오로지 코로나19 백신만 판매한다. 백신의 상업적 성공에 모든 걸 걸어야 하는 만큼, 수익 극대화에 몰두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글로벌 백신 공급 노력을 회피하면서 ‘사회적 책임 외면’ 논란이 일고 있다는 점이다. 모더나는 지난해 미국 정부의 백신 개발 프로젝트 ‘초고속 작전’ 지원을 받은 대표적 제약사다. 연방정부 지원금은 무려 13억 달러(약 1조5,000억 원)에 달한다. 국립보건원(NIH) 소속 과학자가 투입돼 해당 기관이 개발한 기술도 부분적으로 이용하는 특혜까지 누렸다. NYT는 복수의 미국 관료를 인용해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모더나가 빈국들에 충분한 백신을 공급하지 못하는 데 점점 실망하고 있다”고 전했다. 비판 목소리가 높아지자 모더나 측은 “백신 생산량을 늘려 내년 저소득 국가에 10억 회분을 공급하고, 아프리카에 백신 공장을 세우겠다”는 대책을 부랴부랴 내놨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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