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 속 달고나 부부가 "대놓고 자랑 못 한다"며 한숨 쉰 까닭은

입력
2021.10.11 09:00
25년째 달고나 장사 중인 임창주·정정순씨 부부
손님 몰려 좋지만 뜻밖의 유명세 치르느라 고생
동의 없이 촬영하겠다는 유튜버들이 가장 힘들어?
"다른 달고나 가게와 주변 상권도 함께 잘됐으면"

7일 오후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에 직접 출연해 유명해진 임창주(가운데)·정정순 부부가 서울 대학로 가게에서 달고나 장사를 준비하고 있다. 전세은 인턴기자


이렇게 인기 좋을 줄은 상상도 못 했지. 좋긴 한데 너무 힘들어. 노이로제 걸릴 지경이야

7일 밤 10시쯤. 텅 빈 대학로 거리에서 유일하게 사람이 붐비는 뽑기 가게에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으로 뜻밖의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임창주·정정순 부부가 장사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오후 2시부터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쉴 새 없이 달고나를 만든 두 사람은 8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한숨을 돌렸다. 오후 내내 수북이 쌓여 있던 손님들의 주문지가 끝을 보이자 아내 정씨는 마지막 종이를 흔들며 웃었고, 이들과 대화 나눌 시간을 위해 기다리던 두 인턴기자도 함께 환호했다.

전쟁 같은 시간이 지나가고 마침내 찾아온 평화의 순간, 상당히 지칠 법도 하지만 표정은 오히려 더 편안하고 밝아졌다. 낮의 소란이 거짓말처럼 사라진 조용한 밤거리에서 하루아침에 달고나로 유명해진 뒤 그 속마음을 들어볼 수 있었다.



"원래 드라마 촬영장에서 뽑기 만들 계획은 없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에서 놀이 중 하나로 등장한 달고나는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한국 사람들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큰 화제가 됐다. 넷플릭스 제공

25년 동안 달고나 장사를 해온 이들에게 갑작스러운 변화가 온 건 지난해 5월이었다. 임씨를 찾아온 낯선 사람들은 달고나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임씨가 달고나를 만드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던 이들은 드라마 촬영에 참여해달라고 부탁했다. 일종의 스카우트 제의였다.

달고나 만드는 모습을 찍기 위해 두 사람은 촬영장으로 향했다. 남편 임씨는 "집사람이 옆에서 잘 도와줘서 갈 수 있었어"라며 "난 길을 잘 못 찾아서 혼자 가긴 힘든데 아내가 내비게이션 역할을 대신 해줘서 잘 갔지"라고 장난스레 웃었다.

부부는 어떤 내용인지 전혀 몰랐다고 한다. 현장에 도착해서야 오징어게임이라는 제목도 처음 들었다고 했다. 임씨는 "달고나 만드는 모습만 찍으러 갔더만 가서는 뽑기를 만들게 됐어"라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촬영에 사용하려 미리 준비한 달고나가 생각보다 두꺼운데다 높은 온도와 비오는 날의 습도를 이기지 못하고 녹은 것이다.

현장에 있던 두 사람은 예정에 없던 달고나 현장 제작에 뛰어들었다. 임씨는 "그 깡통에다가 넣어 놓으면 금방 다 녹아버려서 못 쓰게 되버리거든"이라며 "달고나를 만들어서 비닐에 넣어뒀다가 촬영 때만 바로 통으로 옮겨서 가져갔어"라고 뒷얘기를 전했다.

갑작스럽게 달고나를 만들면서 부부의 참여 기간은 계속 늘어났다. 처음엔 하루만 참여하기로 했지만 그날 달고나만 만들다가 집으로 돌아간 부부는 다음 날 다시 촬영장으로 향했다. 제작진이 하루만 더 달고나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둘째 날에도 달고나 장면의 촬영이 끝나지 않았다. 정씨는 "또 하루만 더 해달라고 하니까, 그날은 아예 거기서 자고, 다음 날에 바로 또 이어서 달고나를 만들었어"라며 "하루만 더, 하루만 더, 하다보니 삼일 동안이나 달고나를 만들었지"라고 소개했다.

결국 원래 섭외된 이유였던 달고나 만드는 모습 촬영은 마지막 날에 이뤄졌다. 임씨는 "우리가 내 얼굴은 안 나오게 해달라고 했어. 그래서 토시 끼고 달고나 만드는 내 팔만 나와"라며 누르개를 든 손을 들어 보이며 웃음을 지었다. 얼굴 대신 이 손이 드라마에 나왔고 전 세계 사람들이 봤기 때문에 소중하다고 했다.



1년 넘어서야 공개된 드라마... "배우들하고 사진 좀 찍어둘 걸"

제작진이 밝힌 비하인드 스토리와 실제 촬영 현장에서 달고나를 만드는 모습. 제작진은 임씨를 '달고나 장인'이라고 불렀다. 넷플릭스 코리아 유튜브

두 사람은 비가 오는 덥고 습한 날씨 탓에 달고나가 녹지 않도록 에어컨을 켜둔 채 사무실에서 달고나를 만들었다고 했다. 임씨는 "소품팀 스태프 두 명이랑 우리 집사람, 나 이렇게 넷이서 같이 만들었지. 만드는 동안에도 무전 연락이 계속 오고, 왔다 갔다 하더라고. 우산 모양 몇 개, 세모 몇 개 가져와, 모양 더 세게 눌러 찍어 달라 이런 주문도 막 오고."

이들 부부는 촬영팀의 디테일한 요구에 맞춰서 하루 만에 수백 개의 달고나를 찍어냈다. 임씨는 "어느 인터뷰에서는 삼백 개라고 했는데, 말이 삼백 개지 사실은 훨씬 더 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정씨는 그렇다고 부부가 만든 달고나만 촬영에 쓰인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처음에 납품한 달고나도 촬영에 쓰였어요. 그게 다 우리가 만든 거라고는 말하면 안 돼요"라고 팩트를 수정했다.

그렇게 고생하며 찍은 드라마가 1년이 넘어서야 공개됐고, 세상은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드라마의 흥행과 함께 벼락 스타가 돼 버렸다. 임씨는 "지난해에 찍고 잊고 살았는데 이렇게까지 잘될 줄 몰랐다"며 "이럴 줄 알았으면 (배우들과) 사진이라도 한 장 같이 찍는건데"라며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이들 부부는 촬영중 점심시간, 식당에서만 배우들을 볼 수 있었다고 했다. 그마저도 정씨만 배우 이정재를 볼 수 있었고, 임씨는 한 번도 마주칠 기회가 없었다고 했다.


큰 인기에도 마냥 웃을 수 없어 복잡한 속마음

7일 오후 대학로의 임창주 정정순 부부의 달고나 가게 앞은 장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사람들이 몰려 있다. 흔히 '대포 카메라'라 불리는 DSLR를 비롯한 캠코더 등 여러 카메라가 두 부부에게로 향했다. 전세은 인턴기자

드라마가 큰 인기를 얻고 달고나에도 관심이 쏟아지며 이들의 작은 가게 또한 상상도 못 한 호황을 맞았다. 부부가 오징어게임 촬영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강원,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든 것이다.

정작 오징어게임을 제대로 볼 시간이 없을 정도의 인기였다. 정씨는 "바빠 죽겠는데 드라마 볼 시간이 어딨겠어요. 오징어게임 때문에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데"라며 살짝 웃었다. 이들 부부는 자신들이 만든 달고나로 촬영한 장면도 "짧게 보다 말았다. 장사하느라 다 볼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밀려드는 손님과 주문으로 '대박' 난 '인생 역전' 상황이지만, 이들 부부는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다고 했다. 매출은 늘었지만, 갑작스러운 인기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문제들이 부부를 힘들게 하고 있는 것.

정씨는 "매출은 이전이랑 비교도 안 되게 늘었지"라며 드라마 이전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장사가 잘 안 된 채 거의 1년을 놀다시피 했다고 했다.

하지만 좋은 것도 잠시. "지금은 너무 힘들다"고 했다. 엄살이 아니라 진심이었다.두 사람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영상을 찍으러 오는 유튜버나 BJ 들이었다. 장사를 하는 동안 이들 부부는 돌아가면서 "찍지 말라"는 말을 끊임없이 해야 했다. 정씨는 "달고나 사진 찍는 건 이해하는데, 우리에게 다짜고짜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오후도 부부가 가게 문을 열기 위해 오후 2시쯤 도착하니 이미 여러 명이 카메라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장사 시작 전부터 이들의 질문 공세와 카메라에 시달려야 했다. 물론 두 사람에게 양해를 구한 이는 거의 없다. 아내 정씨는 "장사 준비를 해야 하는데 옆에서 계속 말을 시키고 자기 멋대로 카메라부터 들이대니까 그건 장사 방해죠"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기자들이 지켜본 이날 오후에도 유튜버로 보이는 여러 명이 카메라를 들고 임씨와 정씨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가 동물원의 원숭이도 아니고 찍지 말라고 말을 열 번 넘게 해도 전혀 듣질 않는다"며 "우리도 사람이니 화가 날 수밖에 없다"고 답답해했다.



방역 걱정에 거리 두기 해달라 외쳐 보지만

장사가 한창인 지난 7일 오후, 구청에서 나온 공무원이 방역 수칙 준수를 다시 한번 당부했다. 전세은 인턴기자

부부가 촬영을 거부할 수밖에 없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카메라가 있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더 관심을 가지고 더 많이 몰리기 때문이다. 방역 수칙에 따르면, 6인 이상 몰려 있을 수 없어, 이들 부부는 사람들이 몰리는 것을 최대한 막아야 하는 처지다. 근처에 있는 이웃 달고나 가게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 줄을 길게 서있는 것을 보고 민원이 들어왔고, 방역 수칙에 맞게 줄을 길게 서지 않게 하기로 한 것이다. 임 씨는 "몇 주 전만 해도 촬영 와도 다 대답을 해줬는데, 이젠 못 해줘. 상인회랑 구청이랑 이야기한 게 있어서 안 돼"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이에 가게의 운영 방식도 달라졌다. 메모지에 개수와 모양, 전화번호를 적어 주문을 하고, 준비가 되면 연락을 받고 찾아가는 방식이다.

정씨는 "코로나19만 아니었으면 이전처럼 앉아서 직접 해보면 좋을 텐데 더 사람이 몰리고 거리 두기가 안 될까봐 그렇게 못 한다"며 "우리도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주문을 더 많이 못 받아 돌려 보내는 것도 너무 죄송해서 손님들 얼굴도 보기 힘들다"는 정씨는 그럼에도 방역 수칙 준수를 위해 장사 내내 "모여 있으면 안 된다" "적어 두고 얼른 가시라"를 수없이 외쳐야 했다. "찾아준 손님들에게 이러고 싶지 않은데 어쩔 수 없다. 저희도"라는 정씨의 얼굴에는 미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 혼자 잘되기보다 함께 잘 먹고 잘 살아야죠”

임창주 정정순 부부의 가게에는 '오징어게임' 관련 언급 없이 기존 현수막만 있다. 미리 알고 찾아오지 않는다면 모르고 그냥 지나칠 듯하다. 정혜린 인턴기자

오징어 게임이 화제가 되어 가장 좋은 점을 묻는 질문에 임씨는 망설임 없이 "대한민국에 뽑기 장사가 다 잘돼서 좋다"고 답했다. 자신뿐 아니라 다른 달고나 가게들도 장사가 잘되고, 달고나 만드는 국자 등 관련 장사가 다 잘되어 좋다는 것이다.

그는 "이 어려운 시기에 달고나 관련 가게들이 함께 잘되어서 그게 젤 좋다"며 "나 혼자만 잘되는 게 아니라 함께 잘 벌고, 잘 먹고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 부부의 달고나 가게에는 오징어게임 관련 현수막 또한 찾아볼 수 없다. 사람들이 너무 몰릴 것을 걱정해 일부러 걸지 않는 것을 택한 것이다.

스스로 가게 홍보의 기회를 없앤 임씨는 "안 붙이면 뭐 어때. 아무나 해 먹으면 되지"라며 여기가 오징어게임 촬영에 참여한 집인 것을 내세우고 싶진 않다고 말했다. 정씨 또한 "붙이면 더 난리 날까봐 오히려 걱정이지. 서로서로 벌어먹고 함께 잘되면 좋잖아요"라고 말을 덧붙였다.

이들 부부는 자신들 또한 지금까지 살아오며 주변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다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임씨는 "좋은 분들이 주변에 많아서 도움을 많이 받아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며 "오늘도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달고나를 사러 온 이웃의 꽃집 사장님이 바쁜 장사를 오히려 도와주다가 간 것이다. 힘들어하는 이들 부부를 위해 '촬영 금지'와 주문 방법 안내 등의 내용을 인쇄해 배치하고, 대신 전화를 돌렸다. "너무 고맙더라고요. 우리도 이렇게 도움을 받으니까, 다 같이 잘됐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요."

임씨는 오징어 게임으로 인한 달고나 열풍이 주변 상권에도 훈풍을 불러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로 대학로 주변 가게들이 다들 너무 힘들었다"며 "아직까지는 크게 효과가 없어도 앞으로 달고나 인기에 힘입어 사람들도 더 늘고 다른 상권 회복에도 좋은 영향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25년 동안 하던 그대로, 지금을 지키고픈 소신

7일 밤 인터뷰가 끝난 후 부부가 늦은 시간까지 수고했다며 만들어 건넨 그날의 마지막 달고나. 혹시 깨질까 가방에도 못 넣고 손에 소중히 들고 왔다. 전세은 인턴기자

정씨는 이날 오후 정신 없이 장사를 하던 중에 스스로를 사업가라고 소개한 사람에게 사업을 제안받았다고 말했다. 오징어게임에 나온 동일한 통에 달고나를 담아 대량으로 전국 납품을 하자는 제안이었다.

그러나 정씨는 그 제안을 고민도 없이 단칼에 거절했다. 정씨는 "우리는 대량으로 납품은 안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25년 동안 해왔고, 지금 하고 있는 장사를 이대로 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임씨는 "지금 하는 장사만 하기도 힘든데, 납품은 할 생각이 전혀 없다"며 "괜히 했다가 다 깨지고, 잘못 되면 욕만 먹는다. 지금까지 해온 장사를 이대로 쭉 하고 싶다"고 밝혔다.



초등학생 때부터 임창주 정정순 부부의 달고나 가게의 단골이었던 대학생 박모씨가 특별히 부탁한 '뽑기빵' 임씨가 흔쾌히 만들어 건넨 뽑기빵을 받은 박씨는 어렸을 때와 맛이 똑같다며 과거를 추억했다. 전세은 인턴기자

임씨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도 달고나 장사를 시작할 거냐는 질문에 "당연하다. 나한텐 이 일이 적성에 잘 맞는다"고 답했다. 옆에서 정씨 또한 "이 아저씨는 옛날부터 애들하고 앉아서 이야기하고 손님들이랑 이야기하는 걸 좋아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이날에도 두 사람의 달고나 가게에는 10년이 훌쩍 넘은 단골들이 찾아왔다. 임씨는 "뽑기 장사는 내 천직"이라며 "죽을 때까지 할 거다"라며 단호하게 말했다. 또 과거로 돌아가도 오징어 게임 촬영에 참여할 거냐고 묻자 망설임 없이 "당연하지. 그건 내 주가가 올라가잖아"라며 마스크 너머로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지었다.

두 사람은 몇 시간을 쉴 새 없이 달고나를 만들었음에도 아쉬워하는 손님들에게 하나씩만 해주겠다며 다시 국자를 잡았다. "우산(모양)은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데 괜찮아?" "아니 그래도 우산이 끝까지 살아남으니까 좋은 거지"라고 건네는 농담들이 정겨웠다.

이들 부부는 기자들에게 늦게까지 고생 많았다며 유난히 정성스럽게 만들어 이날의 마지막 달고나를 건넸다. 그 귀하다는 우산 모양 달고나였다.

정혜린 인턴기자
전세은 인턴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당신이 관심 있을만한 이슈

댓글 1,324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