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픽] 누리호 '카운트다운'… 세계 7번째 우주클럽 합류 기대에 흥분

입력
2021.10.0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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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발사체 '누리호' 10월 21일 점화 예정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르포

편집자주

모든 문제의 답은 현장에 있습니다. 박일근 논설위원이 살아 숨쉬는 우리 경제의 산업 현장과 부동산 시장을 직접 찾아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8월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발사대로 옮겨져 기립된 모습.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8월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발사대로 옮겨져 기립된 모습.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지난달 29일 KTX로 간 순천역에서 다시 자동차를 타고 꼬불꼬불 국도와 지방도를 1시간 30여 분 달려 도착한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 설계부터 제작, 시험, 운용까지 100% 우리 손으로 개발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의 카운트다운을 앞두고 평소 한적했던 바닷가 마을은 벌써 들썩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이날 누리호 발사관리위원회를 열고 10월 21일을 1차 발사일로 확정하면서 250여 명 연구진의 얼굴에도 긴장감이 감돌았다.

봉래산 아래 바닷가 암벽 위에 자리한 나로우주센터로 들어서자 가로 150m, 세로 30m, 높이 30m의 웅장한 발사체종합조립동이 모습을 드러냈다. 길이 47.2m, 직경 3.5m, 무게 200톤의 누리호 비행 모델(FM)이 최종 조립되고 있는 현장이다. 바로 옆 보관동엔 비행 모델과 똑같은 쌍둥이 인증 모델(QM)도 눕혀져 있었다. QM은 성능 검증과 시험 등을 위해 FM과 내부까지 동일하게 제작됐다.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 제2발사대 앞의 누리호 인증모델. 항공우주연구원 제공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 제2발사대 앞의 누리호 인증모델. 항공우주연구원 제공

하얀 원기둥 모양의 누리호는 1, 2, 3단이 하나로 합쳐져 있었다. 1단은 추력 75톤급 액체엔진 4기를 묶은 것으로 몸통이 가장 굵고 길다. 발사 시 맨 처음 화염이 나오는 곳이다. 엔진 4기의 정확한 정렬을 통해 균일한 추진력을 내는 게 핵심 기술이다. 2단은 75톤 액체엔진 1기, 3단은 7톤 액체엔진 1기로 구성된다. 원추형의 맨 앞부분 페어링 안엔 인공위성을 넣어 운반한다. 누리호엔 1.5톤 무게의 위성 모사체(더미)가 실린다.


길이 47.2m 3단 로켓 최종 점검

나로우주센터의 가장 안쪽까지 들어가자 바닥이 평평한 발사대가 나타났다. 누리호는 발사 하루 전(L-1) 발사체종합조립동에서 트랜스포터에 실려 이곳으로 옮겨진 뒤 수직으로 세워진다. 발사대는 2곳이다. 1호 발사대는 2009~2013년 국내 최초의 우주발사체인 나로호가 화염을 뿜으며 솟구친 장소다. 1호 발사대보다 배나 커진 2호 발사대는 누리호를 위해 새로 건설됐다. 1호 발사대엔 없는 높이 45m의 녹색 철제탑인 '엄빌리칼 타워'가 눈길을 끌었다. 타워는 발사 4시간 전부터 누리호에 연료와 산화제를 주입하는 역할도 맡는다. 탯줄이란 의미의 이름이 붙은 이유다. 발사 명령이 떨어지면 탯줄 타워는 뒤로 물러나고 누리호는 우주로 날아오르게 된다.

발사대의 겉모습은 밋밋하지만 사실 바닥 밑엔 100여 개의 방이 설치돼 있다. 누리호가 연소를 시작하면 화염의 온도는 3,000도까지 치솟는다. 로켓 금속 부위와 발사대가 견딜 수 있도록 열기를 식혀 줘야 한다. 이를 위해 냉각수가 화염 아래 방향으로 초당 1.8톤씩 분사된다. 물과 화염이 만나 만들어지는 게 바로 이륙 시 볼 수 있는 거대한 수증기 구름이다.


세계 7번째 우주강국 도약

누리호는 발사 127초 후 고도 59㎞에서 1단 로켓, 233초 후 고도 191㎞에서 페어링, 274초 후 고도 258㎞에서 2단 로켓이 분리된다. 마지막으로 3단 로켓이 점화돼 고도 700㎞까지 올라간 뒤 위성 모사체를 궤도에 내려놓으면 임무가 끝난다. 2010년부터 무려 2조 원의 예산이 들어간 누리호 발사는 16분간의 비행에 모든 게 판가름 난다.

누리호 발사에 성공할 경우 우리나라는 세계 7번째 우주 강국으로 도약한다. 우리 손으로 1.5톤급 실용 위성을 지구 저궤도에 투입, 독자적인 우주 수송 능력을 확보한다. 러시아 미국 유럽 중국 일본 인도에 이어 우주 클럽의 당당한 일원이 되는 셈이다.

3D 프린팅으로 비용 줄인 '뉴 스페이스'

경제 산업계는 국가적 자부심보다 민간 우주개발시대의 첫걸음을 뗐다는 데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동안 정부 주도였던 우주개발(올드 스페이스)이 아이디어와 기술로 무장한 기업들의 잇따른 진출로 ‘뉴 스페이스’ 시대로 옮겨 가는 양상이다. 비용이 낮아지고 개발 기간도 짧아지며 다양한 우주 비즈니스 모델이 창출되고 있다. 특히 3차원(3D) 프린팅 기술로 부품 수는 1,000분의 1, 비용은 10분의 1 수준까지 축소되고 있다. 항공우주연구원이 주도한 누리호 개발 과정에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300여 개 민간 기업이 참여, 핵심 부품 개발과 제작 등을 담당했다.

우주관광은 더 이상 꿈도 아니다. 이미 미국에선 민간인만 탄 우주선이 지구를 선회한 뒤 돌아오는 우주관광 시대가 열렸다. 일론 머스크가 세운 우주기업 스페이스X는 지난달 민간인 4명을 태운 우주선 ‘크루 드래건’이 사흘간의 우주 여행을 마치고 플로리다 앞바다에 안착하는 과정을 생중계했다. 앞서 7월에는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의 블루오리진과 영국 억만장자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의 버진갤럭틱도 무중력 우주 체험 시험 관광에 성공했다. 이미 5년 전 로켓을 재활용하는 데 성공한 스페이스X는 2년 후 승객 100명을 태우고 화성을 탐사하겠다는 계획까지 내놓았다. 우주선 로켓을 항공과 운송에 활용하면 8시간 걸리는 런던-뉴욕을 29분으로 줄일 수도 있다.

스페이스X는 지난달 민간인 남성 2명과 여성 2명으로 구성된 ‘인스피레이션4’ 팀을 태운 우주선 크루 드래건 발사와 우주 여행, 귀환에 성공했다. UPI 연합뉴스

스페이스X는 지난달 민간인 남성 2명과 여성 2명으로 구성된 ‘인스피레이션4’ 팀을 태운 우주선 크루 드래건 발사와 우주 여행, 귀환에 성공했다. UPI 연합뉴스



위성 초고속인터넷 시장 급성장

우주관광이 큰 관심이지만 시장은 위성산업이 더 크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세계 우주산업은 이미 지난해 3,710억 달러(약 440조 원) 규모로 성장한 데 이어 앞으로 20년간 3배 이상 커질 전망이다. 이 가운데 70% 이상을 위성산업이 차지하고 있다. 인공위성 수는 지난 10년간 958개에서 3,371개로 늘었다. 앞으로 10년간 우주로 발사될 위성은 1만1,000개가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위성을 활용한 초고속인터넷 시장엔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 아마존의 카이퍼, 영국의 원웹, 캐나다의 텔레샛이 뛰어든 상태다. 메타버스와 홀로그램 등 초실감 몰입형 미디어와 완전 자율주행 서비스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인공위성 초고속인터넷 사업자(자료:한국무역협회)


스페이스X
(스타링크)
아마존
(카이퍼)
원웹 텔레샛
투자액 300억 달러 100억 달러 22억 달러 50억 달러
운용 고도 550km 600km 1,200km 저궤도


우주안보 군사기술 중요

물론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한국 우주 산업이 한참 앞서 있는 미국 등을 따라잡을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 시각이 많다. 규모의 경제와 치킨게임까지 감안하면 승산은 희박하다. 그러나 우주는 경제적 타산성만 갖고 접근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바로 군사적 측면과 우주 안보의 문제다. 국방의 영역이 우주 공간으로 확대되고 미래 우주 전쟁 가능성이 커지면서 우주 기술의 군사적 전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우주 발사체 로켓에 인공위성 대신 핵탄두를 실으면 곧바로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된다. 로켓 개발은 미사일의 역사이기도 하다. 과거 소련과 미국이, 이젠 미국과 중국이 우주 개발 경쟁에 국운을 거는 이유다.

지난달 20일 중국 하이난에서 발사된 창정 7호 로켓. 창정 7호는 중국의 독자 우주정거장 건설에 필요한 장치를 싣고 발사됐다. AFP 연합뉴스

지난달 20일 중국 하이난에서 발사된 창정 7호 로켓. 창정 7호는 중국의 독자 우주정거장 건설에 필요한 장치를 싣고 발사됐다. AFP 연합뉴스

미중의 스타워즈는 이미 뜨겁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2024년 달에 최초의 여성 우주인을 보내는 아르테미스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민간 기업의 활약상이 눈부신 미국과 달리 중국은 정부 주도의 사업이 중심이다. 2019년 창어 4호 탐사선을 인류 최초로 달 뒤편에 보낸 중국은 지난 5월 첫 화성 무인 탐사선 톈원 1호를 착륙시키는 데에도 성공했다. 3명의 우주인이 머무를 수 있는 66톤 규모의 독자 우주정거장 ‘톈궁’도 짓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의 국제우주정거장(ISS) 운영이 종료(2024년)되면 유일한 우주정거장이 된다.


미중 스타워즈 치열

사실 민간 통신위성은 언제든지 군사 첩보위성으로 전환될 수도 있다. 이를 염두에 둔 미국과 중국은 우주군을 창설하고 위성 공격용 무기와 극초음속 항공기, 미사일, 드론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에 비하면 우린 가야 할 길이 멀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우주산업 관련 예산은 7억2,200만 달러로, 미국(480억1,500만 달러)의 1.5%, 중국(132억8,200만 달러)의 8.2%에 불과했다. 한국의 운용 위성 수는 17개로, 미국(1,425개)이나 중국(363개)은 물론 일본(78개)과 인도(61개)에도 크게 뒤처진다.


"우주는 미래 핵심 인프라"

희망은 있다. 지난 5월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 한미 미사일지침 종료가 선언되며 독자 우주개발의 족쇄가 풀린 건 역사적인 이정표다. 미국의 아르테미스 계획에 한국이 참여하게 된 것도 기회다. 미국 주도 우주연합체의 일원이 되면서 2030년 국산 발사체를 이용한 달 착륙선 개발에도 도움이 될 전망이다.

정귀일 한국무역협회 연구위원은 “우주는 이제 우주 산업과 우주 안보를 가능하게 하는 미래의 핵심 인프라”라며 “우리 인공위성으로 한국형 위성항법장치(GPS)만 구축해도 현재 30m에 달하는 GPS 오차를 1m로 줄여 다양한 서비스와 산업을 창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 의존하지 않는 위성항법정보로 국방 자립과 군사력도 획기적으로 강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일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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