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건강 지켜 온 한약업사…역할 잘 마무리할 수 있게 예우해야”

입력
2021.09.18 04:3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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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한약방 주인의 삶 기록한
하도겸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하도겸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가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 야외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하도겸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가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 야외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처음에는 부담이 돼 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제는 2권, 3권을 내고 싶어요.”

지난해 초부터 전국을 다니며 한약방 주인을 만나 그들의 삶을 기록해온 하도겸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최근 출간한 ‘약재 한 첩에 담긴 정성, 한약방 한약업사의 하루’를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한약업사는 자격시험에 통과해 주로 의사와 약사가 없는 무의촌, 무약촌 등에서 한약방을 차린 이들을 말한다. 과거에는 한약을 지어주는 일 외에 관습적으로 침과 뜸을 놔주기도 했지만, 지금은 이를 불법 의료행위로 봐 침이나 뜸은 놓을 수 없다.

하도겸 연구사가 이들을 조사하고 나선 건 한약업사가 사라져가는 직종이기 때문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사라져가는 직업군과 관련해 근현대 생활문화 조사 보고서를 매년 발간하고 있다. 한약업사 충원은 1958년부터 1973년까지 간헐적인 시험에 의해 이뤄지다 1983년부터는 아예 중단됐다. 하 연구사는 “한약방은 매년 감소 추세로 현재는 전국에 700곳도 남지 않았다”며 “한약업사의 평균 연령도 80세 정도 된다”고 설명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필요가 줄면 자연스레 사라지는 게 맞지 않을까 말할 수도 있지만, 하 연구사의 생각은 달랐다. 하 연구사는 한약업사의 소멸로 오랜 임상의 결과인 비방(?方) 등이 후대에 전해지지 않고 끊길 것을 우려했다. 한약업사들은 좋은 약재를 선별하고 독극물을 제거하는 방법을 터득해 오랜 기간 고객들의 신뢰를 받아온 터였다. “강원도 원주에 있는 황중원한약방의 류황림 한약업사가 공개해주신 수은과 유황에서 독성을 제거하는 방법 등을 책에 담았어요. 앞으로 2권, 3권을 내고 싶은 것도 이 같은 방법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기 때문이에요.”

하 연구사는 얼마 남지 않은 한약업사들이 맡은 역할을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예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한약업사는 국민 건강 지킴이 역할을 해왔을 뿐만 아니라 학교나 장애인 시설 등을 건립해 지역 사회에 공헌한 이들도 많았다. 하 연구사는 "일제강점기 때는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 한약방도 많았다”며 이들의 공로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실제 경남 진주 소재 남성당한약방의 김장하 한약업사는 한약방을 운영해 번 돈으로 학교를 지어 기부했다. 아프고 괴로운 사람들을 상대로 돈을 벌었으니 함부로 돈을 쓸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최근 첩약(한약) 건강보험 적용 시범사업에서 이 분들이 배제돼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어요. 이들이 국가를 원망하며 돌아가시는 일이 생기질 않길 바랍니다. 그중에는 장사꾼도 있겠지만, 환자를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사회 공헌에 힘쓴 분들이 많아요. 이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듬었으면 합니다.”

채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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