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젊은이들은 왜 연애를 안 할까?

입력
2021.09.15 04:30
<46>일본 젊은 세대의 연애 기피 현상

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수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일본과 한국 젊은이들 모두에서 연애를 행복과 자아 실현의 필수 조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 결혼이나 출산 기피를 비난하는 대신, 사적인 결정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사회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일러스트 김일영

◇‘초식남’, ‘건어물녀’, 연애를 멀리하는 일본의 젊은이들

일본 젊은이들의 소극적인 연애 풍조는 어제오늘 시작된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연애와 완전히 담을 쌓지는 않았지만 상대방에게 적극적으로 들이대지도 않는 남성을 일컫는 ‘초식남’(草食男)이라는 말이 있다. 십여 년 전 일본의 한 문화평론가가 연애에 소극적인 젊은 남성을 빗대어 만든 신조어인데, 우리나라에서도 연애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남성을 초식남이라고 부르는 것을 심심치 않게 들었다. TV 인기 드라마에서 시작된 ‘건어물녀’(干物女)라는 요상한 단어도 있다. 세상만사가 귀찮은 ‘귀차니즘’ 때문에 연애를 포기한 젊은 여성을 뜻하는데, 연애 세포가 건어물처럼 바싹 말랐다는 재치있는 은유를 담은 말이다. 초식남만큼 자주는 아니지만 이 말 역시 우리나라에서 은근히 회자되는 것을 접했다. 젊은이들이 연애에 목숨을 걸지 않는 풍토는 한일 공통인 듯하다.

일본의 젊은이들은 왜 연애를 하지 않을까? 지난해 말 도쿄대의 한 연구 팀에서 일본 성인 남녀의 연애 동향을 분석,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 30년간 18~39세의 미혼 남녀 중 이성 교제를 하지 않는 비율은 착실히 증가했다. 2015년 기준으로 30대 미혼 남성의 3명 중 1명, 미혼 여성의 4명 중 1명이 연인이 없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일본 젊은이들의 ‘초식화’가 실제로 진행중이라는 것이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분석 결과 중에는 일반적인 인식을 뒤엎는 내용도 있었다. TV 광고 등에서 싱글 라이프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며 즐거움을 추구하는 화려한 모습으로 그려지기 일쑤다. 그런데 조사에서는 그와는 정반대의 실상이 드러났다. 남녀 모두 수입이 적고, 학력이 낮으며, 직장이 불안할수록 싱글이 많았다. 즉, 많은 젊은이들이 경제적인 궁핍과 생활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연애도 못 하는 독신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 보고서는 고용 기회의 개선을 통해 젊은 층의 경제적 불안정성을 해소함으로써 젊은이의 연애 기피 현상을 해결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변화하는 연애관, “연애를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

일본 젊은이들이 경제적 궁핍 때문에 원치 않는 싱글로 내몰린다는 분석에 어느 정도는 납득한다. 당장 나의 생활이 불안정한데 연인을 만나 사랑을 속삭일 여유가 생기겠는가? 다만, 고용의 불안정성이 해소되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젊은이들이 다시 연애 전선으로 복귀하리라는 낙관적 해법에는 100% 수긍하기 어렵다. 경제적 요인이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일본의 많은 대학생들이 “연인이 없어 아쉽다”기보다는 “연인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한다. 누군가와 교제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지도 않지만, 그 결과 연인이 없다는 사실에 큰 불만도 없다. 소셜 네트워크에는 언제, 어디서든 관심사를 공유하는 디지털 인맥이 존재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소속감을 쌓고, 정서적으로 공감하는 이들과 친밀하게 교류할 수도 있다. 온라인 게임으로 잠깐의 따분함을 달랠 수 있지만, 실은 빠르게 업데이트되는 인터넷 정보를 체크하는 것만으로도 일상이 바쁘다. 때때로 밖으로 불러낼 오프라인 친구가 있으면 금상첨화지만, 온라인과 오프라인 공간을 쉴 틈 없이 오가다 보면 외로움을 곱씹을 시간이 길지 않다. 결과적으로 연인이 없어도 고독하지 않고, 연애를 하지 않아도 충분히 즐겁고 바쁘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연애를 ‘못’ 한다기보다는 연애를 ‘안’ 하는 것이다.

한편, 연애를 부담스럽고 불편하게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상대방과 친밀한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그럴 만한 의지가 잘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학생은 “연인이 생기면 살도 빼고 화장을 해야 하는데, 그런 일들에 소질도 없고 힘을 쏟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여자는 남자를 위해 꾸며야 한다’는 전근대적인 이성관은 뜻밖이었지만, 여행과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그녀의 발랄하고 활동적인 성격을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녀는 학기 중에 부지런히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으고, 방학 때에는 이국으로 출사 여행을 떠나곤 했다. 이런 취미 활동을 잘 이해해 주고, 혹은 함께할 수 있는 상대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처음에는 좋은 감정에서 시작해도 연애를 하다 보면 생각지도 않은 고민이 줄줄이 생기기 마련이다. 나름의 방식으로 충실하게 행복을 추구하는 젊은이에게 험난한 연애의 길을 경험해 보라고 굳이 권할 이유가 있겠는가?

사실 연애도 수많은 사회 관계 중 하나일 뿐이다. 가족 관계 속에서 심리적 안정감을 얻고, 친구 관계 속에서는 사회적 소속감을 얻는다. 사회적 교류의 폭이 제한적이었던 과거에 연인 관계는 타인과 정서적 친밀감을 쌓을 수 있는 드문 기회였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온라인 공간 속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의 친밀한 사회 관계를 경험할 수 있다. 심지어는 자신의 입맛과 사정에 맞게 사회 관계를 설계하고 운영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들은 소셜 네트워크에서 다양한 친구를 사귀고, 온라인 커뮤니티에 고민 상담을 하며, 15초짜리 짧은 영상 클립에서 세상 돌아가는 일을 배운다. 연인이라는 배타적이고 끈끈한 관계를 통해 얻는 상대적 만족감이 예전 같지 않은 것이다. 그나마 코로나19 사태로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만남과 사회적 교류는 더욱 줄었다. 팬데믹 사태는 언젠가 종지부를 찍겠지만, 앞으로도 연애의 필요성이 와 닿지 않는다는 젊은이가 늘면 늘었지 줄지는 않을 듯하다.

◇젊은 세대가 추구하는 행복의 본질

연애라는 지극히 사적인 사안이 사회적 관심사가 된 배경에는, 현대 사회의 근간인 결혼 제도가 위협받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있다. 10여 년 전에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가 넘는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 젊은 층의 비혼과 저출산은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결혼과 출산을 ‘패키지’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젊은이들이 연애에 무관심한 사정에 대해 우려가 터져 나온다. 하지만 연인이 없다는 이유 때문에 삶의 자세가 무기력하다는 쓴소리를 듣고, 결혼과 출산을 선뜻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 무책임한 성인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을 이유는 없다. 인생의 반려자를 찾고 행복을 추구하는 방식은 개인의 취향과 선택에 온전히 맡겨진 사적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대로는 사회가 존립할 수 없다는 기성 세대의 위기의식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개인적인 삶의 방식이 다르다고 비판하는 것은 부당하다.

일본의 젊은이들이 처한 현실과 다른 점도 많지만, 연애를 행복과 자아실현의 필수 조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은 한국의 젊은이들도 마찬가지다. 사실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절벽의 위기는 일본보다 한국이 더 심각하다. 결혼과 출산을 가로막는 장벽을 낮추는 것을 목표로 삼은 정책도 쏟아지고 있다. 이런 정책 자체를 문제삼고 싶지는 않다. 지속 가능한 사회를 고민하는 것은 기성 세대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정책이 단지 결혼율 혹은 출산율을 높이는 것에만 급급해서는 안 된다는 문제 의식이 있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결혼을 ‘못’ 하는 엄중한 상황을 힘을 모아 해결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혼이나 출산을 ‘안’ 하겠다는 이들을 소외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보다는 사적인 결정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사회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아기를 낳고 기르기 좋은 사회를 만드는 것만큼, 오로지 결혼만이 연애의 종착역이 아닌 사회, 출산이 결혼의 충분 조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김경화 미디어 인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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