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의 위대한 기술자들

입력
2021.09.13 18:00
수정
2021.09.13 20:5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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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려령 '기술자들'(창작과비평 2021 가을호)

편집자주

단편소설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묶여나오기 전까지 널리 읽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단편소설 아시나요?(이단아)' 코너를 통해 흥미로운 단편소설을 소개해드립니다.


카카오헤어샵은 고객이 어플을 통해 예약하면 첫 방문에 한해 수수료로 25%를 떼어 간다. 카카오헤어샵 홈페이지 캡처

카카오헤어샵은 고객이 어플을 통해 예약하면 첫 방문에 한해 수수료로 25%를 떼어 간다. 카카오헤어샵 홈페이지 캡처


어릴 적 살던 동네에 손기술이 무척 좋은 미용실 사장님이 있었다. 대단히 비싼 장비나 약품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동네 사람들의 스타일을 훤히 꿰고 있었다. 할머니 파마도, 엄마의 흰머리 염색도, 나의 커트머리도 모두 주기적으로 그 작은 미용실 사장님 손을 거쳤다.

얼마 전 인터넷 지도로 그 동네를 다시 찾아봤다. 미용실이 있던 자리에는 프랜차이즈 카페가 들어서 있었다. 돈을 많이 벌어 더 좋은 곳으로 옮겨 갔길 바라지만, 요즘처럼 자영업자에게 삼엄한 시절에 그게 얼마나 허약한 기대인지 모르진 않는다. 동네 철물점이, 동네 책방이, 동네 슈퍼가, 저마다의 기술과 노하우를 가진 수많은 동네 가게들이 그렇게 하나둘 사라져 갔다. 그리고 그들이 떠난 자리엔 거대한 인프라를 갖춘 대기업이 들어섰다.

창작과비평 2021 가을호에 실린 김려령의 단편 ‘기술자들’은 그렇게 우리의 일상을 지탱해 온 위대한 기술자들에게 바치는 헌사 같은 소설이다.

주인공 ‘최’는 30년차 종합설비공이다. 뒷자리를 생활공간으로 바꾼 승합차 한 대가 그의 집이자 일터다. 배관공으로 흙밥을 먹기 시작해 10년을 넘기니 어느덧 웬만한 집 한 채는 혼자서도 지을 수 있는 베테랑이 되어 있었다. 최 역시 한때는 작은 배관설비 가게를 운영했었다. 하지만 이른바 ‘검색의 시대’가 되면서 동네 기술자인 최의 입지는 좁아졌다. 최첨단 장비와 특허공법을 내세운 다른 업체를 제치고 고객 눈에 들 요량이 없었다.

“최는 동네에 정붙이고 살면서 연장 든 할아버지로 늙고 싶은 소망이 있었다. 졸졸 새는 수도꼭지를 갈아주고, 물이 똑똑 떨어지는 천장 배관을 손봐 주고, 누수 위치를 찾아주며 느리게 살고 싶었다. (…) 그것이 욕심임을 깨달았다. 가게가 자꾸 무언가를 갚도록 만들었다. 그중 지독한 것이 월세였다.”

김려령 작가. 창비 제공. ⓒ이영균

김려령 작가. 창비 제공. ⓒ이영균

그런 최에게도 믿을 구석은 있다. 승합차 옆자리에 탄 ‘조’라는 든든한 동료다. 긴 시간 길에서 떠돈 것처럼 보이는 조가 어느 날 최의 가게를 찾아와 잡일 보조는 이것저것 할 수 있으니 자신을 써달라 했고, 두 사람은 그렇게 함께 길 위의 삶을 시작한다. 노지 캠핑장이나 여관에 묵으며, 노후한 아파트에 전단지를 돌린다. “욕실 베란다 실리콘 시공 전문. 연중무휴. 24시 상담 가능”

소설은 최와 조, 두 명의 기술자가 자신의 일을 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줄 뿐이다. 그런데 소설을 읽는 동안 어쩐지 안도가 찾아온다. 능숙한 장인이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자신의 기술을 펼쳐 보일 때 느껴지는 그것과 정확히 같은 안도다. 그런 든든한 신뢰가 이 소설에 있다.

카카오그룹의 계열사는 2015년 45개에서 현재 118개로 늘었다. 대리운전, 꽃배달, 미용실 등 많은 부분이 소상공인의 영역이다. ‘공룡 플랫폼’ 기업들이 몸집을 키워나가는 동안, 우리 주변의 기술자들은 점점 더 더 좁은 곳으로 밀려났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3일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카카오 본사를 현장 조사했다.

거대한 기업은 그들에게 걸맞은 먹거리가 있을 것이다. 다만 바라는 것은, 우리 주변의 기술자들이 저마다의 작은 기술로 잘 먹고 잘사는 것이다. 누구의 방해도 개입도 없이 이 위대한 기술자들과 긴밀히 연결되는 것이다. 우리가 본래 그래 왔듯.

한소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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