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월급 주려 원룸까지 뺐지만… 코로나에 죽음 내몰리는 자영업자들

입력
2021.09.12 20:30
수정
2021.09.12 21:19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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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간 서울 맥줏집 운영 50대 극단 선택
가게엔 전기·가스료 체납 등 경영난 여실?
전남 여수서도 '맛집' 치킨집 점주 사망

지난 7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50대 자영업자 A씨가 운영하던 가게의 12일 모습. 소방당국의 통제선에 가로막힌 출입문 앞엔 누군가 두고 간 국화 다발이 있었다. 원다라 기자

지난 7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50대 자영업자 A씨가 운영하던 가게의 12일 모습. 소방당국의 통제선에 가로막힌 출입문 앞엔 누군가 두고 간 국화 다발이 있었다. 원다라 기자

서울에서 20년 넘게 맥줏집을 운영하던 50대 자영업자가 경영난과 생활고를 버티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전남 여수시에서도 치킨집 점주가 경제난을 비관해 세상을 등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장기화로 자영업자의 생존 기반이 속속 무너지고 있는 형국이다.

12일 경찰 등에 따르면 A(57)씨가 7일 자택인 원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A씨가 지인과 마지막으로 연락한 때는 지난달 31일로, 시신이 발견되기 며칠 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A씨 발인은 이날 서울 한강성심병원에서 진행됐다.

고인은 1999년 서울 마포구에 맥줏집을 차리면서 자영업을 시작했다. 입소문을 타면서 그가 운영하는 가게는 한때 식당, 일식주점 등 4곳으로 늘어나기도 했다. 그는 직원들에게 업소 지분을 나눠주거나 요식업계에선 드물게 주 5일제를 시행하는 등 직원 복지를 챙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평소 복지재단에 음식을 보내는 선행을 하고, 정당·단체 등에 꾸준히 후원금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몇 년 전부터 다른 가게를 정리하고 100석 규모의 맥줏집 한 곳을 운영해왔다. 하지만 코로나19 유행 이후 단체손님이 끊기는 등 경영난에 빠졌고, 이로 인해 월세 1,000만 원과 직원 월급 등 고정비용 마련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숨지기 전 남은 직원에게 월급을 주려고 살고 있던 원룸을 뺐고, 모자란 돈은 지인들에게 빌려 채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후 마포구에 있는 A씨 가게 유리창엔 올해 6월 23일부로 도시가스 공급이 중단된다는 통보문이 붙어 있었다. 올해 3월부터 체납된 전기요금 85만여 원을 청구하는 고지서도 있었다. 출입통제 테이프가 붙은 가게 출입문 앞엔 누군가 두고 간 국화 다발이 있었다. 인근 건물 경비원은 "(A씨 가게가 있던) 건물에 입주했던 대형 기관이 지방으로 이전한 것도 주변 식당에 큰 타격이 됐다"고 말했다.

A씨의 지인은 언론에 "고인에게 장사는 삶의 일부였다. 거의 가게에서 먹고 살다시피 하며 일만 했다"면서 "옷도 사 입는 법이 없어 내 결혼식장에도 앞치마를 입고 왔다"고 말했다. 온라인 추모 공간에는 "사장님께 드린 게 없어서 너무 죄송합니다" "힘들 때마다 항상 반갑게 맞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8~9년 전 알바했던 사람이에요. 이제는 편안하게 쉬세요" 등 애도의 글이 게재됐다.

한편 이날 오전 11시 43분쯤 여수의 한 치킨집에선 점주 B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B씨는 '경제적으로 힘들다.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B씨의 가게는 여수시청 인근 맛집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코로나19로 운영난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손성원 기자
원다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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