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에서 온 어린 손님들에게

입력
2021.09.06 22:00

한국 정부와 협력한 아프간 현지 조력자 입국 대상 391명 중 378명이 지난달 26일 입국했다. 뉴시스


공항 출입구 문이 열리고 너희가 웃으며 들어올 때, 문득 한 세계가 선물처럼 오는 느낌이었다. 안고 있는 인형이 주인과 잘 어울려 좋았다. 나의 다정한 새 이웃이 될 아이들아, 어서 오렴. 너희들이 와서 무척 기쁘다. 소식을 들으니, 너희가 탄 버스가 카불 공항으로 진입하지 못해 15시간이나 갇혀 있었더구나. 불안과 고통의 시간을 견디고 여기까지 무사히 와주어서 고맙고 대견하다.

모든 게 낯설고 신기하겠지. 이제부터 여기가 너희들 새로운 삶의 이야기가 시작될 곳이다. 그 옛날 어른들이 내게 했던 말을 너희들에게 들려준다. 착하고 씩씩하게 자라라. 너희들 웃음으로 인해 이 나라 기쁨의 크기가 커지고, 너희들이 꾸는 꿈으로 인해 이 나라 꿈의 무게도 더 늘 테지. 많이 웃고 꿈꾸어라. 한국에는 ‘앞으로’라는 동요가 있어. 가사를 좀 들려줄까? “온 세상 어린이가 하하하하 웃으면 / 그 소리 들리겠네 달나라까지.” 너희들과 한국 친구들의 사이 좋은 웃음 소리가 달나라까지 퍼졌으면 좋겠다.

여기 한국에는 마음 따뜻한 어른이 아주 많단다. 너희를 환대한 진천군이 ‘돈쭐’이 났지. 진천 특산물을 파는 사이트가 밀려드는 주문을 못 이겨 한때 다운이 됐어. 너희를 따뜻하게 맞이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그러니 경계의 눈빛으로 두리번거리지 말고 안심해라.

낯선 너희를 염려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일부 있는 줄 안다. 자라면서 차별을 당할 수도, 혐오의 목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절대 상처받지 말고 의연하게 이겨내길 바란다. 주위엔 차별과 혐오에 반대하고 함께 싸워줄 어른이 훨씬 더 많다는 걸 기억해다오. 너희들의 영웅 김일응 참사관 아저씨도 그런 어른이다. 구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카불로 다시 용감하게 들어가 너희를 무사히 데리고 왔지. 집에서 걱정할까봐 카불로 간다는 얘기도 안 하고 갔다더구나. 김일응 아저씨가 카불 공항에서 흘린 눈물을 보고 우리도 함께 울었단다.

나중에 너희 모두 이 사회를 이끄는 훌륭한 어른이 되어, 잠시라도 편견에 빠졌던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들어주길 바란다. 그때 너희들 덕분에 이 사회의 너그러움과 다양성이 더 커지고, 우린 조금 더 성숙해지겠지.

내가 특별한 자격과 권리가 있어 이 나라의 주민이 된 게 아니다. 그냥 운 좋게 우연히 이곳에 태어났을 뿐이다. 너희들도 우연하게 여기로 왔지. 그러니 너희와 나는 모두 우연의 자손이다. 기억해라. 사랑과 헌신만이 관계의 우연을 필연으로 바꿀 수 있단다. 너희와 내가 서로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관계가 되면, 그게 하나의 나라가 되는 거란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언젠가 다시 너희가 떠나온 조국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갈 기회가 생기면, 여기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그곳 친구들에게 밤새 얘기해주렴. 흥이 오르면 조금 과장을 섞어도 괜찮겠다. 너희들 먼 고향에서도 밤이 되면 항상 별이 초롱하게 떴겠지. 잘 찾아봐. 진천 하늘에도 그 별이 그대로 있을 테니. 지금 고향 친구들도 그 별을 보고 있을지 모르겠다.

도착한 곳은 대한민국이지만, 너희들의 영토는 꿈과 사랑의 땅이어야 한다. 어린 너희가 비록 지금 손님으로 왔지만, 자라 모두 성공한 이 땅의 주인이 되길 바란다. 훗날, 늙은 나에게 이 땅에서 이룬 일들을 자랑스럽게 얘기해줬으면 좋겠구나. 다시 한번 인사한다. 잘 왔다. 어여쁜 아이들아.



이주엽 작사가, JNH뮤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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