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무슨 논의가 필요한가

입력
2021.09.02 18:00


언론 과실 많아도 더한 법적 통제는 위험
자유민주주의 국체를 허무는 참람한 행위
언론중재법 논의 더 끌고 갈 이유도 없다

1일 중구 언론노조 회의실에서 전국언론노조와 한국기자협회, 방송기자연합회 등 언론 현업 5단체 주최로 열린 '언론중재법의 사회적 합의를 위한 독립 기구 제안' 기자회견에서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일선기자 때 한 연예인이 해외유학원의 사기 행각에 연루됐다고 쓴 단신이 문제가 됐다. 경찰 브리핑이었으나 수사 기류가 바뀌면서 결과적으로 오보가 됐다. 소송을 당해 적지 않은 손배액을 물었다. 신뢰할 만한 정부기관 발표라도 충분히 검증해야 한다는 게 법원 주문이었다.

당사자가 극구 접촉을 피했어도 반론권을 보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민형사상 책임이 지워진다. 적어도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보도에서 법원의 판단은 지금도 엄격한 편이란 뜻이다. 그러면 이런 오보도 가짜뉴스(고의성 있는)일까? 의문을 갖는 건 언론중재법 개정 명분으로 지목된 대표적 가짜뉴스들도 대개 이런 일반적 오보 구조를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국정원 작품으로 드러나는 ‘논두렁 시계’는 확실히 언론이 추후 검증에 소홀했다는 점에서는 반성의 여지가 크다. 그러나 ‘세월호 전원 구조’는 극도의 혼란 상황에서 누군가의 전언이 경황없이 확산된 것이고, ‘포르말린 통조림’과 ‘쓰레기 만두’는 공기관의 발표를 옮긴 것이다. 비극적 결과와 엉켰으되 고의나 악의로 조작한 보도는 아니었다. 법원 판단도 다르지 않았다.

개정안의 ‘고의성에 중과실까지 범한 가짜뉴스’에 가장 근접하는 모델은 MBC PD수첩의 광우병 보도일 것이다. 허위였으되 공적 사안을 다뤘고 직접적 악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위법성이 조각됐다. “정부가 언론의 비판정신을 거세하려다 심판받았다”고 환호했던 민주당은 심지어 1945년 신탁통치 오보까지 소환하면서도 겨우 2008년의 이 사건에 대해선 입도 뻥끗 않는다. 개정안의 진짜 목표가 실제 일반 국민의 권익 보호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작 ‘카더라’가 판치는 곳은 유튜브나 SNS 쪽인데도 그들의 시선은 온통 전통 신문·방송에 맞춰져 있다. 더 솔직히는 몇몇 보수 성향 신문·종편들이다. 그러나 어쩌랴. 웬만하면 그들 편에 서주었을 진보 성향 매체들도 이 사안에 관한 한 단호하다. 어느 편에서 보아도 선을 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권의 언론 개혁 주장은 검찰 개혁을 빼다박았다. 원래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 취지였던 검찰 개혁이 거꾸로 정치권력의 보호책으로 변질됐듯 언론 개혁도 마찬가지다. 이 당초정권 언론 개혁의 핵심 역시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이었다. 그 구호는 실종됐다. 말 안 듣는 검찰의 힘을 아예 빼버리는 게 검찰 개혁이 됐듯, 어차피 내 편으로 만들 수 없다면 운신을 어렵게라도 하겠다는 게 지금 언론중재법 개정 시도로 현실화한 언론 개혁이다.

개정안 통과 후를 상정해보면 이게 얼마나 자가당착일 수 있는지도 드러난다. 허위주장으로 드러난 윤희숙 사퇴쇼 단정과 관련 보도들에 대해선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나. 마침 인터넷매체 <뉴스버스>가 윤석열 측이 여권 정치인에 대한 형사고발을 사주했다는 보도를 내놓았다. 여권이 반색할 이런 사안에 대해 당사자가 기사열람 차단을 요구하고 징벌적 손배를 주장한다면. 아직은 시행 전이니 상관없다면서 개정 취지를 계속 강변할 것인가.

정상 국가들에서 입법례를 찾기도 어려운 이 개정안을 놓고 일일이 자구를 따져가며 논하는 건 의미 없다. 언론 자유를 근본적으로 훼손할 수 있는 법안을 강행하는 것은 헌법상의 자유민주주의 국체를 건드리는 참람한 행위다. 강행 처리 의지의 다른 표현에 불과한 시한과 상관없이 당장 전면적인 추진 중단 외에 다른 결론은 없다.

사족을 붙인다. 믿든 말든 최근 여권 최고위급 인사의 착잡한 속내를 들었다. “(몇몇 의원이 추진한들) 이부영 선생이 반대하다면 어느 쪽이 맞겠나.” 알다시피 그는 평생의 언론 자유 투쟁으로 두루 존경받아온 진보 진영의 원로다.


이준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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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한국일보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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