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돈 내 산' 나무 잘랐다고 벌금 2500만 원 내라니

입력
2021.08.29 15:00
수정
2021.08.29 16:3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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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70대 남성, 20년 전 심은 나무 손질하자
"미허가 벌목은 규정 위반"...14만 위안 벌금
"내 돈 주고 심은 나무 잘랐는데 불법이라니"??
네티즌 95% "불합리한 처사" 과잉규제 성토

시진핑(맨 왼쪽) 중국 국가주석이 23일 허베이성 청더의 사이한바궈자 삼림공원을 시찰하고 있다. 중국은 1981년 12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전국 나무심기운동 전개에 관한 결의안’을 채택한 이후 40년간 녹화사업에 총력을 다해 왔다. 시 주석을 비롯한 중국 지도부는 매년 4월 청명절이 되면 직접 삽을 들고 어린 학생들과 함께 식목 행사에 참여한다. 청더=신화 뉴시스

시진핑(맨 왼쪽) 중국 국가주석이 23일 허베이성 청더의 사이한바궈자 삼림공원을 시찰하고 있다. 중국은 1981년 12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전국 나무심기운동 전개에 관한 결의안’을 채택한 이후 40년간 녹화사업에 총력을 다해 왔다. 시 주석을 비롯한 중국 지도부는 매년 4월 청명절이 되면 직접 삽을 들고 어린 학생들과 함께 식목 행사에 참여한다. 청더=신화 뉴시스

20년 전 묘목을 샀다.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면서 10년 전 마당 밖에 옮겨 심었다. 다시 10년이 지나 가지와 잎이 우거져 창밖 시야를 가렸다. 그래서 줄기를 자르고 손질했다. 모두 내 돈 내고 한 일이다.

돌연 관청에서 찾아왔다. 규정을 어겼다며 14만 위안(약 2,523만 원)의 벌금을 매겼다. 사전에 문의할 때는 심드렁한 반응이더니 태도가 바뀌었다. 과도한 규제에 된서리를 맞은 70대 남성의 억울한 사연에 중국 온라인 공간이 들끓고 있다.

중국 상하이 쑹장구에 사는 리모(73)씨는 2002년 1만1,000위안(약 198만 원)을 주고 녹나무 한 그루를 구입했다. 마당 한 켠에 심은 나무는 생각보다 빨리 자랐다. 2010년 크레인을 동원해 마당 밖으로 옮겨 심었다. 이후 나무는 집 안을 비추는 햇빛을 가릴 정도로 성장했다. 지난 1월 500위안(약 9만 원)을 주고 전문가를 불렀다. 2m가량 높이의 줄기만 남기고 시원하게 손질했다.

행여 문제가 생길까 싶어 미리 녹화사업 담당부서를 찾아갔다. ‘나무 가지를 쳐도 되느냐’고 묻자 해당 직원은 “고작 나무 한 그루인데요. 우리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나요”라고 답했다. 그 말만 믿고서 마음 놓고 나무를 잘랐다가 리씨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나무를 불법으로 벌목했다며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당국은 지난달에서야 벌금 통지서를 보내왔다. 액수가 무지막지했다. “14만4,200위안을 내라”면서 “2주 안에 납부하지 않으면 가산세가 붙는다”고 적혀 있었다. 시가 2006년 시행한 ‘녹화행정사업표준에 관한 통지’에 따라 나무의 현재 가치(2만8,840위안)를 산정해 최소 5배에서 최대 10배까지 벌금을 부과할 수 있는데 리씨의 벌금은 그나마 최소 기준인 5배를 적용했다. 해당 부서는 선심 쓰듯 “10배를 적용해 28만 위안을 부과하려다 처벌 수위를 가볍게 낮춘 것”이라고 설명했다. 리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할 말은 많지만 늦게 냈다가는 벌금 액수가 늘어나기 때문에 서둘러 납부했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중국 상하이에 사는 리모(73)씨가 자신이 자른 나무를 가리키고 있다. 2m가량 높이의 줄기만 남았다. 당국은 가지치기가 아니라 허가 없이 벌목을 했다면서 2,500만여 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이를 놓고 "과도한 규제"라는 비판이 일었다. 신랑닷컴 캡처

중국 상하이에 사는 리모(73)씨가 자신이 자른 나무를 가리키고 있다. 2m가량 높이의 줄기만 남았다. 당국은 가지치기가 아니라 허가 없이 벌목을 했다면서 2,500만여 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이를 놓고 "과도한 규제"라는 비판이 일었다. 신랑닷컴 캡처

중국 ‘거주용 녹지수목 손질지침’에 따르면 녹나무는 도시공공녹지에 속한다. 따라서 손을 대기에 앞서 주민위원회 등의 심사를 거쳐야 하고, 손질하는 방식도 정해진 표준에 따라야 한다. 리씨의 행위는 규정 위반인 셈이다. 리디화 베이징대 건축경관설계학원 부원장은 23일 중국 매체 커지셩훠콰이바오에 “전국 각지에서 규정을 잘 모르는 주민들이 주택단지 나무를 스스로 손질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생각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신변과 재산, 시설물 안전에 심각한 영향을 주거나 △병충해 등으로 나무가 고사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벌목이 금지된다는 것이다.

실제 중국은 1981년 12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전국 나무심기운동 전개에 관한 결의안’을 채택한 이후 40년간 총력을 다해 왔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지난 4월 청명절 식목행사에 참석해 “중국은 세계적으로 삼림자원이 가장 많이 늘어난 나라가 됐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며 “생태문명 건설은 신시대 중국 특색사회주의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강조했다. 더구나 시 주석 스스로 “2060년 탄소중립”을 선언한 터라 나무 한 그루도 허투루 대할 수 없는 처지다.

하지만 당국이 ‘이중 잣대’를 들이댄다는 반론이 제기됐다. 리씨 인근 지역 아파트에서는 2019년 150여 그루의 나무를 줄기만 남겨 놓고 잘라 이번 사건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 적이 있다. 당시 당국은 ‘과잉 손질’로 적발하면서도 벌금 1만5,000위안을 부과하는 데 그쳤다. 한 그루당 고작 100위안(약 1만8,000원)의 처벌을 받은 셈이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은 대중의 상식이나 법 감정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 특히 “내가 심은 나무를 자르는 게 불법이라는 말은 처음 들어 본다”며 당국 처사가 지나치다는 지적이 빗발쳤다. 더구나 리씨는 주의 깊게 처신하려 관공서에 문의했는데도 안내를 잘못 받는 바람에 졸지에 책임을 뒤집어썼다. “세세한 법 규정을 누가 아나. 차라리 나무마다 알림판이라도 붙여라.” 한 네티즌의 항변이다.

리씨 사연은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웨이보에서 이틀 만에 조회수가 4억8,000만 건을 웃돌았다. 네티즌 49만 명이 참여한 설문에서 ‘14만 위안 벌금 부과는 불합리하다’는 응답이 95%를 넘었다.

베이징= 김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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