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벌적 손해배상제 확산을 경계한다

입력
2021.08.18 00:00
27면
10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이 허위·조작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적용을 골자로 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심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10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이 허위·조작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적용을 골자로 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심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담긴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란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인 가해행위에 대해 실손해액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배상케 하는 제도로서, 우리나라에는 2011년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에 처음 도입된 이래 개인정보보호법, 제조물책임법, 환경보건법, 특허법, 부정경쟁방지법, 공정거래법 등 20여 개 법 분야에 속속 도입되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향후 더욱 확산될 것이 예상되는데 특히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낸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 약방의 감초처럼 거론되곤 한다. 지난 6월 광주에서 발생한 철거건물 붕괴사고 후 정부가 발표한 '건설공사 불법하도급 차단방안'에도 불법하도급으로 인해 사망사고가 발생한 경우 하도급사로 하여금 최대 10배를 배상하게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담겼다.

징벌적 배상제가 유행처럼 확산되는 이유는 무엇이고, 과연 이 제도는 그 입법목적을 달성하고 있을까.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자는 주된 논거는 실손해 배상만으로는 악질적이거나 고의에 의한 불법행위를 충분히 억지할 수 없고, 피해자들의 정신적·신체적 고통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의료사고, 환경침해, 학교폭력 등 각종 사건에서 피해자의 입장에 서 본 사람이라면 법원을 통해 손해배상을 인정받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또 불충분한지를 잘 알 것이다. 또한 파렴치한 가해자에 대해 부과되는 형사책임은 이런저런 이유로 솜방망이에 그치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 실제 손해의 3배, 5배 또는 10배까지 배상하도록 하여 피해자의 고통을 위로하고 가해자를 징벌하자는 징벌적 배상제가 손쉬운 해결책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20여 년간 주로 불법행위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를 대리해 온 필자의 입장에서는 이 제도의 확산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무엇보다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실제 그 입법목적을 달성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아무리 법에서 3배, 5배까지 배상을 명할 수 있다 해도 현행 민사소송법제도하에서는 여전히 피해 입증이 어렵고, 현상유지적 성향이 강한 직업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은 엄격히 입증된 피해 이상의 배상을 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중소 제조업체가 납품단가를 부당하게 깎았다며 현대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해액인 3억500만 원보다 많은 5억 원을 물어주라고 한 울산지방법원의 판결이 화제가 될 정도로 징벌적배상을 실제로 명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 언론중재법처럼 언론사 매출액에 일정비율을 곱한 금액을 고려하여 손해액을 산정하도록 하고 일정한 경우 언론사의 고의·중과실을 추정하여 손해액의 5배까지 징벌적 배상을 명하도록 하는 것은 사회에 유용한 언론활동까지 과잉 억제하는 부작용이 클 수 있다.

간단한 조문 한두 개로 손쉽게 도입할 수 있는 징벌적 배상제는 겁만 줄 뿐 실제 피해구제 효과가 적고 법관의 재량만 확대시켜 예측가능성을 떨어뜨린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이보다는 증거개시제도를 통해 증거의 구조적 편재를 극복한다거나, 법관의 직업적 타성에 따른 과실상계와 책임제한을 방지할 민사배상양정기준을 제정한다거나, 일정금액 이하의 언론중재위원회 배상조정결정에 대해서 언론사에 대한 편면적 구속력을 인정하는 등 정밀하게 설계된 절차법적 개혁이 더 필요하다.



김주영 변호사·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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